좋은 곳으로 보내주세요

어릴 적엔 떨어지는 감꽃을 셌지. 전쟁 통엔 죽은 병사들의 머리를 세고. 지금은 엄지에 침 발라 돈을 세지. 그런데 먼 훗날엔 무엇을 셀까 몰라.”

김준태 시인의 감꽃이라는 시는 참 소박하다. 감나무 꽃의 줄임말이 감꽃인데 따뜻하다. 고작 4행의 시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의아하지만 담겨진 뜻을 음미해보면 지금 나의 상황을 돌아보게 하는지라 더 친근하다. 되새기면 경이롭다.

짧은 시에 담긴 뜻을 살펴보는데 무지막지하게 가슴에 꽂혀 쓰라리다. 휑한 바람이 감도는 내 영혼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 채 이리 저리 떠도는 나그네와 같다. 어린 순박한 동심의 세계에 대한 그리움과 전쟁의 비인간적인 상황에 대한 비판, 물질 만능주의 삶에 얽매인 비정한 현대인의 모습에 대한 개탄, 미래를 살아갈 인간의 각박한 삶에 대한 근심스러운 마음이 녹아든 시가 공감이 되면서 고개를 끄덕여본다. 결국 어렸을 때의 순수함, 순박함을 돌아보며 그 마음을 상기시키는 듯하다.

우리나라도 오랫동안 둘로 나뉘어 오랜 동안 전쟁의 공포가 도사리고 있다. 배만 골지 않아도 행복하다던 사람들은 기름진 음식으로 배를 가득 채워도 공허함은 이루 표현할 수 없다. 더 편안한 것을 추구하고 즐겁고 재밌는 오락과 여가를 찾아 나선다. 자신만 괜찮으면 주변에 어떤 일이 일어나도 상관하지 않는, 사랑 결핍의 사회가 전쟁보다 무섭게 조여 온다.

감꽃이 다 떨어지면 반드시 열매가 맺힐 것이다. ‘소박, 경의, 좋은 곳으로 보내주세요.’라는 감꽃의 꽃말처럼 소리 없는 외침이 들려온다. “저를 좋은 곳으로 보내주세요.” 남김없이 다 떨어져 알곡 같은 열매를 맺고 가장 좋은 곳으로 훌훌 날아가고픈 열망밖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진정 그러고 싶다. 감꽃처럼 인생 마지막엔 가장 좋은 곳에 머무르면 부러운 것이 하나 없고 바랄 것이 무엇이겠는가.

요즘 생을 마감하는 다양한 주변 사람들을 접하면서 인생 무상함과 스스로 책임져야 할 현재, 미래까지 돌아보며 묵상하게 된다. 난 과연 지금 잘 살아가고 있는지, 그리고 마무리는 어떻게 할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고민하게 된다.

힘든 것이 축적되고 지쳐서 소망이 없고 뭔가 새롭게 되고 싶은데, 결국 빨리 열매를 맺어서 편해지고 싶다는 자기중심적인 갈망 때문에 괴롭다. 그 기다림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하나님은 이토록 잔인한 세월을 허락하셨다고 푸념을 늘어놓는 가장 어리석은 존재가 여기 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당신을 시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함에 오직 즐거워하십시오. 장차 예수님의 영광이 나타날 때 오히려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입니다”(벧전4:12-13).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 일획도 변함이 없으시다. 현재의 고통이 이상한 일이 아닌 즐거움일 수 있기를 소원한다. 하나님은 감당할 어려움을 주시면서 또 영원까지 함께하시는 분임을 알기 때문이다.

이 땅의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의 옷을 입혀주시며 눈물 닦아주실 주님만 향하길 바래본다. 내게 필요한 것을 나보다 더 잘 아시는 주님이 계신데 무엇이 두렵겠는가.

저의 주인 되시는 주님, 세상의 더러운 것이 소멸되어지는 그때에 당신이 계신 좋은 곳으로 저를 보내주소서. 주님이 인도하시는 뜻이 가장 확실한 해답입니다. 언제 어디서든 저를 부르실 때 아멘하고 믿음의 길을 가게 하소서. 순수한 눈망울로 어떤 이유도 따지지 않고 오직 순종했던 모습을 회복케 하소서. 제가 원하고 바라는 것은 오직 그것입니다.”

구석구석에 박혀있는 찌든 자아와 결점, 헛된 욕심들, 자기중심적인 생각, 이 세상 것이 다 떨어져나가면 하나님께서 잘했다 칭찬해 주시리라.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상급을 주실 것에 벅찬 감격을 안고 다시 용기 내어 한 발 내딛는다. 내가 바라던 소망이 당장 눈에 안보이고 손에 안 잡히고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실지라도 주님 향한 일편단심 외길을 인내로이 걷다보면 어느 샌가 하늘 소망에 다다를 것이다.

허윤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