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의 여름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 하늘의 표적을 구하자 너희가 천기는 분별하면서 시대는 분별하지 못하느냐!”(16:3)는 주님의 책망이 떨어졌다. 오늘날 교회들이 그렇다. 시대를 분별하지 못하고 표류하는 배처럼 떠밀려 다니고 있다.

 

파게와 테에나

성경에는 주님께서 유월절 즈음 베다니를 지나가시다가 열매를 맺지 못한 무화과나무를 저주한 사건이 등장한다(11:13-14). 하지만 마가는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고 친절하게 언급하고 있는데, 이러한 모순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를 바로 이해하려면 이스라엘에서 무화과가 어떻게 열매를 맺는가를 반드시 알아야 한다.

류모세의 열린다 성경에 보면 무화과나무에 대해 자세히 나온다. 이스라엘의 기후는 4월부터 10월까지 이어지는 건기(여름)와 그 나머지 기간에 해당하는 우기(겨울)로 나뉜다. 6개월의 우기 동안 앙상한 가지로 겨울을 보낸 무화과나무는 유월절이 다가오면서 조그만 잎사귀와 함께 첫 열매인 무화과를 맺고, 긴 여름 동안 다섯 차례 열매를 맺는다. 첫 열매인 무화과는 히브리어로 파게’, 이후 순차적으로 열리는 것을 테에나라고 한다.

무화과나무는 꽃이 피지 않고 잎과 열매를 동시에 맺는다. 유월절 즈음에 맺히는 파게는 작은 잎과 함께 맺히는 작은 열매다. 이후에 커다란 잎과 함께 맺히는 열매(테에나)에 비해 작고 당도가 떨어진다. 무화과 과수원의 주인 입장에서 보면 파게는 상품성이 떨어지므로 일일이 따 줘야만 이후에 테에나가 제대로 열릴 수 있다. 주인은 자신이 파게를 따는 수고를 하는 대신에 지나가는 행인들이 이것을 공짜로 따 먹도록 허용하는 것이 관례였다.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인들의 90퍼센트 이상이 가난한 소작농이었기 때문에 공짜로 따 먹을 수 있는 파게는 참으로 고마운 선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추운 겨울 동안 단 열매를 먹지 못한 가난한 이들은 여름의 시작과 함께 열리는 파게를 간절히 기다렸다. 예수님 역시 무화과의 첫 열매인 파게를 찾다가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저주하신 것이었다(11:14). 이는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를 잎만 무성하고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로 비유하시며 시청각 교육을 하신 것이었다.

 

여름과 종말

구약 성경에도 무화과나무의 첫 열매인 파게와 관련된 말씀이 나온다. “옛적에 내가 이스라엘 만나기를 광야에서 포도를 만남같이 하였으며, 너희 열조 보기를 무화과나무에서 처음 맺힌 첫 열매를 봄같이 하였거늘 저희가 바알브올에 가서 부끄러운 우상에게 몸을 드림으로 저희의 사랑하는 우상같이 가증하여졌도다”(9:10).

호세아는 솔로몬 이후 마지막 전성기를 누리던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세 때에 극심한 빈부격차와 당시 만연했던 우상숭배를 탄식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광야를 지날 때 여호와께서 무화과나무에서 처음 맺힌 첫 열매(파게)를 보는 것처럼 애틋하게 그들을 보았지만, 막상 약속의 땅에 들어온 이후에는 가증한 우상숭배로 하나님을 격동시켰다는 것이다. 이사야는 사상누각같이 무너져가는 북이스라엘의 영화를, 초여름에 지나가는 행인들이 처음 익은 무화과를 얼른 따서 먹는 것에 비유하기도 하였다(28:4). 이외에도 이스라엘을 무화과나무로 비유하신 내용이 많다. 대환난장(종말)으로 불리는 마태복음 24장에서 예수님은 왜 무화과나무 비유를 언급하셨을까?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마태24:32~33).

유대인들에게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의 사계절을 정확히 알려주는 나무다. 5~10월이 되면 잎사귀가 커지고 두 번째 열매인 테에나를 네 차례 정도 반복해서 맺는다. 이때가 여름이다. 유대인들은 여름하면 종말을 떠올린다. 히브리어로 여름과 종말은 그 어원이 같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의 사계절은 가을부터 시작해서 겨울, , 여름에 끝이 난다. 가을이 시작인 이유는 이스라엘의 새해가 10월에 시작되기 때문이다. 가을에 새해를 시작하는 유대인들에게 사계절의 끝은 여름이다. 그래서 유대인들에게 여름이 가깝다.’는 말은 곧 종말이 가깝다.’는 말로 들리는 것이다. 무화과나무가 여름을 알려주듯이 이스라엘은 구속사의 시간을 알려주는 시계라 불리기에 충분하다.

에스겔 선지자는 마지막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성령을 부어주시려고 이스라엘이 고토로 귀환할 것(39:28-29)이라고 예언하였는데, 지금 이스라엘의 회복을 눈앞에서 목도하고 있다.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 기록된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치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11:25-26). 이는 교회시대 동안에 구원받기로 예정된 이방인들의 숫자가 다 채워지면, 완악하여 버림받았던 그들이 다시 구원을 받게 된다는 말씀이다. 1948514, 이스라엘의 건국을 기점으로 전 세계에 흩어진 유대인들이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지금 이스라엘의 구원과 대환난으로 죄악 세상을 심판하시는 구속사의 정점을 향해 치닫는 마지막 시대에 살고 있다. 유대인들은 누구나 무화과나무의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 안다. 지금이 바로 그때인 것이다.

그러나 이단들이 종말론을 악용하는 일이 많았고, 종말론은 교회 안에서 찬밥신세가 되었다. 그후, 시한부 종말론의 후유증으로 교회들은 임박한 재림신앙을 제대로 외치지 못했다. 하지만 올 여름엔 잎이 큰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진리를 탐구하며 메시야를 대망했던 나다나엘처럼(1:45-49), 빛 진리의 그늘 아래에서 예수님이 오실 것을 대망해 보자.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는 이 시대를 분별케 하는 선명한 진리를 찾아나서는 열정의 여름이 되길 바란다.

예수님을 사모하고 갈망하는 마음으로 불타서 추운 겨울에도 앞가슴을 풀어 헤치고 다녔던 분도 요셉 라브르의 외침이 올 여름에 성령의 시원한 바람과 함께 불어오기를 소망해본다. “오소서 내 주여, 오소서! 나 주님을 갈망합니다. 나 주님을 고대합니다. 나 주님만을 탐합니다. 주님을 기다리는 잠시 동안이 천년과도 같습니다. 오소서! 주 예수여, 지체하지 마소서!” 말씀을 갈망하는 교회다운 교회, 말씀 따라 살고자 하는 성도다운 성도가 넘쳐나는 한국 교회를 갈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