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7일

두 가지의 소리(마 20: 29-34)
오늘 본문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고난을 당하시기 일주일 전 그의 일행들과 예루살렘에서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여리고를 떠나 가는 중에 두 소경을 고치신 사건이다.  소경의 부르짖는 소리와 무리들의 소리를 통해서 은혜를 받자.
그들은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했다. 무리의 꾸짖음에도 불구하고 부르짖은 이 소리에 그들의 간절한 영적 고백이 들어 있다.  먼저, 그들은 예수님을 향해 “주여!”하고 외쳤다. 이 첫마디는 목자를 잃은 양의 외롭고 지친 목소리였으면 주님의 마음을 뭉클하게 한 소리이다. 그들은 성전을 찾아가 메시아에게 경배드를 드리고 싶어지만 소경이라 그럴 수 없는 처지였다. 그러자 구원자이신 예수님께서 그들 앞을 지나가시니 ‘주여’하고 힘껏 외친 것이다. 주님은 스스로 ‘선한 목자이시며’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함이니라.(눅19:10)했다. 그리기에 양의 부르짖는 소리에 외면을 할 수 없는 분이시기에 주님은 발걸음을 멈추시면서 그를 부르셨다.  
우리 역시 잃어버린 양으로 찾아오신 예수님을 찾아 만나 그 앞에 ‘주여’라고 외쳐 신앙고백을 해야 한다. 구원은 마음에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해야만 하기 때문이다.(롬10:9,10) 그래야 영혼의 소원, 구원을 이룰 수 있다.
둘째,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했다. 이는 육체뿐만 아니라 영혼까지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께서 지나심을 듣고 자비한 의사를 구하는 가련한 환자의 부르짖는 소리이다. 우리 주님은 스스로 ‘의사’라고 하셨다. “건강한 자에게는 위원이 쓸테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테 있느니라.”(마9:12)하셨다. 주님의 부르심에 구르다시피 달려온 그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무엇해 주기를 원하느냐?” 물어셨다. 그것은 환자를 외면할 수 없는 그의 사랑의 표현이다. 그 사랑의 표현은 주님의 공생애를 통해서 나타났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여호와 사파’,  치료의 하나님이시다. 우리도 소경들과 같이 우리가 치료를 받기를 원하나이다 하면서 달려가 구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달려온 그들을 주님께서 만지는 순간 두 소경은 흑망에서 광명을 찾고 자유함을 얻었던 것 같이 바로 전능자의 손길이 우리를 어루만져 주셔 새로운 삶의 광명의 길을 허락하실 것이다.

또 다른 소리가 들린다. ‘잠잠하라’  하고 꾸짖었다. 이 소리 그들의 영적 상태를 보여 주는 소리이다. 소경들이 상습적인 구걸행각에 피곤해 있었고, 소경들의 소경됨은 본인이 아니면 부모의 죄, 둘 중에 하나 때문이라고 굳게 믿고 있던 유대 전통적인 견해(요9:2)를 바탕으로 소경을 멸시하기에 익숙해 있던 무리의 반응이다. 그것은  무관심의 소리, 무자비한 소리 그리고 무책임한 소리이다. 바로 ‘잠잠하라’  하는 이 마음은 사랑이 없는 메말라 빠진 마음이며, 너가 범죄를 했으니, 죄의 책임은 너가 져야 한다 하는 무책임한 소리이며,  이 자리는 너와 상관이 없어 하는 무관심한 마음이다. 그들은 양의 우리 안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상 바로 주님의 우리 밖에 있는 잃어버린 양인 것이다. 그들은 신체적으로 건강했지만 영적으로 병들어 있는 모습이다. 그들은 율법을 지키므로 종교적으로 윤리적으로 본명히 죄인은 아니라고 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죄인에 불과했다.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사랑을 받은자들이다. 서로 사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