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2월 28일

방황하는 백성(민14:26-35)

어떤 사람이 “인간은 가야할 목적지는 분명히 알지만 거기에 이르는 길을 잃어 버렸다.” 탄식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분명한 목적지와 거기에 이르는 길을 알고 있는 순례자(히11:13) 이므로 일반 불신자와 달리 탄식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때로는 길을 잃고 부질없이 무의미한 발걸음만 재촉한 ‘방황자’(Wanderer)가 된다. 오늘 본문은 민수기의 핵심내용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길을 잃었기에 하나님께서 방황하는 자가 되라 하시고 있다.(33절) 왜 방황하는 백성이 되었을까? 이제 그 진의를 살펴보자.
유대인들은 민수기를 ‘광야에서’(in the wilderness)라 부른다. 곧 민수기는 메마른 광야에서 벌어지는 하나님의 백성의 슬픈 역사를 담고 있다. 어떤 저명한 복음 전도자는 “민수기는 역사상 가장 긴 장례 행렬이다 했다. 실제 거의 40년 동안 하루 평균 100씩을 장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지 한 성경의 관주에서는 그들이 생활한 광야를  ‘공동묘지’라고 표현을 했다. 하나님의 백성이 기적과 권능으로 애굽에서 탈츨했으나 광야에서 방황한다. 애굽에서 구원을 받았으나 그들을 구원한 목적을 이루지 못한다. 가나안은 바라보지만 믿음으로 전진하지 못하지 못한다. 하늘의 만나는 먹지만 믿음의 성정은 나타나지 않았다. 단지 방황과 파괴와 죽음만이 그들에게 있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 산에 도착하여 가나안을 향해 진군을 위해 1 년간을 철처히 준비하고(민1-10장) 가난을 향했지만 38년간을 41개에 진을 치고 처소를 마련하는 등 움직였지만 여전히 전진을 못하고 그들은 제자리 걸음을 했다. 왜 그랬을까? 성경은 그들의 불신이라고 한다.(히3:16-19, 민13:33) 38년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반역하고 불평하고 하나님의 계획과 조직을 파괴했다. 곧 그들은 하늘 양식 만나를 거부하고,(11장) 하나님의 택하신 모세를 비방하고 권위에 도전을 했고,(12장) 열명의 정탐꾼들의 보고로 인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기를 포기했다.(13장) 계속해서 고의적으로 안식일을 범하고,(15장) 결국에는고라와 난단과 아비람의 선동으로 지도권과 제사장직에 대한 범국가적인 반역을 일으켰다.(16-19장)방황이 소용돌이 속에 휩쓸려 위대한 지도자 모세까지도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저지르고 말았다.(20장)
방황에는 반드시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다 준다. 그러므로 불신을 걷어버려야 한다. 반면 믿음으로  전진하며 통과해야 광야가 공동묘지가 되지 않는다. (히11:1) 방황과 불평과 반역과 죄로 “불뱀에게 불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 본즉 살더라.”(민21:8,9) 이처럼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이 예수를 바라보자.”(히12”1,2) 사도 바울은 그의 광야 여정에서  “푯대를 향해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위에서 부름의 상을 위해서 달려간다.”(빌3:17) 했다.
또 생각해 볼 것은 그들은 애굽에서 나오는데 불과 40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애굽을 이스라엘 속에서 빼내는데는 장장 40년을 소비했다. 진정 그들의 죽음은 애굽의 학정에서, 많은 외적과의 싸움에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들 안에서 일어나는 내적인 애굽 곧 원망, 불평, 반역 등의 불신의 열매들로 인해 그들 60만명이 죽어갔다. 오늘도 마찬가지이다. 성도들이  원망 불평, 불순종하여 자신이 머물고 있는 곳이 메마른 광야가 되어 자신의 무덤을 만드는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다. 광야에서 방황하던 내 못난 자아 60만이 죽어야 내가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