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선교] 빛 된 진리에 굶주린 백성들

얼마 전부터 캄보디아 신문을 읽는 공부를 하고 있다. 신문에는 다양한 단어가 실려 있어서 그러한 단어를 많이 알아야 된다는 권유를 듣고 시작한 공부다. 캄보디아어를 이 나라 말로 크마에라고 부르는데 공부를 하면 할수록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때는 읽다가 힘들어서 짜증도 나고 지치기도 한다.

신문은 그 사회의 거울이다. 이 나라 신문을 보면 이들의 현실과 수준이 그대로 드러난다. 신문기사는 육하원칙에 의해서 되도록 간결하게 써야 하는데, 기사내용으로 가치도 없는 우스꽝스럽고 쓸데없는 군더더기가 많다. 또한 피의자나 피해자의 인권을 무시하고 지저분한 사생활까지 공개한다. 사건사고 현장에서 처참하게 사망하거나 살해된 시신들 심지어는 목매달아 자살한 사람의 시신을 그대로 여과 없이 적나라하게 컬러 사진으로 내보낸다. 선진국에서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또한 신문을 보면서 국가의 정의는 이미 실종되었고, 도덕적으로 많이 타락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잔인했던 폴포트 시대를 지난 캄보디아도 현대화로 접어들면서 도덕적 타락이 속력을 내고 있다. 현재 캄보디아의 종교 분포도를 보면 불교가 80퍼센트 이상이고, 이슬람이 상당히 많이 들어와 있다. 어쩌다 시 외곽에 나가보면 히잡을 둘러쓴 캄보디아 여인들을 적잖게 볼 수 있고, 이슬람사원도 종종 눈에 띤다. 그리고 캄보디아에는 언제부터인가 중국인들이 대거 이민 와서 살고 있는데, 그들이 올 때 중국의 각종 더러운 미신을 들여와서 퍼뜨리고 있다. 우매한 캄보디아인들이 생각 없이 그것을 받아들여, 자신들도 부자가 된다고 하여 많이 숭배하고 있다.

캄보디아는 소승불교 국가이기 때문에 스님들을 신성시 대하고, 절에 가는 날이 정해져 있어서 그날만 되면 음식을 챙겨들고 절을 찾아간다. 스님들의 가르침은 완전 기복적이다. 절이 잘 되면 여러분이 부자 되고 잘 살게 된다고 가르친다고 한다. 그래서 절들은 돈을 모으기에 급급하고 사회의 도덕적 변화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다. 캄보디아는 가난하지만 절들은 모두 건물이 크고 화려하다.

아침마다 스님들이 통을 들고 집집마다 가게마다 시주를 받으러 돌아다니는데, 돈을 받고 나서 큰 소리로 주문을 외운다. 시주를 한 사람은 신발을 벗고 두 손을 합장하고 고개를 숙인 채로 맨발로 서거나 무릎을 꿇기도 한다. 그리고 빌어주는 주문대로 재물과 건강의 복이 임하기를 소원한다. 아주 빠르게 습관처럼 주문을 외울 때 나는 잘 알아 들을 수는 없었지만, 간혹 들리는 단어가 있는데 그저 건강하게 해달라는 말이다. 그리고 불교도 타락하여 고위직 스님들은 권력을 이용해서 재산을 많이 축적해 놓고 있고, 그들이 성폭행을 저질러서 기사에 올라오기도 한다.

한 번은 신문기사를 교회에 나오는 자매에게 보여주며 이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봤더니, 이미 스님에 관한 부도덕한 일들이 이 사회에 많이 있다는 듯이 그건 별일 아니라는 식으로 웃어넘기고 만다.

이곳에서 각종 우상숭배와 미신과 거짓종교의 폐해가 국가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 가를 확연하게 느끼고 있다. 캄보디아는 열대지방인데 우기에는 태양이 쨍쨍 내리쬐다가 느닷없이 소나기가 쏟아질 때가 많다. 소나기가 오기 전에는 어디에선지 갑자기 하늘에 시커먼 먹구름이 몰려오면서 캄캄해진다. 지금 캄보디아는 영적, 도덕적으로 그 시커먼 먹구름으로 덮인 것만큼이나 어둡다. 그런데 한국도 미래가 밝지가 않다는 게 과연 나만의 걱정거리일까?

과거 한국교회는 믿음을 지키기 위해 순교자들이 흘린 피와 일사각오의 정신으로 하나님을 섬기셨던 영적 지도자들과 성도들로 말미암아 한때 눈부신 부흥의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교회는 영적 가치보다는 세속의 복을 더 추구하고 편안한 현세에 안주하기를 원한다. 그래서 진리도 없고 생명의 빛도 없이 종교라는 탈을 쓰고,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거짓종교의 폐해에 고스란히 희생당하고 있는 캄보디아인들의 현실과 한국의 현실이 오버랩 될 때 마음이 어두워진다.

최근, 크마에를 잘 아시는 분의 도움을 통하여 핵심진리 가운데 성화된 성도들의 생애를 번역하여 책으로 발간하게 되었다. 크마에는 우리말과 언어구조가 많이 다르고 정확한 의미의 단어가 없는 것도 있기 때문에 번역이 매우 힘들다. 언어 차이의 한계가 있어 조금은 미숙한 면도 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기독교신앙에 관한 좋은 책이 거의 없다시피 한 캄보디아에 영적 가치가 매우 큰 기독교 성자들에 관한 글이 번역되고, 책이 발간된 일은 캄보디아 역사 가운데 아마 최초의 기념비적인 일일 것이다.

이 책을 주변의 선교사님들에게 무료로 배포를 하는데, 어떤 선교사님은 왜 가톨릭 성자들이 들어가 있느냐고 의아해 하면서 물어보는 분도 계셨다. 친절하게 설명하였더니 이해를 하셨는지 그러냐고 대답을 하시는 것이다. 아무튼 예수님의 빛은 영혼에 깨달아지는 만큼 받아들일 수 있다. 번역을 담당하신 분이 자기 주변 현지인들에게 책을 몇 권 나누어 주었다고 하셨다. 그리고 며칠 후 우연히 그들 옆을 지나가는데, 그들이 이 책을 주제로 대화를 하고 있더란다. 대화 내용을 가만히 들어보니 왜 우리 종교에는 이런 훌륭한 사람이 하나도 없는 거야.” 하고 다소 푸념하듯이 말하고 있더라는 것이다.

빛된 진리에 굶주려 있는 무지한 이 백성들의 영혼 속에도 빛을 그리워하고 목말라 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지극히 무가치한 나를 이곳으로 인도하신 뜻은 이 백성들에게 그리스도의 빛된 진리를 공급하려는 뜻이 아니겠는가. 선한 목자가 되어 참된 기독교의 영적 가치관을 심어주고, 최우선으로 천국의 밝은 빛을 공급하기 원한다. 또한 나 자신이 먼저 빛 가운데서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과 성령님께서 함께하는 은혜를 주셔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더욱 주님을 의지하며 나아간다.

박용환 선교사(캄보디아 프놈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