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보다 더 중요한 것

얼마 전에 한국에서 한 여자 목사님이 이끄는 영성치유집회 팀이 와서 프놈펜의 한 호텔에서 현지인 성도들과 선교사부부들을 초청하여 23일 동안 집회를 했다. 아주 고급 호텔은 아니지만 메콩 강이 바로 앞에 펼쳐있어서 제법 시원한 곳이었다. 나는 처음에 그 집회의 성격도 모르고 해서 별로 참여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현지 진행을 맡으신 선교사님이 우리 부부를 집회 운영의 도우미로 초청하였다. 가깝게 지내는 사이라서 거절하기가 어려워 돕는 목적으로 참석 하게 되었다. 그 치유집회의 특징은 참석자에게 먼저 자신의 라이프 스토리를 기록해서 제출토록 한다. 그런 다음 모두 침묵으로 들어가서 내면에 음성을 듣도록 한다. 나중에 각자가 제출한 라이프 스토리 기록 내용 중에, 본인이 지금까지 살아온 가운데 가장 상처가 되고 화가 났던 부분을 가지고, 치유를 위해 개발한 몇 가지 질문을 본인에게 직접 함으로써, 스스로 영적 깨달음이 있도록 유도하면서 치유를 해 나가는 일종의 은사활동(?)이다.

사모의 라이프 스토리 가운데 나의 급한 성격으로 인해 나타났던 비이성적 행동이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내용이 있었다. 리더 목사가 갑작스럽게 모두 앞에서 공개한 사모의 고백은 나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주로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우리의 허물을 쉽게 드러내고 부족함을 생각 없이 쏟아 낸다. 그래서 부부지간에 쉽게 죄를 짓게 된다. 사실 캄보디아에 처음 도착했을 때에 얼마 동안은 이곳 환경에 적응이 안 되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신경이 예민해진 상태에서 조금 거슬리는 일에도 언성을 높이고 짜증을 내었다. 나의 그런 행동들이 사모에게는 근심거리와 영혼에 상처가 되었나 보다.

어쩌면 내가 한국에서 모든 것을 정리하고 캄보디아에 오기 전에 미리 현지답사를 했다면 나는 이곳에 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처음 부르실 때 앞으로의 고난 여정을 미리 알려주지 않고 힘든 것은 모르게 가려 놓으시고, 오직 현실적 필요를 얻고자 하는 바람 하나만 가지고 떠나게 하셨다. 그와 같이 하나님은 쉽게 버리고 떠나는 나의 장점 하나 보시고 그렇게 인도하신 것 같다.

나는 아침 기도시간에 호텔 숙소에서 아침 햇살을 머금고 도도히 흐르고 있는 메콩 강을 바라보며 깊은 묵상에 잠겼다. 지나온 내 삶이 회상되면서 결국 나의 현 주소에 멈추게 되자 나 자신이 한 없이 불쌍하고 초라한 존재임을 깨닫게 되었다. 잘못 살아온 지난 삶을 후회와 반성도 하며 회개를 하니, 하나님의 사랑이 메콩 강의 장엄한 물결처럼 위로가 되어 밀려온다. 더불어서 내가 가야할 길과 주신 사명을 따라 캄보디아의 주님이 맡겨주신 양들을 더 많이 사랑할 수 있도록 기도하고 충성을 다짐하였다. 뜻하지 않은 길목에서 버려야 할 악습들을 정화시키는 은혜를 받았다.

영성치유집회 팀들과 시골의 한 교회를 탐방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함께 기도하는 시간에 리더 목사님이 갑자기 나에게 예언 기도를 해주신다고 지명하여 나오라고 하였다. 멋쩍어하며 나갔더니 귀에 대고 큰 소리로 방언과 통변을 하면서 예언을 하셨다. 주님께서 캄보디아에 나를 통하여 앞으로 새로운 차원의 선교의 장을 여실 계획을 하셨다는 것이다. 나보다 훌륭하고 능력 있는 선교사가 많은데 어찌 나 같은 존재를 통하여 그런 일을 하실까 반신반의했다. 예언하신 분은 집회가 끝나고 본인도 구체적인 내용은 잘 모르지만 아무튼 좋은 사명을 받았으니 축하드린다고 덕담을 건넨다. 그 예언은 영적 불모지인 이곳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빛과 소금의 삶을 가장 훌륭하게 사신 성자들의 삶을 증거하고 본을 보여, 이들이 영적으로 더 높이 성장할 수 있도록 인도하는 사명을 가리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하나님은 당신의 종들에게 사명을 주시고 충성하게 하신다. 하지만 사명보다 더 중요하게 다루시는 것은 우리의 인격이다. 선교가 거칠고 황량한 필드에서 많은 활동을 요구하는 사역이지만 그렇다 해도 자신의 영혼을 위하여 고요함 속에 들어가서 주님의 음성을 내면에 듣기 힘써야 하며 영적인 위치를 점검해보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선교나 무슨 사역이든지 승패 여부는 여기에 달려 있다고 확신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의 부족함과 부끄러움을 깨닫고 알게 해주지 않으시면 우리는 결코 알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은 감사하게도 우리를 정화시킬 목적으로 외부로부터 충격을 받게 하여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깨닫게 해주시는 때가 있다. 바로 그런 은혜가 큰 은혜다.

박이삭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