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선교] 부담

최근 속죄복음을 번역하게 되어 크메르어(캄보디아 언어)를 많이 연구하신 한 선교사에게 감수를 의뢰하게 되었다, 그분은 이곳에 오신 지 16년 되신 독신 여성이시다. 단어 선택에 오류가 없는지 자문을 구하고, 또 책 내용에 대해서 어느 정도 설명이 필요할 것 같아서 찾아갔다. 대화중에 거룩한 성도들에 관하여 설명하고 성경의 핵심진리에 대하여 개괄적인 설명과 요점을 말씀드렸다. 대화를 마치고 프놈펜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마음속에 찔림과 부담이 있었다. 빛이 밝은 진리를 증거하고 성화된 성도들의 삶을 이야기할 때마다 진리대로 온전히 살지 못하는 부끄러운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어서이다.

이곳 농촌에서도 소, 돼지, 닭 등 가축들을 많이 키운다. 삥뽕 교회 주변 풀밭에도 종종 어미 닭이 한 무리의 새끼 병아리들을 데리고 나타난다. 나는 호기심이 발동하여 유심히 관찰해본다. 그 어미닭은 종일 먹이를 찾아서 새끼 병아리들을 데리고 다니는데 자신의 새끼 병아리들에게 잘 따라 오라는 신호인지 계속 콕콕거리며 앞장서서 걸어간다. 그러다 먹잇감이 있을 만하면 자신의 두 발로 헤집어서 먹이를 찾아내서 자기는 안 먹고 새끼 병아리들을 먼저 챙겨 먹인다. 또 행여 누가 새끼 병아리들을 해칠까봐 잠시도 경계를 늦추지 않고 주기적으로 고개를 꼿꼿이 치켜들고 매서운 두 눈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자신의 새끼들을 지극 정성으로 돌보도록 창조하신 하나님의 솜씨가 참 오묘하다. 동시에 나는 지금 이 어미 닭처럼 정성을 다하여 영혼들을 사랑하며 영혼의 양식을 잘 먹이고 돌보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본다. 하나님께서 자연의 미물을 통하여 선교사인 나에게 교훈을 주신 듯하다. 이럴 때 영혼들에 대한 마음의 부담이 있다.

선교사는 대부분 본국의 교회 성도들의 기도와 후원으로 선교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그래서 본국의 후원 사정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어느 선교사는 최근 한국의 파송 교회에서 후원을 중단했다고 한다. 마음에 큰 상처를 받고 어떤 모임에서 기도 부탁을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지 머나먼 이국에서 한순간에 낙동강 오리알처럼 버림을 당한 신세가 되어버린 까닭에 적지 않은 근심과 충격에 빠졌을 것이다. 그래서 어떤 선교사들은 이곳에서 자립 선교를 위하여 식당이나 카페, 오리농장을 운영하는 등 나름대로 새로운 길을 모색해보기도 한다. 그러나 쉬워 보이지 않는다. 아무튼 선교사들은 후원 단체나 개인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마음의 부담이 있다.

캄보디아 말에서 천국은 불교에서 쓰는 극락과 같은 단어를 사용한다. 이 나라 성경을 처음 번역할 때 불교 승려가 참여했다고 하니, 과연 의미가 제대로 전해질까 의문이다. 조사 하나만 달라도 의미가 달라지는데, 외국인으로서 정확한 표현을 쓰는 건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아무튼 이 나라 언어로 설교하는 일은 늘 부담이 된다.

가난한 나라에서 이들을 어디까지, 어떻게 돕느냐 하는 문제도 부담 중 하나다. 새로운 직장을 구했는데 오토바이가 필요하니 돈을 빌려달라는 자매, 한두 번 만난 적이 있는데 결혼 청첩장을 들고 온 자매, 아버지 장례식 사진을 카톡으로 보내오는 청년. 이들을 그냥 지나치기도, 그렇다고 매번 도와주는 것도 고민되는 문제다.

처음 이 땅에 도착하였을 때는 마음에 각오를 단단히 하였다. 낯선 곳에서 환경에 잘 적응하고 감당할 수 있는 힘과 지혜와 능력을 주시고 죽도록 충성하게 해주시라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였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적응기간이 지나서인지 처음에 간절했던 기도가 점점 힘을 잃어가는 것 같고 방심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좀더 깨어있어야 하고 예수님의 빛을 전하는 선교사답게 모든 면에 본을 보여야 하는데,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오히려 무장해제가 되어가는 듯한 스스로를 바라보면서 마음이 편치 않고 부담스럽다.

부담을 느낀다는 것은 아직은 양심이 마비되지 않았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로 말미암아 부족한 자신을 인정하고 더욱 하나님을 굳게 붙잡고 의지하게 되는 것 같다. “주님! 제가 많은 분들에게 사랑의 빚진 자로서, 영혼들을 돌보는 선교사로서 항상 마음에 거룩한 부담을 느끼며 살아가게 하소서.”

박이삭 목사(캄보디아 프놈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