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선교] 영적으로 부요해지는 목표

처음에 캄보디아의 나무들을 보면서 사계절이 뚜렷하게 구분되는 한국의 나무들보다는 덜 단단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이유는 비가 많이 오고 추위가 없기 때문이다. 나의 판단과는 다르게 이 나라의 나무로 만든 의자나 가구들을 만져보면서 마치 쇠 덩어리 같이 무겁고 단단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통나무를 잘라서 통 채로 사용하는 의자는 무거워서 혼자서 들 수가 없을 정도이다.

캄보디아 밀림속의 목재들은 특히 중국인들에게 인기여서 관료들이 업자들과 결탁해서 불법으로 벌목하여 인접국가 베트남으로 빼돌려서 부정 축재를 하고 있다는 기사가 신문에 나기도 한다. 이곳의 나무들이 쇠처럼 단단해 진 이유는 건기로 접어들면 날씨는 건조해지고 대지의 모든 수분을 증발 시켜버리는 열대 지방의 불같은 뜨거운 태양열이 내리쬘 때 나무들은 극도의 궁핍한 환경으로 들어가게 되고, 생존을 위해 몸부림을 치는 과정에서 나무는 강하고 단단해지는 듯하다.

영적인 일도 마찬가지다. 믿음이 좀 더 강하고 단단한 익은 열매로 나아가려면 궁핍과 환란 속에서 연단하시는 주님의 섭리와 인도하심을 가르치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의 현실 속에서 과연 적용이 될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그렇다 할지라도 나는 물질의 부함보다는 가난함이 더 큰 축복이며, 주님을 만나기가 더 쉽고 영적으로 유익함이 크다고 강조한다. 그럼에도 부족하고 가난하기에 도움이 필요하고, 무언가 도움을 받기 위하여 교회를 나오는 이들이 그런 말씀을 들었을 때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일까 고민이 되기도 한다.

생김새가 다른 낯선 선교사가 갑자기 나타나서 교회를 짓고 예배에 참석하라고 권하면 그들은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본다. 무슨 예수라는 신에게 예배를 드리라고 하는데 도대체 교회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 궁금하다는 듯이 교회에 한 번쯤 온다. 그러나 예배가 끝나자마자 먼저 하는 말이 몸이 아프다고 약을 달라고 한다. 그런 분은 그날 온 목적이 분명 약을 타러 온 것이다. 그래서 시골 사역지에 갈 때는 프놈펜에서 미리 사 놓은 이런 저런 상비약을 상자에 넣어 싣고 다닌다.

요즘 나와 사모는 이들에게 무면허 약사 역할을 한다. 어떤 경우에는 약과 함께 기도를 해 주기도 한다. 그런데 하나님이 선교지의 다급한 사정을 고려해 주셨는지 그 다음 주에 가서 보면 놀랍게도 치료가 되어 있는 것을 보기도 한다. 그래서 믿음이 조금 들어 간 듯 하더니 시간이 좀 지나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이 또 한 동안 예배 때 보이지 않는다. 원래 사람이란 그런 존재라고 생각하며 그래도 언젠가는 변화 되리라 소망을 가져본다.

나의 선교적 목표와 가치관은 이들의 믿음이 높이 자라서 영적으로 부요해 지는 삶을 사는 것이다. 그래서 먼저 영적 가치관을 올바르게 심어 주고 그들 스스로가 중요한 것을 깨닫고 추구하도록 인도하려고 노력한다. 비록 이들이 가난하다 해도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난 죄인들이기에 세상적 욕심이 가득한 부자와 같다.

한 예로 교회에서 달란트 시장을 할 때 좋은 물건을 보면 서로 먼저 차지하려고 하는 재빠른 행동과 번득이는 눈빛을 보면 그들의 속사정을 알 수 있다.

어느 주일날 누가복음의 부자와 나사로에 대해서 설교를 하였다. 부자가 지옥에 갈 수밖에 없었던 근본적 이유는 물질의 부요함 때문에 쾌락에 정신이 팔려 하나님과 자신의 구원의 문제에 대해서는 무관심 했고, 상대적으로 거지 나사로는 가난함 때문에 마음이 겸손하여 하나님을 찾고 의지하게 되었으며, 천국을 소망하는 마음이 강하게 일어났다고 설명해 주니 그들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거지 나사로는 가난하여 겸손했고 세상에서 의지 할 것이 없으니 늘 천국을 바라보는 생활을 했다고 하니까 가난한 자신들의 처지와 비교가 되면서 공감대가 크게 작용한 것이 아닐까 싶다.

선교사인 나도 이들과 거리감을 없애기 위하여 여러분은 나를 부자로 보실는지 몰라도 사실 한국에 내 소유의 집도 없고 단 한 끄레(1m×1m의 캄보디아 땅의 면적 단위)의 땅도 없는 가난한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믿어지지 않는지 이 말에 약간은 의아해 하는 눈치였다. 설교 후 기도를 할 때 말씀의 의미를 깨달았는지 어느 성도의 입에서 그동안 들어보지 못했던 아멘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이런 경험을 통해 무지와 가난과 우상에 절어 있는 이 나라 사람들이라도 영혼을 쪼개고 수술하여 새롭게 고치는 하나님의 말씀의 검 앞에서는 무릎을 꿇게 됨을 깨닫게 되었다. 이 일로 또 하나의 가능성을 보게 되어 위로와 큰 힘을 얻게 되었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박이삭 목사(캄보디아 프놈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