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삥뽕마을에 교회 건물을 세우고 나서 장년부를 대상으로 금요일마다 성경공부를 했다. 끝나면 사모와 전도사 쓰라이 마이와 함께 동네 전도를 했다. 예배에 참석하라고 하면 대답은 잘 하는데 막상 오지는 않는다. 어떤 사람은 만약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했으면 왜 불평등하게 부자와 가난한 사람을 만들어 놨느냐고 따진다. 무지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그런 질문을 들을 때는 놀라기도 한다. 어쨌든 하나님의 예정된 백성들을 불러서 말씀으로 가르치고 교회의 일꾼으로 세우는 일이 우리의 사명이기에 성령께서 역사하시기를 기도하며 최선을 다하고 있다.

캄보디아인들이 자기나라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면서 주로 하는 말이 있다. 너희들은 캄보디아 사람인데 왜 미국이나 프랑스 종교를 믿느냐는 것이다. 과거 프랑스 식민지 시절에 미국과 프랑스선교사들에 의해서 기독교가 들어왔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설교 시간에 예수님은 온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신 온 인류의 하나님이시다.”라고 자주 강조해 말한다. 성탄절에는 초대장을 만들어 나누어주며 선물을 풍성히 준비했으니 꼭 참석하시라고 광고도 한다. 그래도 불교 골수 신자들이나 생활 형편이 웬만한 사람들은 꼼짝도 하지 않는다. 예수님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러 오셨다는 성경구절이 불현듯 떠오른다.

우리 교회에 출석하는 쏘운이라는 젊은 남성이 있다. 이 친구가 고맙게도 교회에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어서 무슨 일이 있으면 프놈펜에 있는 나에게 전화로 알려 준다. 어느 수요일 아침에 그에게 전화가 왔다. 그동안 우리 교회에 나오던 뽐이 죽었다는 것이다. 뽐은 40대 초반의 여성인데 주일과 금요일 성경공부 시간에 여러 번 참석했다. 거칠고 유난히 검은 피부에 눈은 황달기가 있는지 노랬고 행색은 남루하고 가까이 가면 악취와 함께 약간 술 냄새가 나기도 했다. 가끔 교회로 들어오는 길목에 놓여 있는 평상에서 낮잠을 자곤 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기운이 없어서 그랬던 것 같다.

한번은 금요성경공부를 인도하러 삥뽕 마을에 가는데 길 옆 풀섶에 누가 앉아 있었다. 생각 없이 지나가다가 문득 뽐 같기도 하여 다시 차를 돌려 그 자리에 가보니 뽐이었다. 아마 양식을 얻으러 먼 친척집에 가다가 기운이 진하여 주저앉아 있는 것 같았다. 마침 금요일 오후라서 차에 태워 교회에 같이 왔다. 성경공부에 이어 각자 기도제목을 내어 놓고 기도하는 시간에 뽐에게 기도 제목을 물으니 쌀 좀 주시길 기도해 달라고 하였다. 그런데 사실 며칠 전부터 생각이 나서 그녀에게 주려고 미리 사 놓은 쌀을 차에 싣고 와서 기도회가 끝나고 쌀을 한 자루 주었다. 그리고 살아계신 하나님이 자매님의 기도에 응답하셨으니 열심히 신앙생활하라고 격려해 주었다.

그후 두 주일 안 보이더니 갑자기 죽었다는 연락을 받게 된 것이다. 병색이 있어 보이긴 했지만 이렇게 갑자기 죽을 줄은 몰랐다. 그의 사정을 좀더 일찍 알았더라면 잘 돌봐줄걸 하는 후회되는 마음이 들었다. 소식을 듣고 달려가 보니 차마 집이라고도 할 수 없는 한 평 남짓한 움막이었다. 그것도 자기 땅도 아닌 뚝방에 썩은 나무판자로 얼기설기 지은 것이었다. 남아 있는 것은 찌그러진 냄비 하나와 우리가 얼마 전 건네준 쌀자루뿐이었다. 무너진 육신의 누추함을 가려줄 나무 관 하나도 없이 때 묻고 낡은 헝겊에 덮여 있는 시신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불행한 가정에 태어나 결혼도 하지 못하고 이곳까지 흘러와 홀로 살다 병을 얻어 쓸쓸히 죽은 것이었다.

가족이 없으니 이웃 주민들이 나서서 장례준비를 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옆집 대나무 평상에 큰 부처 그림을 메달아 놓고 그 앞에는 향불을 피워놓았다. 나는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겠으니 동네 사람들과 교회 식구들에게 모이라고 하였다. 향불이 피워진 부처상 앞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려 하니 기분이 이상했다. 그래도 이들에게 복음을 전할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담대히 설교를 했다. 종교가 다르다고 슬그머니 일어나 자리를 피하는 사람도 있었다. 가족이 없어서 바로 그날 전통식대로 옆의 빈 땅에서 시신을 화장한다고 한다. 선교사의 몫이라고 생각되어 장례비에 보태라고 조의금을 넉넉히 드리고 돌아왔다.

얼마 후 그녀가 살던 마을에 다시 전도차 갔었는데 움막 같은 집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동네 사람들이 이제 집주인이 없으니 치워버린 것이다. 대신 한 무더기의 나무토막들만 널려 있었다. 인생의 허무함을 느꼈다. 그동안 많은 대화를 하지는 못했지만 뽐은 천국에 갔으리라 믿고 싶다. 그녀는 몸과 마음이 가난하였고 아픈 몸을 이끌고 있는 힘을 다하여 교회에 와서 하나님 말씀을 들었다. 그리고 마지막 심한 고통과 깊은 고독 속에서 하나님을 찾고 의지하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진정 복된 일은 영혼이 구원받는 것이다. 그 구원을 베푸시는 예수님은 고통 받는 자와 가난한 자들의 주님이시다.

박이삭 목사(캄보디아 프놈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