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선교] 네게 받은 은혜와 사랑을 기억하라

캄보디아에서 비교적 장기간 선교를 해온 선교사들이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아픈 경험 중 하나는, 오랫동안 사랑을 베풀고 정성을 들여 사역자감으로 알고 후원 및 양육을 해왔지만 어느 순간 등을 돌리고 떠나는 경우다.

한인선교사회 모임에서 한 선교사가 설교 시간에 자신의 이러한 경험을 간증하였다. 캄보디아 북서쪽 태국 접경지역에 빠일린 주가 있다. 매우 열악하고 낙후된 지역이다. 그곳에서 장래 아무 소망도 없이 아주 가난하게 사는 아이를 데리고 와서, 자식처럼 사랑으로 돌보며 대학까지 공부시켜 교회 일꾼으로 세워 놓았다. 그런데 어느 날 종이쪽지 하나를 남겨 놓고 종적을 감춰버렸다는 것이다. 이 학생은 두뇌가 뛰어나서 대학에서도 장학생으로 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쪽지에는 달랑 자신은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 이곳을 떠나야겠다.”고 적혀 있었다고 한다. 실상은 보수가 많은 직장을 얻기 위하여 떠나버린 것이었다. 이에 충격을 받은 그 선교사는 한동안 캄보디아에서 더 이상 선교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질 만큼 힘을 잃었다고 하였다.

선교사들의 큰 소망을 하나 꼽으라면 제자 양육일 것이다. 그러기에 양육하는 이들을 향한 기대와 소망이 클 수밖에 없다. 든든한 하나님의 일꾼, 제자 한 사람을 잘 키워내기 위하여 모든 것을 감수하고 투자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배신을 당하면 그만큼 허탈감과 실망도 크다.

그 선교사님은 금식을 하면서 반은 푸념 섞인 말로 주님, 제가 이래도 계속 이들을 품고 선교를 해야 합니까?”라고 기도를 하는데, 주님께서 자신의 과거를 기억나게 하셨다고 한다. 방탕한 생활을 하던 젊은 시절,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포기하였지만 아버지는 끝까지 자신을 믿어주고 기다려주었다고 한다. 아버지와 주님의 사랑이 교차되면서 다시금 힘을 얻게 되었다고 간증하였다.

나도 마음에 와 닿는 내용이었다. 이곳의 영혼들을 가르치고 양육할 때 어디까지 사랑과 희생을 베풀어야 하는지, 겸손하고 숙연한 자세로 자신을 돌이켜보는 좋은 기회였다.

어느 수요예배 때 청년들과 같이 디모데후서를 함께 읽고 말씀을 나누는데 한 구절이 선명하게 들어왔다. “너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고 너 보기를 크게 사모한다.” 사도바울이 디모데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사도 바울과 나의 모습이 너무나 비교가 되어 부끄러운 마음이 확 들었다.

그 즈음 교회 안에 한 형제가 나의 마음을 많이 불편하게 하고 있었다. 설교시간에 성경책을 일부러 들어올려 얼굴을 가리며 불손한 태도를 보이기도 하고, 주일예배 빠진 것에 대해서 교훈으로 삼기 위하여 한 예를 들면, 뒤에서 왜 흉을 보냐는 메시지를 보내기도 하였다. 한 번은 고등부 여학생을 훈계하였는데, 자신이 마치 대변인이라도 되는 양 못마땅하다는 표정으로 수요 예배시간에 달려왔다. 수요일에는 거의 오지 않았기에 멀리서 왜 달려왔는지 즉시 눈치를 챘다. 그의 의도도 순수하지 않고 처음 교회에 나왔을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계속해서 보게 되자, 차라리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을 품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주님께서 나의 내면에 찔림을 주셨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선교사는 현지 목회자들보다 어려운 부분이 더 많다. 이 나라에 영적 현실의 문제점을 안타까워하며 제기하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발전의 기회로 삼기보다, 자존심을 앞세우며 자신들을 무시한다고 오해하며 불편해 한다. 이는 타성에 젖어 있는 잘못된 기독교의 가치관과 배타적인 습성이 몸에 배인 까닭도 있다. 그럴 때면 선교사들 역시도 왠지 모를 소외감과 묘한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 때론 난감하기도 하고 처신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된다. 이 역시도 선교사가 겪어야 하는 하나의 과정일 것이다.

어떤 문제가 발생할 때 잘잘못을 떠나 무조건 동족이라고 옹호해주면서 선교사를 이방인 취급할 때는 외롭기까지 하다. ‘이들에게 나는 영혼의 목자이기 전에 외국인일 수밖에 없구나.’ 고국을 떠나 영혼의 구원을 위하여 희생과 섬김의 삶을 살건만, 단순히 피상적인 면만 가지고 소심한 잣대로 판단하는 이들을 보면 서운한 감정도 든다.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요구하고 어떤 도움을 받을 때면 잠깐 반짝하는 시늉을 한다. 그러나 별 소득이나 이익이 없으면 쉽게 등을 돌리고 떠나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곳은 영적 전쟁터다. 오늘의 아군이 내일은 적군으로 바뀌어 배신하고 피 흘리는 아픔을 반복해서 겪어야만 한다. 배신과 쓰라림의 고통이 없이는 선교를 온전히 배울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고통을 통해 선교의 꽃은 피어난다. 그래서 선교사들은 항상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비록 수많은 도움을 주고도 배신의 쓴잔을 맛보아야 하고, 그들에게 진실한 감사가 없을지라도 이 걸음을 멈출 수가 없다. 주님께서 나 같은 죄인에게 베푸신 그 크신 은혜와 사랑을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사랑이 오늘도 나를 이곳에 머물게 한다.

박이삭 목사(캄보디아 프놈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