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깊이 사랑하는 마음을 주소서

c7d8bfdcbcb1b1b31.jpg3월과 4월의 캄보디아는 건기의 막바지인 가장 더운 기간으로 평균 온도가 40도를 오르락내리락 한다. 한국은 여름이 오면 먼저 장맛비가 대지를 풍성하게 뿌려주는데, 이곳은 불볕 더위는 계속되지만 비는 한 방울도 구경하기 어렵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며칠 전 소낙비를 한바탕 뿌려주어서 주변의 흙먼지가 조금 씻기어 마음이 한결 가볍다.

이번 주부터는 쫄 츠남 크마에라는 명절이다. 우리나라 구정과 같은데, 4월 중순에 있다. “들어가다’, “츠남인데 새해로 들어간다는 뜻이다. 이곳 명절의 휴무는 굉장히 길다. 학교 같은 경우는 명절 전후로 거의 이십일 정도 휴학한다. 우선 교사들부터가 정신이 해이하다. 학생이 학교에 등교해도 공부도 안 가르치고 흐지부지 시간을 때운다. 교사들이 워낙 적은 보수를 받다 보니 사명감도 없고 자기 마음대로 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이때는 일도 안하고 고향으로 내려가거나 모두가 들떠 있다.

그 주간에 고난주일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나름대로 열심히 말씀을 준비했건만, 단 한명만 나와 덩그러니 앉아 있었다. 그동안 주일예배가 중요하다고 강조하였지만 대답은 쉽게 잘해도 행동으로 옮겨지지는 않는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 같아 맥이 빠지기도 한다. 놀려고만 하지 말고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고 가르쳐도 보지만 오랜 동안 몸에 배어 있는 습관인지라 그걸 바꾼다는 것이 쉽지 않다.

캄보디아는 연중 휴무일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국가라고 한다. 여차 하면 쉬고 놀기를 좋아하면서도 책임감도 없는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움이 인다. 또한 국가의 발전을 위해 깨어 있는 진실한 지도자가 없음에 안타까움이 더더욱 클 따름이다. 그러나 바로 저들의 모습이 아멘이요 충성이신 우리 주님앞에 한없이 게으른 나의 모습임을 알기에 부끄러울 따름이다.

어떤 이들은 캄보디아인들이 참 순수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처음과는 달리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순진함은 잠시뿐 점차적으로 신뢰가 안 가는 모습들 때문에 선교의욕에 찬 물을 끼얹기도 한다. 불편한 환경은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가고 있지만 이들의 모습에 자꾸만 실망이 되고 무언가 베풀고자 하는 마음이 위축된다. 하지만 나 같은 무가치한 종을 이곳에 보내신 하나님의 분명한 뜻이 있음을 믿기에 겸손하게 주님의 은혜를 간구할 뿐이다.

이곳에서 선교사역을 계속 수행해 나가는 데 필요한 동력은 뜨거운 열정이라기보다 주님을 순간순간 의지하면서 인내하며 순종하는 것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러기에 오늘도 순간순간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내 안과 밖에서 나타나는 수많은 장애물과 싸워 나가고 있다. 또 하나, 끝까지 선교의 끈을 붙들고 앞으로 나갈 수 있는 비결은 오직 사랑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크메르어를 가르치는, 육십 세를 넘기신 한국인 한 분이 계신다. 부모님이 신실한 기독교신앙을 가지셨고 아주 유복한 집안에서 자라나신 분이다.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십수 년을 국어선생 하다가 전 처와 이혼하였다 한다. 그리고 딸과 단둘이 살다가 홀아비로 사는 것이 힘들고 해서 국제결혼을 하기 위하여 18년 전에 홀로 이곳 캄보디아에 오셨다고 하셨다. 이곳에서 현지인과 재혼을 하였는데 나이가 어린 여자와 결혼하셨다. 그리고 뭐가 크게 잘못되었는지 그 현지인 여자와 헤어짐과 동시에 가져온 재산도 다 없어지고 이 나라의 교도소까지 갔다 오셨다 한다. 한국인으로서 어떻게 캄보디아의 교도소까지 가게 됐는지 깊은 내막은 알 수 없었지만 아마 하나님의 간섭하심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교도소에서 삼년을 복역하는 동안 특별히 할 일도 없고 해서 크메르어만 집중적으로 연구하였다. 그것이 동기가 되어서 계속 공부를 한 결과 이제는 웬만한 현지인보다 학문적으로 크메르어를 더 잘 아는 박사가 되었다. 출소하기 전 날에 알고 지내는 어떤 한국 선교사 한 분이 교도소에 일부러 찾아 와서 이제 당신은 선교사들에게 현지 언어를 가르치는 사역을 하게 될 것이라고 하나님이 자기에게 알려 주셨다고 예언을 하고 가셨다 한다.

이분은 동네에서 자국어 글자를 모르는 현지인 노인이나 사람들에게 신문을 읽어 주면서 뉴스를 전달해주는 친절을 베풀기도 한다. 이 나라는 문맹이 많아서 말은 해도 자국어를 읽거나 쓰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야말로 주객이 전도가 된 셈이다. 이분은 이곳에 온 한국인들에게 크메르어를 가르쳐주기도 하고 또 이곳에 진출한 한국기업들을 상대로 법인에 관련된 서류를 작성해주거나 또는 문서 번역이나 법적인 문제들을 상담해주면서 그 수입들을 전부 현지인 학생들의 교육 후원비로 지원하고 계신다. 그는 이곳에서 많은 것들을 잃어버렸지만 더 값진 것을 얻었음에 틀림없다. 삶의 의미와 보람을 찾았다는 그의 고백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말이다. 그런데 얼마 전, 강의 시간에 마음속에 있는 말씀을 한 마디 던졌다. 18년 이상을 지내왔지만 가면 갈수록 캄보디아에 실망만 늘어나고 매력은 사라진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나라에 있어야 될 이유는, 그들을 사랑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고백한다.

하나님의 시간은 너무나 정확하고 오묘하셨다. 그분을 통하여 주님께서는 내게 정답을 말씀해 주시었다. 이곳에서 하나님은 내 가슴에, 그리고 그들의 가슴에 다른 무엇보다도 사랑의 두 글자를 깊이 새기기 원하셨다. 사랑이 허다한 허물을 덮는다는 진리 앞에 다시 한 번 성전에서 무릎을 조아린다.

박용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