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가르쳐야 할 말씀

캄보디아는 국제 사회에서 최빈국으로 분류된 나라다. 그래서 미국 등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나라에서 NGO(비정부단체)나 정부 기관을 통하여 지속적인 원조를 해주고 있다. 한국에서도 외교부 산하 국제협력기구인 코이카를 통하여 대학교 내 교육시설들을 건립해주는 등 아주 많은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안다. 그런데 문제는 외국의 원조와 도움을 너무 오랫동안 받아와서, 받기만을 바라는 거지근성이 정부나 국민들 속에 만연해 있다는 것이다.

우리 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청년들이나 학생들도 모두 가난하다. 그들의 집을 방문하면 모든 사정이 한눈에 다 드러나서 차마 모른 채 할 수가 없다. 더군다나 나는 모질지도 못하고 마음이 약한 편이라, 자주 인정에 끌려서 예정에 없는 구제를 하는 바람에 때로는 사모에게 감정에 휩쓸리지 말라고 핀잔을 듣기도 한다.

어떻게 하면 좀더 유익한 도움을 줄 수 있을까 하여 지혜를 하나님께 구하고 있다. 외국인 선교사가 있는 교회에 나오는 것도 무언가 바라고 나오는 경우가 많고, 별로 이득이 없을 것 같으면 발길을 끊어버리는 이들. 고마움을 모른 채 받기만 익숙한 이들을 보면 참된 신앙이 언제나 스며들까 마음이 아련해온다.

짠니는 우리 교회에 나오는 프놈펜대학 사회학과를 다니는 26살 여학생이다. 그녀는 남동생과 함께 출석하고 있다. 고향은 프놈펜에서 100킬로미터 조금 넘게 떨어진 깜뽕츠낭인데 프놈펜에 유학을 온 셈이다. 얼마 전 우리에게 찾아와서 자신의 어려운 사정을 하소연하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 있으려니 무언가 도움을 주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었다.

그동안 프놈펜 시에 있는 친척집의 크지도 않은 방 한 칸에서 열 명이 넘는 대식구가 생활하다가 이제 쫓겨나다시피 나오게 되었단다. 새로 방을 얻어야 되는데 30불 정도의 월세방을 구하러 다닌다는 것이다. 사실 그 정도의 액수는 농촌 출신의 학생들에겐 큰 부담이다. 짠니의 여동생이 프놈펜 시 외곽에 있는 공장에서 월 100불을 벌어서 고향 부모에게 50불 정도를 보낸다. 그 중에서 얼마를 또 다시 프놈펜에 유학중에 있는 이들에게 인편을 통하여 보내주는데, 그런 재정 형편에 어떻게 방세로 30불을 쓸 수 있겠는가.

이야기를 다 듣고 난 후에 우리가 매달 그 방세를 대신 지불해 주겠노라고 해서 우선 한 달치 방세와 필요한 것도 더불어 구입을 하라고 넉넉히 돈을 주었다. 일 년치 학비 250불도 도움을 주겠노라고 약속을 했다. 여기는 대학교 1년 등록금이 그 정도 수준이다. 물론 학과에 따라 약간씩 차이는 있다.

한 달이 지난 다음 주일, 예배를 마치고 식탁에 마주 앉아서 대화를 할 때에 다음 달 방세 30불을 건네주었다. 그는 받은 돈을 확인해 보더니 갑자기 표정이 어두워지는 것이다. 고마워하기보다는 뭔가 부족하다는 표정이었다. 이유인즉 방세에다가 물세 전기세 포함해서 더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사실 물세 전기세까지 주겠다고 약속은 하지 않았지만 분위기가 좀 그래서 10불을 더 꺼내 주었더니 그제서야 어꾼하면서 고맙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

그들의 잘못된 습성을 보면서 마음이 조금 씁쓸해졌다. 한편으로는 액수의 크고 작음을 떠나서 받은 것만으로 고맙게 여기며, 부족한 부분은 스스로 노력하여 해결하기 보다는 당연히 모든 것을 받기 원하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또한 자주 손을 내밀어도 전혀 미안함이 엿보이지 않는 것이다. 물론 너무 가난하다보니까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고 어디에 간들 비빌 데가 아주 없으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남에게 너무 의존하는 습성은 좋은 것이 아니라 반드시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또 한 가지 고민거리는 십일조에 관한 부분이다. 십일조를 가르쳐야 하는데 선뜻 설교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얼마 전에 십일조에 관한 설교를 준비해 놨는데, 원고에 뽀얀 먼지만 쌓여가고 있다. 한 달에 100불을 벌어서 얼마는 시골 고향에 부모님에게 보내고 또는 학비로 쓰고 방세 내고 하는 사정을 훤히 알고 있는데 십일조를 드리라고 차마 입을 열 수가 없는 것이다.

가까운 곳에 살고 계시는 한 선교사님과 대화 도중에 자신의 사역지인 시골의 200명 이상 출석하는 교회에서 헌금에 관한 설교를 했더니, 그 다음 주일에 숫자가 절반으로 확 줄어들더라는 이야기를 몇 달 전에 들은 적이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매달 용돈을 주는 학생들에게는 거기에서 반드시 십일조를 드릴 것을 가르치고는 있다. 하지만 너무 가난한 이들 앞에서 설교를 통하여 십일조를 말하기가 선뜻 용기가 안 나는 것이다. 우리 교회 주일 예배에 한 사람이 드리는 헌금은 보통 1000리엘이다. 한국 돈으로 300원 정도다. 그것도 모두가 내는 것은 아니다.

얼마 전에 헌금을 모아 놨다가 연말에 우리보다 더 가난한 사람을 돕겠다고 광고를 하였다. 그랬더니 요즘은 예배시간에 헌금을 하는 사람이 예전보다 더 많아 보인다. 그러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가르쳐야 할 것은 가르쳐야 하기에 언젠가는 십일조에 관한 설교를 하려고 한다. 도움을 받는 것에만 익숙해져 있고 베풀거나 드릴 줄 모르는 신앙이라면 참 신앙이 아니지 않은가. 이들을 위해서라도 십일조에 대해 잘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복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니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믿음을 주셔서 기꺼이 주님을 위하여 자기의 가장 귀한 것이라도 드릴 수 있기를 기도한다.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의 기쁨을 알아가길 기도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값없이 주신 구원의 은총과 복음이 물질보다 거룩함을 알아가길 기도한다. 그래서 이 가여운 영혼들 모두가 구원의 반열에 이를 수 있기를!

박용환 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