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선교] 예로 순종하기까지 단련하시는 주님

c4afbab8b5f0bec61.jpg요즘 교회의 분위기가 한국에 다녀온 이후로 침체상태다. 가까이 지내는 선교사의 말에 의하면 선교사들이 사역을 하다가 한국에 한번 갖다 올 때마다 그동안 나왔던 인원이 확 줄어든다는 것이다. 우리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아직은 기초를 쌓는 단계라 생각하고 마음을 급하게 먹지 않고 멀리 바라보면서 하나하나 준비를 하기로 하였다. 시행착오를 범하지 않기 위해 아직은 배우는 마음으로 조심조심 걸어가는 중이다.

사실 시골로 가서 교회를 더 많이 개척하고자 하는 마음이 강하게 일어날 때도 있다. 이 나라에는 24개 주가 있는데, 아직 교회가 미개척 된 지역이 아주 많다. 주변에 선교사 몇 분은 프놈펜과 비교적 가까운 시골에 교회를 세워서 주일 날 아침 일찍 차로 달려가서 예배를 인도하고 돌아오시는 분들도 계신다.

시골에서 교회를 개척할 때는 메품이라고 불리는 그 마을의 이장을 먼저 찾아가서 선물을 주고 정중히 인사를 한 뒤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시골은 마을의 수장의 권세가 커서 그의 맘에 들면 적극 도움을 받지만, 눈에 거슬리는 경우에는 그 마을에 발도 못 붙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어느 집 마당을 빌려서 예배를 드리면서 교회를 개척해 나간다. 그런데 어느 선교사들은 언어가 준비되지 않아서 현지인 신학생들을 고용하여 보수를 주고 그들에게 설교를 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 언어공부가 귀찮고 힘들다 하여 검증이 안 된 현지인에게 설교를 맡기고 운영하는 것이다.

이 나라 신학생들이나 사역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담배를 피우고 음주도 한다는 말을 들은 바가 있다. 그리고 한국처럼 은혜를 받아 사명감으로 사역을 하기보다는 보수를 받는 하나의 직업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들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은 조심스러운 일이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직접 처음부터 가르치고 훈련해서 현지사역자를 세우는 것이다. 그래서 선교사역을 하면서 가장 중점적으로 신경을 써야 할 일이 재목감을 발굴하고 사역자로 키워 내는 것이다.

국내에서 목회하는 것처럼 숫자에 연연하는 것은 선교지에서는 별 의미가 없다. 사역을 하면서 진실하고 충직한 사람을 발굴하고 양육하는 것을 항상 신경써야한다. 예수님께서 빛으로 무장한 충성된 12제자를 세워 온 세계의 복음의 꽃을 피웠듯이 한 명의 바른 일꾼이 세워질 때 그 땅을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보다도 이 나라의 문화와 그들의 아픔을 가장 잘 이해하고 감싸 안을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이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러한 일은 말과 같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많은 기도가 필요하고 끊임없는 희생과 인내가 필요하다. 교회를 나온다 하여도 도중에 흐지부지 중단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 고등학생 한 자매가 그동안 교회를 잘 나오다가 여러 주 동안 교회를 안 나오고 있다. 집안이 아주 가난하여 물질과 여러 가지 도움들을 주면서 사랑을 많이 베풀어 주었던 자매였다. 성격도 아주 쾌활하고 재능이 많아서 혹시 교회의 일꾼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가지고 있었다. 교회에 안 나오는 이유는 이모 결혼식에 우리가 참석 안 했다는 것에서 비롯된 것 같다. 심방을 가서 교회를 나오라 권면해도 대답은 하지만 아예 오지를 않는다. 이모도 전에 교회에 함께 나왔던 20대 중반의 자매이다. 1년 전에 생활이 어려웠던 그에게 장사를 해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500달러 상당의 오토바이가 달린 음료수 판매대를 사주고,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잘 할 것을 권유하였다.

그런데 그 자매는 교회를 몇 번 나오다가 바쁘다는 핑계를 대더니 아예 발길을 끊었다. 사실 이러한 모습들은 이 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그러다가 얼마 전에 결혼식 청첩장을 들고 찾아왔다. 그동안 돈이 필요할 때는 돈을 빌리러 오곤 했지만 그 외는 거의 오지 않았었다. 결혼 대상자는 자기의 이종사촌이라 한다. 이 나라는 근친결혼을 많이 한다.

과거에 큰 도움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성실하게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과 자신이 아쉬울 때만 찾아와서 돈 얘기하는 그 자매가 좀 뻔뻔하게 느껴졌다. 사실 그전에 조카들을 통하여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축의금을 주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귀중한 선교 후원금을 그렇게 쓰면 안 된다는 명분하에 말이다. 선약도 있고 결혼식 장소가 시골의 먼 그의 고향인지라 갈 수 없노라고 선을 그었다. 그래도 급구 억지로 청첩장을 던져놓다시피 하고 갔다. 이 나라의 청첩장속에는 아예 돈을 담는 봉투가 함께 들어 있다. 나중에야 이 나라의 결혼식문화는 청첩장을 받고도 돈을 들고 결혼식에 안가면 절교로 받아들인다는 말을 어느 분에게 들어서 알게 되었다. 이곳은 혈육에 대한 애정이나 유대관계가 아주 강하다. 그래서 자기들의 이모 결혼식에 우리가 참석을 안 했다고 교회에 발길을 끊은 것이었다.

이들의 사고와 행동에 괜히 화도 나고 괘심함도 일어났다. 하지만 이 모든 상황 속에서 주님은 내 안의 문제만을 눈여겨보시는 듯하였다. “겉옷을 벗어 달라고 하면 속옷도 벗어 주고,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리를 함께 가주라라는 산상수훈의 말씀이 떠오르며 양심가운데 강한 책망으로 다가왔다. 내 논리와 명분만을 고집했던 나의 오만과 편견과 불순종이 보이기 시작했다. 뜨겁게 달가워진 성전 바닥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주님, 저의 오만과 편견을 용서하여주소서. 제 생각들과 소유들을 온전히 버릴 때까지 단련하시는 주님의 선한 손길을 뿌리치지 않도록 도와주소서. 끝까지 이 길을 인내로 따를 수 있는 용기를 부어주소서.”

예만 하셨던 주님의 그 온전한 순종 앞에 오르고 또 올라야 하는 먼 산처럼 느껴지지만, 빛으로 교회가 산 위에 우뚝 서는 그날을 소망하며 다시금 한 발을 내딛는다.

박용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