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케 하는 사랑의 채찍

한 치의 앞도 알 수가 없는 것이 우리의 인생사다. 그렇지만 우리가 겪는 모든 일들 가운데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깊은 메시지가 담겨 있기에 감사드릴 뿐이다.

9월을 눈앞에 두고 있던 어느 늦은 오후에 사모와 차를 타고 집을 나설 무렵이었다. 내가 먼저 차에 오르고 조금 지체 하는 듯 하더니 사모가 검은 비닐봉지 하나를 들고 차에 탔다. 그리고는 아니, 내가 왜 이 봉투를 들고 왔지?” 하면서 이상하다는 듯이 중얼 거렸다. 직접 들고 왔으면서 그걸 모른다 하면 어쩌란 말이냐고 핀잔을 주었다. 봉투 속을 확인해 보니 며칠 전 담근 오이지였다. 계속 봉지 속을 들여다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상하다는 듯이 똑같은 말을 중얼 거렸다. 나는 조금 언성을 높여서 잘 생각해 보라고 다그쳤다. 내 생각에는 피아노 레슨을 받으러 가는 길이기에 당연히 가르쳐주는 분에게 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모는 아니란다. 순간 정신을 잃으면 무의식적으로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던 중 심각성을 느낀 것은 레슨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서였다. 자동차 뒷자석에 놓여있는 물건하나를 보더니 그것을 누가 놔두었느냐고 또 묻는다. 사실 그것은 어느 선교사의 부탁을 받고 전해주기 위하여 전 날에 사모 자신이 직접 실어놓은 식료품이었다. 자신이 직접 가져다 놓은 것도 기억이 안 난다고 하였다. 갑자기 마음이 불안해 지기 시작하였다. 나중에 피아노 레슨을 해 주는 선교사님에게 들은 말인데, 그날 사모가 어느 곡을 연습해 왔는지도 모르고 행동이 좀 이상했다는 것이다.

집으로 급히 돌아와 이런 증상을 한국에 있는 아는 의사에게 물었더니 뇌경색의 전조증세 같으니 빨리 병원에 가보라고 하였다. 그래서 곧바로 사모를 데리고 프놈펜에 있는 한 병원으로 달려갔다. 퇴근 시간과 맞물려 오토바이와 차들로 꽉 막힌 도로에서 꼼짝도 못하고 있는 데, 갑자기 사모는 뒷골이 댕긴다고 호소한다. 간신히 병원에 도착하여 현지인 의사에게 증세를 말하고 CT 촬영을 하였지만 원인을 알 수 없었다. 다시 한국에 연락해 보니 CT로는 세밀한 부분은 알 수 없고 MRI 촬영이 필요하다 하였다. 나의 연락을 받고 도우러 온 선교사부부가 달려와서 조언하길 다른 병원으로 옮겨 보자고 하였다. 다시 다른 병원을 향하여 정신없이 달려갔다. 실망스럽게도 그 병원은 의사가 퇴근하여 없다고 하고 시설도 더 형편이 없었다.

갑작스럽게 이런 일을 겪다 보니 어떻게 해야 할지 무척 당황스러웠다. 친구 선교사가 아무래도 저녁에 한국으로 나가는 것이 더 낫겠다는 권면을 하였다. 만일 지금 아내의 뇌 속의 혈관에 문제가 있다면, 기압이 낮은 비행기 안에서 대책 없이 6시간 가까이 지체하는 것은 더 큰 위험을 초래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열악한 이곳의 의료 시스템과 보험적용이 안 되는 큰 의료비용을 생각하니 모험을 해서라도 한국에 가는 것이 더 낫겠다 싶었다. 선교사의 애로 사항중 하나가 사역지에서 응급상황에 처할 경우 좋은 의료 서비스를 제때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간신히 비행기 표를 구하고 집에 와서 간단히 짐을 꾸린 후, 그 밤 자정이 다 되어 비행기를 타게 되었다. 한 밤중 기내에서의 상태는 더 심해졌다. 자신의 안경을 핸드백에 넣어 두고서도 자기 안경을 어디 두었냐고 거의 5분 간격으로 물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걱정스럽고 황당하여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앞으로 선교사역을 어떻게 해야 하나 등등 장래의 일을 생각하니 깊은 시름 속에 새벽까지 뜬 눈으로 지새며 악몽을 꾸는 듯 했다. ‘차라리 지금 이 일이 꿈이었으면하면서 마음속으로 기도를 드렸다. 마음이 안정을 되찾자 주님의 메시지가 깨달아지기 시작했다. 안일한 나의 영적생활을 지적하시고 늘 깨어 있으라고 주님이 잠깐 충격요법을 사용하셨다는 것을 말이다. 기내 안에서 회개하며 다짐했다. ‘다시 허리띠를 졸라 매고 열심히 달려가겠습니다.’ 인간은 미련하여 채찍을 맞아야 정신을 차리는가보다.

공항에 도착하여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119 구급요원들까지 나와서 대기하고 있었다. 그만큼 상황이 급박했다. 맥박과 혈압을 재고 휠체어에 태워서 공항 출입구에 대기시킨 앰뷸런스로 신촌에 있는 큰 병원 응급실로 갔다. 병원의 규모와 시설 시스템을 보니 고국에 왔음이 실감났다. 여러 정밀검사를 마치고 전문의가 알려준 병명은 일과성 기억상실증이다. 선교사 연락망을 통하여 소식을 들은 수많은 분들과 고국의 성도들이 중보 기도해 주신 덕분에 빨리 회복되었다. 사랑하는 자에게 잠깐의 고통을 주시는 주님께 다시 간절히 기도를 드려본다. “주님, 정신 줄 놓지 않고 늘 깨어있는 선교사가 되게 하소서.” 귀한 깨달음을 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리며 더 각성하여 선교사역을 감당하리라 결단한다.

 


박이삭 목사(캄보디아 프놈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