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선교] 캄보디아 사람이 되려고 합니다

c4afbab8b5f0bec64.jpg그동안 나의 의식 속에는 은근히 한국인이라는 자부심과 우월감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들의 뒤처지고 못 살 수밖에 없는 이유와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시대에 아직까지도 미개한 일상의 행동들을 보면서 이해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비판의식만 많아지게 되었고, 좀처럼 이들 속에 깊이 들어가기를 꺼려하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중국의 내륙선교 창시자인 허드슨 테일러는 철저히 중국인이 되기 위하여 일부러 머리와 복장도 중국인처럼 하고 다녔는데, 내게는 그러한 배려나 노력이 많이 부족했던 것 같다. 우선 캄보디아 사람이 되려면 기본적으로 이 나라 음식을 먹을 줄도 알아야 하는데, 입을 굳게 다물고 손사래를 치는 도도함을 보였다. 원래 선천적으로 비위가 약한 탓도 있지만 아침에 뒷문을 열면 이웃집에서 풍겨 오는 현지 음식의 역한 냄새에도 참지 못하여 금방 문을 닫아버렸다.

사모는 무슨 선교사의 은사라도 받은 양, 무슨 음식이든지 가리지 않고 이들의 음식을 맛있다고 잘 먹는다. 때로는 나에게 왜 먹어보지 않느냐고 타박을 주기도 한다. 아는 선교사 한 분도 처음에는 먹기 힘들었지만 오래 살다 보니까 지금은 없어서 못 먹는다는 말을 한다. 그러나 아직 나에게는 이 나라 음식을 먹는 문제는 어려운 숙제다.

또 캄보디아는 개인주의가 만연해서 남들에게 피해를 주는 줄 모르고 몹시 거슬리는 행동들을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한다. 선교사들이 어찌 할 수 없이 겪는 문화적인 충격이라지만 그런 모습들이 보일 때마다 그러니까 캄보디아가 이렇게 밖에 못사는 거야.’라고 무시하는 비판을 하게 된다. 사실 그런 말과 생각을 하는 순간에 나와 그들 사이에 스스로 높은 벽을 쌓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나도 캄보디아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면서 살기로 하였다. 이들을 나의 동족이요 친 형제로 여기면서 이들의 처지와 입장을 이해하면서 생활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갈 때, 하나님 말씀을 더 잘 전할 수 있기에 말이다. 또한 나 역시 이곳에서 마음의 여유와 평안을 가지고 끈기 있게 사역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를 캄보디아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고 예전보다는 이들에 대해서 친근감이 더 많이 든다.

사실 캄보디아의 생활은 단조롭고 생활반경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쉽게 식상해진다. 1990년 초, 크메르 루즈군이 벌인 잔혹한 킬링필드의 시대가 막 끝나고 얼마 되지 않아서 캄보디아 선교사 1호로 들어오신 분이 계시다. 그분의 간증에 의하면 자신은 처음 10년 동안은 여러 가지 환경 문제로 얼굴에 웃음기 없이 항상 어두운 표정으로 살아 왔다고 한다. 그러다가 우월감도 자신의 국적도 모두 내려놓고 그들과 하나가 되었을 때 비로소 웃음을 찾았다고 한다.

선교사는 이방인이기에 그 나라에 들어가면 적응을 해야 한다. 적응을 가장 잘할 수 있는 비결은 모든 걸 포기하고 아예 그 나라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는 보다 더 많은 것을 희생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경제적으로 월등히 잘 사는 나라에서 왔고, 이들이 부러워하는 조금은 하얀 피부를 가진 한국인이라는 별 볼일 없는 자긍심을 소유로 삼은 유치한 의식을 버리고, 하나님 앞에서 이들보다 더 배은망덕한 죄인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더 낮은 자리로 내려가야겠다. 사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은혜를 이들에게 먼저 부어주셨다면 나보다 더 훌륭한 선교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이들은 피부가 약간 검은 탓에 한국인이나 중국인들의 외모를 아주 부러워한다. 요즘 프놈펜의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젊은 여자들에게 미백 화장품이나 피부 관리가 인기가 있다. 또 은행이나 고객을 많이 상대하는 자리에는 중국계 혼혈2세들이 피부가 비교적 희다는 이유로 우선적으로 채용되는 것 같다.

사람의 외모보다 중요한 것은 속에 있는 영혼이라고 설교에서 강조하였지만 정작 나의 잠재의식 속에서는 인종차별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독특하게 창조하셨기에 모두가 아름다운 것인데, 단지 얕은 생각으로 우열을 가리는 교만한 죄를 범하고 있다. 요즘에는 내가 캄보디아에 많이 익숙해져서인지 이들이 한층 더 친근하게 느껴지고 외모도 나름대로 개성이 있고 아름답다고 느껴진다. 예수님이 스스로 낮아지셔서 이 세상에 오신 성탄의 깊은 의미가 문화가 다르고 자연환경과 인종이 다른 나라에 와서 선교를 해보니 보다 더 실제적으로 다가온다. 선교는 하나님이 사람되신 것처럼 낮은 자리로 내려가 섬기는 것이다. 이제부터 나의 마음과 시선이 같은 동족의 마음으로 그들에게 전해지기를 바라고, 인사말 한 번이라도 더 겸손하고 공손한 마음으로 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후원계좌 : 국민은행 044-21-0703-652

박이삭 목사(캄보디아 프놈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