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발고도 1500미터에 위치한 달랏은 베트남에서도 날씨가 좋고 경관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곳이다. 고도가 높은 만큼 언덕이 많은 지형, 그 높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쭉쭉 뻗은 소나무가 주는 싱그러움과 어딜 가든지 항상 피어있는 가지각색 꽃들의 향연이 이어진다.

막 사춘기를 시작하는 아들, 진로가 불분명한 딸과 충분한 대화를 나눌 여유조차 없이 결정하게 된 베트남 선교는 삶 가운데 가장 큰 결단과 헌신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주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지시할 땅으로 가라.’ 하셨을 때 얼마나 막막했을까. 그 심정이 고스란히 전해오면서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두려움과 기대감이 교차되는 가운데 언어와 문화가 다른 이곳 베트남으로 온 지 벌써 7개월이 되어간다.

한참 사춘기 열병에 접어든 아들은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갑자기 변한 환경에 너무 힘들어했다. 밤에는 잠이 안 온다며 한숨을 쉬고 울다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컴퓨터와 핸드폰을 의지하는 것뿐인데, 그것마저 망가져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또한 한국에 홀로 남겨진 딸에게도 마음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자녀들이 이토록 아파하는데 부모로서 과연 옳은 결정이었을까 하는 마음으로 주님 앞에서 많이 울었지만, 주님께서는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10:37)라는 말씀을 통해 강하게 말씀하셨다.

내 사랑하는 독자 예수를 십자가에 내어줄 때 아버지의 심정은 어떠했을 것 같니? 네가 선 이곳 달랏에 갈 바를 모르고 헤매는 영혼에게도 예수의 십자가가 필요하단다. 그들을 위해서 울어줄 수 있겠니?”

감당하기 어려운 자녀의 죽음, 남편이나 부인의 죽음, 믿음의 형제들의 배신과 음모 속에서도 꿋꿋하게 하나님의 뜻을 따라 헌신하셨던 수많은 선교사님들의 삶에 비하면 나의 아픔은 말하기도 부끄러운 것이다. 밑바닥에서 울컥하면서 주님 용서해주세요. 제가 잠시 사명감이 약해지고 인간적인 애정에 매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미천한 인생을 불러주시고 사명 주심을 감사합니다. 부족한 모습 이대로 사용하여 주옵소서.’ 회개의 기도가 절로 나왔다.

주님께서는 달랏 사람들과 함께 하는 삶을 살도록 지시하셨다. 아직은 어색하고 두렵기까지 하지만 우리의 손을 놓지 않으시고 우리의 길을 앞서 인도하시는 주님의 신실하심을 믿는 까닭에 조심스레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아직 복음전파의 자유가 없는, 집집마다 우상이 있는 이곳에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복음을 전하는 일은 매우 제한적이고 조심스러운 현실이다. 특별한 준비과정 없이 처음 선교를 시작했기에 주님의 계획과 섭리를 믿음으로 바라볼 뿐이다. 주님께서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결단을 우리에게도 요구하고 계심을 확신하면서 나아가고 있다.

우리가 만난 청년들 중 상당수가 아직도 예수님에 대해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고 하였다. ‘천하만국에 복음이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성경은 주님의 재림이 임박하다고 말씀하시는데 아직도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이 이리도 많다는 사실에 놀라면서, 선교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물건을 구입하러 그곳에 들어갈라치면 향불 냄새와 지저분한 모습에 놀라고 사람들의 태도에 또 한 번 놀란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주인들은 손님이 와도 반기는 기색이 없다. 우리가 먼저 인사를 해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우리가 필요한 물건들을 스스로 담아 저울 위에 올려두면 무게를 확인하고 돈을 받는다. 정확한 눈금과 계산, 맛보기도 없고 이곳에 에누리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안녕히 계시라고 애써 인사해도 그들은 듣는지 마는지 그저 무덤덤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만나면 무척 친절하고 상냥하다. 거리에서 만나면 마치 오랫동안 만나온 사람들처럼 팔짱을 끼며 반긴다. 이러한 모습들이 낯설기도 하고 혼돈스럽기도 하다. 또한 이들은 매우 낙천적이고 밝은 것 같다. 길거리에서 화롯불에 10000(한화 500)짜리 물건을 파는 아주머니 얼굴에도, 과일이나 야채를 파는 아주머니 얼굴에도 조급하거나 찡그리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가정마다 우상의 제단이 놓인 것을 보고 나 외에 다른 신을 네게 두지 말라.’ 하신 말씀을 읊조리며 조용히 십자가 성호를 그어본다. ‘주님 저들을 불쌍히 여기시옵소서.’ 나도 모르는 탄식과 기도를 올리는 것, 근처 달랏대학교 학생들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교제하고 섬기며 조금씩 주님을 전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다.

활발히 활동하는 것은 없지만 조용히 주님의 일이 펼쳐지고 있고 그 일을 위해 우리 가정을 모아서 하나로 엮어 주님이 쓰시기에 합당하게 만들어 가시는 것에 감사하고 있다. 눈에 보이는 활동이 없지만 또 보이지 않는 영적 전쟁터에서 부단히 싸워야 하는 일들이 있어 감사하고 또 깨어 있게 된다.

우리는 선임 선교사님이 계시던 곳에 와서 그것을 이어받은 것 같은 시작을 하였지만, 서서히 또 다른 주님의 계획과 뜻이 펼쳐질 것이다. 주님께 맡기고 기대하며 나아갈 뿐이다.

무엇을 하든지 주님의 뜻대로 되기 원하고, 우리 가족 모두는 그 뜻에 순종하기 원한다. 또한 육적인 모습이나, 혈육간의 애정에 매여 살던 낡은 것들을 모두 부수고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기 원한다. 그리고 이런 우리 가정을 통해 달랏의 영혼들이 주께 돌아오는 은혜가 폭포수처럼 임하기를 기도한다. 이 일을 위해 훈련받은 나날들, 지금도 우리를 훈련하시는 것들을 잘 감당하여 주님의 뜻을 이루는 선한 도구들이 되기 원한다.

우리 앞서 나아가시는 주님을 의지하며, 주님이 가신 십자가의 길을 주님과 함께 겸손히 걸어가고 싶다. 오직 주님만이 나의 방패시요 나의 산성이시니 감당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시고 도와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이곳에 세우신 십자가를 붙잡고 주님의 때가 이루어지는 그날까지 달려가려고 결단한 삶에 주의 은총이 가득하기를 소원한다.

정재주 선교사(베트남 달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