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 판 사 : IVP(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
저자ㅣ역자ㅣ그린이 : 달라스 윌라드 (Dallas Willard) | 윤종석  
출 간 일 : 2001-07-05
판형ㅣ사이즈(mm) : 사륙판 (128×183) 양장
쪽       수 : 340
ISBN : 9788932820521



신앙도서 > 경건생활 > 영성일반






  
「하나님의 모략」의 저자 달라스 윌라드가 들려주는

"하나님과 더 가까이 더 깊이 대화하는 법"  

과연 하나님은 오늘날에도 각 신자에게 개별적으로 말씀하시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그분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가? 그것이 우리의 잠재 의식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고 장담할 수 있는가? 그 음성이 우리의 욕망과 두려움에 의해 굴절되지 않도록 우리는 어떻게 준비할 수 있을까? 그분이 구체적인 음성을 들려주시는 않을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다원화된 현대라는 상황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깊이있는 영성을 탐구해온 달라스 윌라드는 이 책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을 기도원이나 꿈결 속에서 듣는 신비로운 체험이 아니라, 딱딱한 성경공부 교재에 나오는 상황과 동떨어진 말씀의 인위적인 적용도 아니라,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는 예수님의 전생애적 관점과 성도의 전체적인 삶의 맥락에서 살펴보았다. 그는 이 책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는 것이 단순한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전인격과의 끊임없는 대화에서 자연스럽게 체득되는 성령의 뜻에 민감한 영혼의 삶의 방식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는 가장 고상하고 훌륭한 인격적 의사 소통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가르침이라는 밝은 빛을 가운데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일상적인 사건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가르쳐 주고 있다.

저자는 특수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데 매달리지 않고, 평소에 그분과 인격적이고 대화적인 관계를 꾸준히 쌓아 가는 것이 그분의 음성을 실제로 들을 수 있는 전제 조건이라고 말한다.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에 대한 흔한 오해를 지적하면서, 그분이 개인에게 말씀하시는 다양한 통로, 구체적으로 그분의 음성을 분별하고 듣는 법, 그분의 음성이 들리지 않을 때 취해야 할 조치 등을 상세하게 다룬다. 그리하여 우리로 하나님의 인도를 확신하게 함은 물론, 궁극적으로 그분의 친밀한 동역자로서 그분의 나라를 건설하는 일에 초점을 맞추게 한다.  
  
■ 목차

머리말

1.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에 관한 역설
2.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한 지침
3. 결코 혼자가 아니다
4. 대화하는 우주
5. 세미한 소리와 그 경쟁자들
6.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통치
7.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구속
8. 하나님의 음성 알아듣기
9. 인도하심 그 이상의 삶

후기 : 뜨거운 마음을 갖는 길
주  
  





■ 저자 및 역자

달라스 윌라드 (Dallas Willard)
신학자이자 인문학자인 그는, 오랫동안 우리의 일상 생활을 향한 하나님의 관여하심을 대변하는 감동의 목소리 역할을 해왔다. 「인도하심을 찾아서」(In Spirit of the Disciplines)등 그의 저서들은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의 신앙 경험 방식을 영원히 바꿔 놓았다. 그는 남캘리포니아 대학교(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철학과 교수이자 UCLA, 콜로라도 대학교(University of Colorado)의 객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또한 목회자로서 설교와 강연을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제자도와 영성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는 현재 남캘리포니아에 살고 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하나님의 모략」(복있는 사람들),「영성 훈련: 삶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방법에 대한 이해」(은성),「하나님의 음성」(IVP)가 있다.


윤종석
서강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였으며, 미국 Golden Gate Baptist Theological Seminary에서 교육학(M.A.)을,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에서 상담학(M.A.)을 공부했다. 역서로는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
「살아있는 하나님의 지혜」,「남자는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가?」,「마음과 마음이 이어질 때」,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삶」,「하나님의 음성」(이상IVP),「사역자 상담」,「단기 상담」,「결혼 건축가」,
「예수가 선택한 십자가」(이상 두란노),「리더십은 예술이다」(한세),「하나님의 형상 빚기」(성서유니온선교회) 등
다수의 책을 번역하였다.


  
■ 추천의 글

■ 추천사


하나님의 인도라는 주제에 관한 한, 내가 여태 읽어 본 책 중 가장 훌륭한 책이다. 적극 추천한다.
┃리차드 포스터 | <영적 훈련과 성장>의 저자 |

이 책만큼 내게 큰 도전을 준 책은 많지 않다. 모든 진지한 그리스도인에게 일독을 권한다.
┃빌 하이블즈 | 윌로우 크릭 교회 담임목사 |



--------------------------------------------------------------------------------

■ 본문 속으로


잘못된 해석

하나님의 인도를 포함해 그분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방식에 대한 세 가지 잘못된 해석을 지적하는 것이 더 명확한 설명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것들은 통상적인 해석이지만 명백한 오류이며,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분의 인도를 받아 살려는 우리의 노력에 분명 큰 해를 끼치는 것들이다.

매순간 메시지를 주신다는 견해

이 첫 번째 견해에 따르면 하나님은 인생 여정의 매순간 우리에게 할 일을 일러주신다. 적어도 우리가 묻기만 하면 언제든 일러주실 의향과 준비를 갖추고 계신다. 나는 이런 생각은 성경으로도, 그리스도의 도를 따르는 교회의 공동 체험으로도 입증되지 않는다고 믿는다. 예컨대 베드로아 바울의 삶을 볼 때 그들이 한순간도 쉬지 않고 하나님의 메시지를 받았다는 증거는 전혀 없다.

그리스도와 아버지의 연합은 우리가 이 생에서 상상할 수 있는 - 우리가 과연 그러한 상상을 할 수 있다면 - 가장 위대한 것이다. 그러나 그런 예수님조차도 매순간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계속 계시를 받았다는 징후는 어디에도 없다. 그분은 늘 순종하실 만큼 아버지와의 연합이 아주 깊었다. 그런데 이 연합은 삶이나 사역의 모든 세부 사항에 대해 "지금은 이것을 하고 지금은 저것을 하라"는 식의 지시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성숙한 뜻과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삶에 대한 이해에 기초한 것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은 궁극적으로 성숙한 그리스도인에게 말씀하신다는 개념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회심할 때나 처음 교회에 나올 때나 하나님을 체험하기 시작할 때 그분의 말씀을 받을 수 없다는 말은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현재 처한 위치에서 우리를 만나 주신다. 그럼에도 성령과 내주하시는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은 우리를 매순간 그분의 명시적 지시에 묶어 두지 않는다. 씨앗을 심고서 너무 깊이 간섭하면 정상적인 성장을 방해하게 된다. 식물의 생명도 그렇고 어린아이의 삶도 그렇다. 그래서 스탠리 존스는 이렇게 말을 했다.

"나는 기적을 믿지만 너무 많은 기적은 좋지 않다고 본다. 기적이 너무 많으면 우리는 약해지며, 자연 법칙에 순응하기보다 기적을 의지하게 되기 때문이다. 기적은 그분이 계시다는 것을 알게 해줄 정도면 충분하면 너무 많을 필요가 없다. 그래야 우리의 성장을 위해 하나님이 정해 두신 질서와 자신의 주도권을 의지해야 할 때 엉뚱하게 기적에 의존하지 않을 수 있다."

구원의 공동체는 로봇들이 아니라 서로 함께 사는 법과 하나님과 함께 사는 법을 아는 성숙한 사람들로 이루어진다. 그로 인해 나는 매순간 메시지를 주신다는 이 모델이 잘못된 것이며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는 우리의 노력에 큰 해를 끼친다고 생각한다. 이 모델대로 살려고 발버둥치거나 적어도 그렇게 고백하는 사람들을 잘 관찰해 보면, 그것이 불가능한 일이며 아무리 힘써도 결국 낭패에 빠지고 만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우리는 교육 프로그램 개발, 전도 집회 개최, 선교 훈련, 기타 교회 활동을 수행할 대 이 점을 필히 염두에 두어야 한다. 지금 우리는 정해진 시간에 집회에 나와 노래하고 손뼉 치고 기도하고 헌금드리는 로봇 집단을 만들려는 것이 아님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예배 드릴 때도 그렇고 특정 사역이나 사역자를 모범으로 제시할 때도 그렇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각자 독특한 삶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릴 그분의 아들 딸을 키우고 있다. 우리가 사용하는 수단이 이 목적에 부합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성경에 다 있다는 견해

이 두 번째 견해 역시 심각한 오류요 매우 해로운 것이라 생각한다. 성경을 높이려는 의도는 좋지만 지식에 근거하지 않은 열정에서 나온 것이다. 성경에는 우리 인생의 많은 상황에 관해 직접적 지침이 나와 있다. 우상을 숭배하고 남의 것을 취하고 부정한 성관계를 맺고 부모를 박대할 것인지 등의 여부에 관해서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장시간 고민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인생의 다른 의문들에 접할 때마다, 우리 삶의 많은 구체적 상황이 성경에 나와 있지 않다는 사실을 부득불 깨닫게 된다.

성경은 다음 주일에 어떤 찬송을 불러야 하고 다음 강연이나 설교 때 어떤 말씀을 본문으로 택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설교 본문과 주제 선정에서만큼 하나님의 특별한 인도를 받았다는 주장이 자주 등장하는 경우도 없는 것 같다.

성경은 우리 인생의 세부 사항에 대해서도 대개 이렇다 저렇다 말하지 않는다. 아이들을 키우는 법을 알고 싶다고 생각해 보라. 성경에 몇 가지 중요한 내용은 나와 있지만 이 주제에 대해 우리가 알고 싶어하고 알아야 할 모든 것이 밝혀져 있지는 않다. 가정과 직장과 사회는 성경이 말하지 않는 수많은 선택과 문제를 우리에게 떠안길 것이다.

물론 원리는 모두 성경에 들어 있다. 원리에 관한 한, 마땅히 해야 할 말과 할 수 있는 말이 성경에 다 들어 있다는 것이 나의 행복한 주장이다. 그러나 원리대로 살려면 먼저 적용이 필요하다. 그런데 대체로 이 적용 단계에서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일이 성경을 근거로 `입증되고`있다. 자신의 절박한 소원에 뜯어 맞춰 적용하기 위해서는 입증의 원리를 멋대로 타협할 수 밖에 없다.

성경을 존중하고 믿는다고 해서 하나님이 각 개인에게 주시는 가르침, 즉 성경의 원리 안에 있되 성경의 명시적 세부 내용을 벗어나는 가르침의 필요성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한 유명 목사가 텔레비전에서, 우리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그리스도인들간의 모든 의견 차이가 해결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하지만 가장 자주, 가장 치열하게 의견 차이를 보이는 사람들은 바로 성경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이다.

기독교계의 거의 모든 분파가 성경을 그 기초로 내세우지만 성경의 내용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저마다 의견이 다르다. 성경을 높이고 존중한다고 해서 하나님이 인류에게 말씀하시는 다양한 방법으로 그분의 음성을 들으며 그분과 대화하는 법을 배워야 할 책임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각 개인이나 상황에 대한 구체적 말씀이 성경에 들어 있다는 잘못된 기대 때문에 일부 사람들은 앞에서 말한 `성경 룰렛`을 일삼게 된다. 그들은 성경을 아무 데나 편 다음 어느 구절이 걸리는지 보려고 마음대로 손가락을 갖다 댄다. 그렇게 아무렇게나 뽑힌 구절을 읽고는 그대로 문제에 대입시킨다. 일부 위대한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방법을 사용한 적이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분명 성경이 권하는 절차가 아니다. 그렇게 하자면 성경 대신 사전이나 백과사전이나 조간 신문을 사용하지 말라는 법도 없고, 성경을 펴 놓고 파리가 어느 구절에 앉기를 기다리지 말라는 법도 없다.


아무래도 좋다는 견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방식에 대한 이 세 번째 잘못된 견해는 널리 퍼져 있는 것으로, 고민에서 벗어나 마음에 평안을 누린다는 면에서 큰 설득력을 얻곤 한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하나님과 자녀 간의 의식적 대화의 가능성을 일체 포기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 견해는 가장 애창되는 일부 찬송가에도 등장한다. "너 하나님께 이끌리어"(341장)라는 유명한 찬송가가 있다. 이 소절만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신다는 지금의 주제와 정확히 일치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전체 가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떤 일이 벌어져도 하나님의 인도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내용임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알고자 하는 사람에게 일이 어떻게 되든 그분의 뜻이라고 말해 주는 것은 전혀 도움이 안 된다. 정확히 말해 일이 어떻게 될지를 어느 정도 결정해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이 바로 우리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 쪽에서 어떻게 하든 다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인가? 나는 절대 그렇지 않기를 바란다.

모세가 이 입장을 받아들였다면 지금 이스라엘 나라가 존재하지 않으리라는 것만은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대신 `모세인`의 나라가 존재했을 것이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계명을 받는 동안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숭배하자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런즉 나대로 하게 하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로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출 32:10) 모세는 일이 어떻게 되든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주변 국가들에 퍼져 나간 하나님의 명성과 그분과 아브라함의 우정을 근거로 호소함으로써 이 문제에 대해 하나님이 친히 선포하신 뜻을 꺾고 말았다.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 하시니라"(32:14)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많은 일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그분이 분명 손을 들어 그것을 중단시키지 않는다 할지라도 말이다. 한 예로 그분은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신다"(벧후 3:9). 그러나 무수히 많은 사람이 회개에 이르지 않아 멸망하고 있다.

하나님의 세상은 우리의 역할이 없어서는 안되는 곳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만이 아니라, 우리가 원하고 뜻하는 바가 무엇인가도 중요하다. 일이 어떻게 되든 무조건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인도를 받고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일이 발생한다고 해서 반드시 하나님의 뜻인 것은 아니다.

앞으로 우리에게 일어날 많은 사건에 관한 하나님의 뜻은, 바로 우리가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자녀가 부모의 명시적 지시 없이 자발적으로 행하는 일이 그 자녀의 상태와 수준의 최종 지표다. 우리와 하늘 아버지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이 점에 대해서는 마지막 장에서 다시 이야기할 것이다.)
┃본문 | 제3장 결코 혼자가 아니다 | pp. 80∼87 중에서 |


개인적으로 내게 가장 잘 통하는 방법은 이것이다. 하나님께 말씀해 달라고 간구한 후 다음 한두 시간 동안 어떤 활동 - 집안일, 잔디 손질 등-에 임한다....대게 한두 시간이 지나면 내 의식 속에 특유의 무게와 정신과 내용을 지닌, - 내 경험상 으레 하나님의 음성과 연결되는 - 개념이나 생각이 떠오른다....대부분의 경우 하루가 지나기 전에 무슨 일이 생기면서 하나님의 음성이 분명히 들려온다... 전체적으로 말해, 항상 하나님께 나아가 구체적 지침을 구하기보다는 언제라도 들을 수 있는 조용한 내면의 공간을 가꾸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인도하심이 없이는 문제의 관련자들이나 그리스도의 영광에 심각한 해가 미칠 수 있는 경우, 반드시 성숙한 제자들에게 인도하심이 주어진다.
┃본문 中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