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권면: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5절)
    1. 생각하라(Remember)
    2. 회개하라(repent)
    3. 처음 행위를 가져라(restoration)

     (1) 생각을 하라: 어찌 하여 이렇게 되었는고?
         니골라당과 싸운 흔적을 보아서 알 수 있는 것은 너무나 교리적이요 법도를 찾는 것에 몰두한 나머지 사람들을 평가하고, 재판관의 위치에 서서 사랑이 굳어진 냉랭한 모습으로 변질 된 것 같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교리를 찾고, 사랑 안에서 하나님의 법도를 실천하여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너무 보수파 율법주의화 되어버린 것 같다. 이런 잘, 잘못을 가리다 보니 인내함 없이 혈기와 포악함이 드러난 것 같다.- 이교회는 미덕이 없었는 것 같다.

적용:
  주님께서 말세의 징조를 말씀하시면서 “많은 사람들이 사랑이 식어지리라”(마24:12) 하셨다. 지금 우리 교회들 안에 사랑이 식어져 가고 있지 않는가? 교인들이 슬픔을 당하고 있어도 모르고, 좋은 일이 있어도 모르고 지나가고, 한 교인인지 남인지 모를 정도이다. 입으로 쉽게 사랑을 말을 하지만 죽도록 사랑을 하지 않을려고 하는 곳이 교회이다. 어떤 목회자의 말이다. “세상보다 더 살풍경이 교회에서 일어난다”고 한다.- 미움, 투기, 분쟁, 교차 되어 있는 꼴보견의 모습이다.- 사랑이 없는 교회, 실천이 없는 교회는 죽은 교회이다.
나 왜 사랑이 식어졌는가?
   가롯 유다같이 - 재물 때문에
   솔로몬과 웃시야 왕과 같이 - 교만 때문에
   사울왕과 같이 - 시기했기에
   고라와 같이 - 명예 때문에
어찌하여 떨어졌는가?:
   기도를 게으름 때문인가?
   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아서 냉랭해졌는가?
   전도하는 일을 외면하였는가?
   교회보다 세상일에 더 전념을 하였는가?

하여튼 무슨 원인이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게 되면 주님의 은혜, 사랑이 채워지지 않는다. 그러면 사랑을 원하시는 주님께서 떠나시고 만다. *이중에 내의 잘못은 어떤 것인가? 생각해 보아야 한다.

   (2) 회개하라 :
   그들에게 굳었던 마음을 회개하라 하신다. 냉랭해진 마음에 대해 회개하라고 외치신다.
회개와 사죄는 오직 기독교에만 있는 사랑의 진리이다. 하나님은 참된 회개를 기다리신다. 우리는 어디서 떨어졌는가? 생각했으면 회개를 해야 한다.
  
    (3) “처음 행위를 가지라.“
       회개의 열매를 맺으라는 권면의 말씀이시다.
d: 초대교회의 사랑의 만남(행 4장)    
예화: 한국의 초대교회의 모습
    초대 교회은 불과 2% 미만이었지만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철철 넘쳤다. 수십리를 걸어서 교회를 와도 불평없이 찬송하면서 왔고, 부흥회나 사경회 있으면 양식을 머리에 이고 허리에 지고 은혜를 받기 위해 전심전력을 다했다. 믿음 때문에 d양귀신을 믿는다고 가문에서 추방을 당했다. 서로 안면이 없을지라도 믿는 형제로 확인되면 친형제처럼 반가워하고 기뻐했다. 민족의 재건을 위해 교회가 앞장을 섰다. 이웃을 위해서 아낌없이 사랑으로 돌보았다.  오늘 우리 주변은 어떤가?


    결론: 탕자의 비유
탕자의 비유는 참된 회개의 모형이다. 이 비유를 보면 이 세가지 단계를 거치고 있다. 먼저 과거의 아버지와 함께 있었던 사랑을 회상하며 현재의 초라한 모습을 본다. 자신을 생각해 보았다: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둘째, 회개하는 그의 모습: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셋째,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우리도 이처럼 아름다운 신앙을 찾아야 한다. “처음 행위를 찾아라”라는 말씀을 받들어 최선을 다해야 한다.

만약에 그렇지 않을 때에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옳기리라’ 하셨다. 이 말씀은 교회를 옳기는 것이 아니라 목회자나 교인들에게 은혜를 내리지 않으심으로 버림받게 하신다는 것이다.
실제 에베소의 모습: 촛대를 옮겨진 모습; 홍수로 인해 파멸되었듯이 폐허로 고요에 잠겨 있다.
아무리 헌신, 교리가 정립이 잘되어 있고, 조직이 잘 되어있다손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안된다. 우리는 항상 기억할 것은 믿음, 소망, 사랑 기독교의 근본이다, 그중에 사랑이 제일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5) 약속하신 축복
   하나님은 '생명나무'를 주실 것을 약속하신다.(7절) 이 생명나무는 그리스도이며, '생명나무의 과실‘은 그리스도의 생명을 상징한다.(요14:6) 이 생명과는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타락함으로 잃은 것인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마귀와 세상과 역경을 이긴 자들에게 주시는 것이다. 좀 더 자세히 이 ’생명나무의 과실’에 대해서 살펴보자.
   아담과 이브가 사단의 유혹을 받아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선과 악을 아는 실과를 따 먹으므로 말미암아 에덴낙원에서 추방을 당했다. 그 후 인간은 점점 하나님과 멀어지고 마귀의 지배를 받아 불행하게 살게 되었다. 더 비참한 것은 인간의 심령 속에 마귀의 성질 곧 죄성이 들어와 마귀의 자녀가 되었다.(요8:44,롬6:16) 이와 같이 마귀의 자녀로서 마귀와 함께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는 인류이지만 사랑의 하나님께서 믿음과 은총으로 구원의 길을 열어 놓았다. 곧 믿음으로 생명의 나무의 실과를 먹게 함으로써 영생의 길을 허락하신 것이다. 그럼 믿음으로 먹는 생명나무의 실과를 먹는 것, 예수를 먹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그럼 모든 성도들이 예수님을 믿는 즉시 믿는 모두가 이 생명나무의 실과를 먹는 것인가? 아니면 언제 먹는 것인가?  
   생명과를 먹었다는 것은 성도들의 영속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내주합일 된 것을 알아야 한다. 사도 바울은 이 사실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갈2:20a)
   이 진리에 대해서 사도 바울이 자신의 신앙체험을 통해서 로마서 7, 8장에서 설명해 주신다. 먼저, 그는 자신을 바라보면서 고백한다.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바 악을 행하는도다.”(롬7:19) 여기서 사도 바울은 예수를 믿어 구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죄를 짓고 있는 자신을 본다. 곧 예수님과 같이 온전한 사랑을 실천하고 겸손과 온유 등 티 없이 성령의 열매를 맺고 살고 싶은데 도리어 원하지 않는 악심들 곧 교만, 시기, 난폭, 음란, 아집, 정직하지 않는 것들 등등이 죄를 지을 환경 곧 기회, 조건이 주어지면 나타난다는 것이다.(롬7:8) 한 예로는 음란한 그림을 보면 자신도 모르게 음란한 생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또 그는 “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원하는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롬7:15) 고백을 한다. 그런데 왜 원하지도 않고, 죄를 짓지 않으려고 노력을 하는데 죄를 짓고 있는가? 바로 이것이 우리가 공통적으로 느끼고, 죄를 짓고 난 후에 마음 아파하는 것이 아닌가? 이제 바울은 그 원인에 대해서 말한다. “내 속에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롬7:18) 그리고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이 원인은 심령 가운데 뿌리 박혀있는 죄성, 아담으로부터 유전되어 온 원죄 때문이라는 것을 그는 밝히고 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선을 행할 능력이 있으면 자신이 죄를 범하지 않을 텐데 불행이도 선을 행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7:24) 하면서 다시 절규하고 있다. 곧 죄의 법칙 때문에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자신을 보고 탄식하는 것이다.
   공자가 70여세가 되어 세상을 떠날 때에 탄식하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 “내가 평생에 도를 닦으며 예절을 실천하고 가르쳤는데도 마음속에 나타나는 탐심을 없게 하지 못하고 죽는구나? 라고 하였다. 그러나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의 은총으로 죄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는 축복이 있음을 가르쳐 주신다. 이에 사도바울은 ”내가 한 법을 깨달았느니“ 하면서 기뻐하며, 감사하고 있다.(롬7:21,25) 그럼 하나님의 은총으로 어떻게 죄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 있을까?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신다. ”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8:1,2)고 하셨다. 와아! 대단한 선포이시다. 더 이상 정죄함이 없다 하신다. 이 말씀은 성도들의 마음속에 생명의 성령의 법칙이 나타나야만 된다는 것이다. 곧 그것은 위에서 에베소 교회 사자에게 말씀하셨듯이 믿음에서 승리하여 생명나무의 실과를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계2:7) 다시 말해 우리의 안에, 영속에 예수님의 생명이 내주합일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범죄하고 회개하면 용서받기 때문에 정죄를 받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바로 로마서 7:8-24에서 성도들이 고민하던 죄의 법칙에서 해방되어 죄를 범하지 않기 때문에 더 이상 정죄를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마음속에 뿌리내리고 있는 죄성으로 말미암아 교만, 아집, 난폭, 시기, 음란, 부정직함 등의 죄들을 짓고 있었다만 이제는 예수님의 생명이 나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기에 사랑, 희락, 평안, 자비, 양순, 충성, 온유, 절제, 등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다. 이 믿음의 승리자들을 가리켜 ‘처음 익은 열매들‘(계14:4),’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들’(롬8:23),’전신갑주 입은 성도들’(엡6:11), ‘생명에 들어간 성도들‘(마7:14),’신의 성품에 참여한 성도들‘(벧후1:4)이라고 부른다. 웨슬리 신학에서 완전성화, 즉 성결은총을 입은 성도들이라고 한다. 아브라함은 이것을 영적할례를 받은 99세 때에 이것을 체험을 했으며(창17:11), 야곱은 얍복강에서 이스라엘(이긴자)이라는 새 이름을 받았을 때이며(창32;28),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들은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세례를 받았을 때이다.(행2:4) 더 자세한 것은 앞으로 성화론을 설명할 기회가 있을 때 하겠다.
주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