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장 강해

    4.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보내는 편지(계3:1-6)

   3장은 사데, 빌라델피아, 라오디게아의 교회의 사자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이다. 순서대로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보내신 편지부터 살펴보자.

   사데는 당시 루디오(현 터키)의 루디아의 수도로서 에베소 동쪽으로 약 80km, 두아디라에서 남방 약 48km 에 위치하고 있는 넓고 비옥한 초원이 있는 허무스(Hermus)강과 Tmolus 산 사이 가파른 절벽으로 싸인 언덕에 위에 세워진 난공불락의 성이었다. 두아디라와 같이 모직을 생산하는 부유한 도시로서 안일한 생활을 하였다.  주전 6세기에는 리다아 왕국의 수도로서 세계적인 도시였다. 고레스 왕이 이 성을 점령하였을 때 많은 전리품을 가져왔고 200년후 안티오크스 에피파네스에 의해서 침략을 당했다. 시벨리라는 여신을 섬겼다. 역사가들에 의하면 이 교회는 사도요한의 전도로 세워졌다고 한다.
   2세기에 이르러 변증가이며 주석가로 유명한 멜리토가 이 교회의 감독이 됨으로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한다. 그러나 물질적 부유로 말미암아 내적인 피폐로 안일과 부도덕이 교회에 침투하였다.

사데의 의미: ‘남은 자’, ‘남은 물건‘, 홍보석’ 등의 뜻이 있다.
이 교회는 라오디게아와 교회의 사자와 같이 칭찬이 없는 사자이다. 왜 그렇까?

  1) 교회를 향한 예수님의 모습: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분이시다.(계3:1)

    ‘하나님의 일곱 영‘를 가리켜 많은 학자들은 일곱은 ’완전 수‘라 하여 ’성령‘으로 해석을 한다만 잘못된 해석이다. 이들은 모든 천사들을 대표하는 영계의 봉사자들인 일곱 천사장들로서 각각 권능과 맡은 직무에 따라  영원한 천국이 준비되는 동안 하나님의 나라에서 행정부의 장관들과 같은 역할 하는 분들이다.
      (1) ’일곱 영들‘의 이름은 정경에 나오는 천국의 군대 장관인 미가엘 천사장(단12:1;유1:9)과 계시를 담당하는 가브리엘 천사장(단9:21;눅1:19)과 그리고 외경 에녹 1서 20:2-8에서 나오는 라파엘, 라구엘, 사라카엘, 레미엘, 그리고 우리엘 천사장들이다.
   이 거룩한 천사장들일지라도 모두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존재한다.
      (2)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목회자들을 말하며, 지상에서 교회를 위해 봉사하는 사역자들이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모든 천사들과 모든 목회자들을 붙잡고 일하시는 분이심을 말씀하신 것이다. 성경의 역사를 통해서도 이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의 포로에서 해방시켜 구원을 이루기 위해 모세를 택하셨고, 초대 교회를 세우시기 위해 12사도를, 종교개혁시대는 종교 개혁자들을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로 주의 종들을 택하시고 사용하신다. 그러므로 주의 사자들은 사람의 종이 되어선 안 되며 예수님의 종으로 주님의 나라 확장 곧 영혼 구원에 힘을 써야 한다.
공군과 육군의 합동작전

    2) 사데 교회 사자를 향한 책망:
        (1)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이다.(1b) 이 말씀은 선한 명분을 내세우면서 자기의 욕심을 만족시키는 생활 즉 위선적이고 외식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 그의 모습이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이런 정욕적인 만족과 쾌락을 즐기며 위선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은 영적으로 이미 죽은 자들임을 말씀하신 것이다.

         예#! 예수님 당시 바리세인들의 회칠한 무덤모습이 바로 이런 모습이다.

화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마23:25)
화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마23:27)

예#2: 불법을 행한 선지자들(마7:21)

      두 종류의 성도: 우리 주위에도  성도들이 많다.진실로 주님을 믿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주                                여, 주여 하면서 진심으로 주님을 구주로 영접하지 않은 자들이다.
      교회 안에 차 있는 모습: 물질 만능 주의, 배금 주의, 인본주의, 사치와 허영이 극도이다.(주                                       일날- 차 자랑하는 날, 옷 자랑하는 날, 멋 자랑하는 날,
       한 마디로 순수한 복음적인 교회와 순결한 신부가 없는 모습들이다. 켙만 팽창하고 아름답게 꾸며져 있는 모습이다.
       에; 무화과 잎은 무성하지만 열매가 없는 모습들이다.

     결과도 두 종류이다.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마24:40-43)

    교회들이 회복을 해야 한다. 정하게 되어야 한다.
                  
    3) 주님의 권면:
     이러한 형식적인 신앙 상태에서 돌이키기 위해 처음 진리의 말씀을 받았던 때의 감격을 기억하고 다시금 힘을 내어야 한다는 것이다.(2,3절) 그리고 예수님께서 죽은 신앙을 되살리시기 위해 네 가지 처방을 내리셨다. '일깨우라‘, ’굳게 하라‘ '기억하라', '회개하라', 그리고 '지키라' 이다.(2,3절)
         (1) ‘일깨우라‘: 이 말씀은 이 사테가 난공불락의 이다는 것으로 안일하게 있다. 두 번이나 함략당한 것을 기억하고 경고의 말씀이다.

         예화: 사테의 몰락사

        (2) ‘죽게 된 것을 굳게하라’: 여기서 보건데 완전히 죽은 것이 아니다. 아직도 생명력이 있다. 회생시키라는 명령이다.

            예화: 고원화 집사님의 동생의 애타함-서서히 폐가 상하여 죽게 된 것

     (3)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2절)
         이 말씀은 사테 교회의 사자가 외적으로 풍성하고 잘 갖추어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기준에 보시기에 모자란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완전을 원하신다. 더 성숙하시기를 원한다. 그러나 주저앉으면 안된다.

       예; 벨사살 왕: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심판 때에 모두 하나님께서 측정해 보신다. 일깨어서 죽게 된 것을 살려야 한다.

     (4)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아           리지 못하리라.”(3b)
        
              회개하라는 권면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계속해서 불법을 행하고 있다면 사데의 성과 같이 졸지에 망할 수 밖에 없음을 경고 하신다.

        (5)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4절)

이어지는 말씀에서 와 같이 이긴자에게 흰을 준다 하였으니 ‘흰옷을 입었다’는 것은 이긴자가 되었다. 순결하다, ‘합당한 연고라는 행실과 마음이 정결케 되었다는 것이다. 주님의 인도함 따라 사는 성도임을 말씀하신다.

         * 144,000 여기서 모두가 이긴자가 아니음 말씀해 주신다.
           성도는 흰 옷을 입고 있다. 합당한 자이다. 그러나 사데 교회의 사자는 아니다.
           에; 라오디게아 사자와 동일함
           “사자는 죽게 된 것을 굳게 붙잡아라‘ 완전히 구원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5) 이긴자에게 약속하신 축복: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5절)

     (1) ‘이긴자들에게 ’흰옷을 입게 하신다 ‘ 라고 말씀하신다. 흰옷을 입었다는 것은 영적 할례, 즉 요한 웨슬레가 주장하는 성결의 은총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 말씀에서 ’이와 같이‘란 말씀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 말씀은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있어 흰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4절) 하셨던 것 같이 사데 교회 성도 중에서 몇몇 성도가 자기 옷을 정결케 하였으므로 흰옷을 입고 주님과 동행하게 될 것임을 말씀하시고 있다. 이는 그들은 신실한 신앙생활을 하였으므로 이미 이긴자가 되어 흰옷을 입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교회의 목회자는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졌으나 죽은 자‘라는 책망을 받는 것을 볼 때 그는 성결케 되지 못해 흰 옷을 입지 못하고 있다. 이 모습은 라오디게아 목회자도 동일하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보게 하라.”(계3:18)

그에게 말씀을 하셨다. 여기 라오디게아 목회자 역시 영적으로 가련하고, 벌거벗은 상태이기에 흰옷을 입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주님은 흰옷을 사서 입으라고 권면하시고 있다.
   이상과 같이 사데 교회와 라오디게아 교회의 목회자가 흰옷을 입지 못한 것을 볼 때 흰옷은 출애굽 즉 처음 예수님을 영접하여 구원을 받을 때나 광야연단을 받는 과정 곧  성화되어 가는 과정에서 입는 옷의 아님을 알 수 있다. 다시 되풀이 말씀을 드리지만 흰옷은 이긴자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의롭다 하심을 인정하는 의인되었다는 것을 증명해 주시는 옷이다. 곧 모든 죄 문제가 해결된 성도들, 완전히 성화된 성도들, 그리스도의 완전에 도달한 성도들이 입는 옷이다. 이들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른 성도들이며(엡4:13), 의롭게 되어 그리스도의 생명이 영속에 내주 합일된 성도들이다.(롬8:10)
   어떤 학자는 라오디게아 교회의 목회자와 사데 교회의 목회자는 성령체험을 못한 분들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은 일곱별을 잡고 일하시는 예수님의 손에 붙잡혀 일하는 목회자임을 알아야 한다. 곧 그들도 성령의 도움을 받으면서 목회를 하는 분들이다. 성도가 성령을 체험했거나, 은사를 체험했다고 해서 흰옷을 입은 것으로 착각해서는 안된다. 때로는 꿈에서 흰옷을 입었다고 해서 흰옷을 입었다고 착각을 해서도 안된다.
   오늘날 대다수의 성도들은 이러한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초보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들도 성화, 곧 의롭게 되어 흰옷을 입은 줄로 알고 있다. 만약 성령을 체험하고 초보적인 신자들이 흰옷을 입는다면 사데 교회의 목회자와 라오디게아 교회의 목회자도 흰옷을 입어야 한다.
   계시록에 이긴자 외에 또 다른 흰옷을 입은 성도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들은 환난을 통과함으로써 연단을 받아 정결케 된 성도들이다.(계7:9)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긴자들은 흰옷을 입었기에 환난을 통과하지 않고 휴거되지만, 성결케 되지 못한 성도들은 환난을 통과함으로써 연단을 받으면서 철저히 회개하여 정결케 되어 흰옷을 입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환난을 통과하지 않고 흰옷을 입고 휴거되기 위해 죄에 대해서 민감하게 행동을 하여야 하며 죄를 지었을 경우 큰 죄 뿐만이 아니라 적은 죄까지 철저히 회개하고 광야연단을 받을 때 잘 인내를 하여 흰옷을 입을 정결한 신부로 단장되어야 한다.
   계시록에 ‘흰옷‘ 이외도 다른 두 가지의 옷이 소개되어 있다. ’자기 옷’과 ‘세마포 옷‘이다.
   ’자기 옷’은 자신의 행실을 상징한다. 하나님은 자기의 옷을 지켜 벌거벗어 부끄러움을 보이지 않는 자가 복이 있다.“(계16:15) 하셨으며,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 하셨다.(계22:14)  죄성과 정욕의 지배를 받아 범죄하여 더러워진 옷을 회개함으로 예수님의 보혈로써 정결케 되어야 한다.
   “세마포는 성도의 옳은 행실이라” 하셨다.(계19:8) 이 옷은 성도의 선한 행실에 따라 상급으로 입는 빛난 옷이다. 우리가 이 땅에서 선행의 열매를 맺음으로써 조금씩 만들어지는 옷으로 상급을 많이 받은 성도들은 밝은 세마포를 입게 될 것이다.

    예화: 땅에서 재료가 올라온다.

   (2)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 시인하리라”는 것은 완전한 구원을 보장해 주신다는 약속의 말씀이다. 그러나 이 말씀은 부정적으로 바꾸어 생각해 볼 때 이 말씀은 한번 구원을 받고 타락하면 구원을 잃을 수 있다는 사실을 말씀하시고 있다.  “그러나 합의 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려 주옵소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 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출32:32-33)고 하셨다. 이 사실에 대해 신약성경의 여러 곳에서 말씀을 하시고 있고,(마7:21-23; 히6:4-6) 예수님의 가라지 비유가 이 타락한 배도자들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이다.(마13:24-30)
    생명록에 이름이 지워진 이들은 영적으로 성장을 하던 중에 믿음의 잠을 자다가 잘못된 교리나 사상에 사로 잡혀 타락하거나, 마귀의 미혹에 빠져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고 은밀한 중에 죄성과 정욕에 지배를 받는 생활을 계속적으로 하다가 마귀에게 사로잡힌 배도자, 거짓 선지자들이다. 이들의 대표적인 인물들은 적그리스도, 거짓 선지자, 가롯 유다, 니골라, 마니, 아리우스, 몰몬교의 창시자인 요셉스미스, 박태선, 문선명, 등 타락한 가라지들이다.
    필자가 모 신학교의 특강을 들기 위해 참석한 적이 있다. 강의 시간에 학생의 질문이 있었다. “한번 구원을 얻으면 그 구원은 잃지 않습니까?” 그 때 교수님의 답변은 “잃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삼킬 자를 찾고 있는 이때에 많은 성도님들도 그렇게 알고 안일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너무나 위험천만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보혈 공로를 힘입어 믿음으로 성취한 이 천하보다 귀하 구원을 정욕에 따라 살다가 타락함으로 잃지 말아야 하며,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어 주님 앞에 서도록(눅21:36) 우리의 영혼이 정결케 준비되어 있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