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사로 출근하고자 현관문을 들어서는 데 상가 건물 간판을 바꾼다고 아침부터 망치로 쿵쿵 시멘트 깨는 소리가 요란하다. 크고 작은 시멘트 잔재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사무실에도 작은 진동이 느껴졌다. 언젠가 근무하다가 재난 문자 경고음이 울리면서 동시에 컴퓨터와 건물이 흔들려 순간 놀라 가슴을 쓸어내린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일이 지난 2월 6일 일어났다. 새벽 4시 튀르키예에 연이어 덮친 강진으로 사망자가 4만 명이 육박하고, 튀르키예 역사상 최악 인명피해라는 안타까운 비보가 들려왔다. 고층 건물이 종이처럼 흔들리고, 땅이 200Km 이상 찢어지고 갈라졌다. 잠자다가 땅이 꺼지는 바람에 미처 대피할 겨를도 없이 폭삭 내려앉은 건물에 갇혀 버린 수많은 사람과 치솟는 불길, 아우성치는 소리로 도시 전체가 공포에 휩싸였다. ‘여긴 마치 아마겟돈 같다.’라는 기사 보도가 처참한 광경을 한마디로 요약해주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번 지진이 원자폭탄 수백 개의 위력과 맞먹었다”며 “이런 재난 앞에서는 어떤 국가도 우리가 겪었던 것과 같은 문제에 직면했을 것”이라고 했다. 지진이 발생한 11분 후 7,400Km나 떨어진 한반도까지 진동이 관측되었다고 한다. 

지난해는 타이완과 일본에 이어 멕시코에서도 강진이 발생하여 이른바 ‘불의 고리’로 불리는 환태평양 지진대가 더 활발해지는 것이 아닌가 우려하고, 가까운 일본도 30년 안에 8~9의 강진을 예측하는 가운데 한반도도 더 이상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최근 세계 곳곳에서 들려오는 자연재해와 연이은 지진 보도에 히브리서 기자의 말씀이 떠올랐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히12:28).  

12년의 내전으로 시달리던 시리아 난민들은 좀 더 안전한 튀르키예로 옮겨갔지만, 그들은 지진 강타로 싸늘한 죽음을 맞이했다. 

많은 사람이 마치 난민들처럼 더 안전하고 보장된 미래를 꿈꾸며 더 나은 대학이나 직장, 더 나은 조건의 결혼 상대, 더 좋은 환경을 찾으며 다른 나라로 유학이나 이민을 떠난다. 그러나 이 세상은 그 어디도 안전하거나 흔들리지 않는 곳은 없다. “이 ‘한 번 더’라는 말은 흔들리는 것들 곧 피조물들을 없애버리는 것을 뜻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흔들리지 않는 것들이 남아 있게 하시려는 것입니다”(히12:27). 내가 믿고 의지했던 물질, 부동산, 건강, 가족, 직장, 동료도 어느 순간 흔들린다. 결단코 흔들리지 않을 듯한 사람이 무너지거나 배신하기도 한다. 내 삶을 송두리째 흔드는 위기의 시간을 맞닥뜨리기도 한다. 

모든 우주 만물을 주관하시고 다스리시는 창조주 하나님은 다양한 환경과 상황으로 개개인의 마음과 생각과 삶을, 한 도시를, 한 민족과 나라를 흔들어 보신다. 이는 흔들려서 부서지고 제거되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영원히 내게 남을 것이 무엇인지 구별하기 위함이시다. 수많은 고통과 시험의 바람을 통해 우리를 흔들어 보심도 여기에 있다. 사라져 없어질 세상 것이 아닌 영원한 것을 붙들게 하심이다. 

부동산(不動産)을 움직이지 않는 자산이라고 한다. 그러나 모든 것이 움직이고 흔들린다. 부동산도 움직이고 아무리 든든한 기업의 주식도 떨어지고 흔들린다. 우리의 진짜 부동산은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 나라이다. 이것이 불안정하고 흔들리는 세상에 있는 우리의 안정성이다. 우리는 진동치 않는 나라를 약속받은 그리스도인이다. 그러기에 세상의 것을 잃어버린다고 슬퍼하거나 낙망해서는 안 된다. 

이 세상 모든 것은 낡아지고 사라질 것이다. “그것들은 다 멸망한 것이나 오직 주는 영존할 것이요 그것들은 다 옷과 낡아지리니 의복처럼 갈아입을 것이요 그것들이 옷과 같이 변할 것이나 주는 여전하여 연대가 다함이 없으리라 하였으니”(히1:11-12).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다고 말한 사도 요한의 말씀처럼 이 세상 모든 만물은 다 지나갈 것이다. 흔들리는 물질세계는 영원하지 않다. 진동치 않는 하나님 나라만이 영원하며 우리 주님만이 영원 자존하시다. 썩어 없어질 세상 것들을 피해 신의 성품에 참여한 사람들만이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기업을 받아 누릴 수 있다. 흔들리고 사라져 없어질 세상의 것을 움켜잡고서는 하늘의 기쁨을 맛볼 수 없다. 내려놓고 버리고 포기할 때 하나님의 나라는 더 가까이 임한다. 

진동치 않는 영원한 나라를 주목하는 사람은 세상의 하찮은 것에 흔들리지 않는다. 고난과 핍박도 달가워하며 세상의 헛된 명예나 영광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죽음도 마다하지 않고, 십자가의 길을 선택한다. 

눈 덮힌 히말리야 산맥을 10번이나 넘은 썬다싱은 흔들리지 않는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으로 십자가를 황금과도 바꾸지 않겠다고 하였다. “나는 사두로 있는 14년간의 생활 동안 많은 고통과 핍박을 받았으며 혹 이 생활을 버릴만한 유혹도 당하였지만, 이 입신(천국 체험) 경험을 생각할 때는 결코 전 세계를 준다 해도 이 생활을 버릴 수 없었다.” 

스웨덴 최고의 과학자 스베덴 보리(1668-1772)는 목사인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22세에 과학자의 길을 들어섰다. 이후 만유인력 법칙을 발견한 아이작 뉴턴과 같은 최고 과학자 반열에 오르게 되고 엄청난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57세에 영계 체험한 후 모든 영광과 명예를 과감히 벗어던졌다.

“나와 같은 과학자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영계의 진리를 알고 보니 이는 학문이 아니라 인류의 영원한 생명이 걸린 문제이다. 내가 전하는 영계의 진리에는 인간이 사후 천국에 가느냐, 지옥에 가느냐가 달려 있다. 이 특별한 소명은 내가 과학자로 공헌하는 것보다 수천, 수만 배 더 중요하다. 그리고 나 외에는 이 사명을 감당할 사람이 없다. 나는 모든 과학의 시조이기도 한 창조주로부터 소명을 받은 것이다.” 

이사야의 소묵시룩으로 불리는 24장에서는 다음과 같이 온 세상의 심판을 예고하셨다. “땅이 깨어지고 깨어지며 땅이 갈라지고 땅이 흔들리고 흔들리며”(사24:29). 전무후무한 대환난을 알리는 첫 신호도 번개와 뇌성과 지진으로 시작한다(계8:6). 장차 죄악으로 가득한 이 세상도 일곱째 대접 재앙인 큰 지진으로 심판하시며 끝을 맺으신다.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이 있고 어찌 큰지 사람이 땅에 있어 옴으로 이같이 큰 지진이 없었더라”(계16:18).  

처처에 전쟁과 기근과 지진의 소식이 들리면 세상 끝이 오리라고 주님은 말씀하셨다. 이 세상은 주님이 오실 때가 가까웠다고 계속 경보음을 울리고 있다. 자다가 깰 때이다. 어느 때에 주님이 임할는지 아무도 모른다. 더 이상 롯의 아내처럼 흔들리고 없어질 세상의 것들에 미련을 갖거나 연연해하지 말자. “영원한 것을 얻고자 영원할 수 없는 것을 버리는 자는 바보가 아니다”(짐 엘리엇).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약속받았으니 세상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하늘의 기업을 얻기까지 십자가를 붙들고 기쁨으로 달려가자. 

이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