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중순, 필리핀 바기오에서 영성수련원 개원 예배를 드리면서 성령의 은혜가 가득했다. 함께 예배를 드린 성도들과 동역자들도 기쁨의 감격 속에서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과 찬양을 올려드렸다. 또한 그곳에서 상급과 연단 받는 진리를 전했는데, 현지의 젊은 청년들이 은혜를 받는 모습에 큰 감격과 비전이 생겨났다. 특히 한국 선교사들의 베이스캠프로 활용되기도 하고, 동남아 지역 청년들이 영어를 배우러 몰려오는 이곳이 밝은 빛을 전하는 최적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이곳에서 많은 선교사와 목회자와 수도자가 양성되리라 소망해 본다. 

무엇보다도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마음으로 몇 번이나 짐을 싸고 풀기도 했지만, 유혹과 고통을 잘 이겨내시고 견뎌오신 G선교사님의 간증에 큰 감동이 되었다. 조금은 늦은 나이에 부름을 받고 홀로 필리핀에 수도 선교사로 파송되어서, 고독과 외로움과 냉대와 사투하면서도 성무일과를 묵묵히 지키며 하루하루를 주님 앞에서 살아가기를 힘쓴 노고가 보이는 듯 했다. 

낯선 타국에서 홀로 아는 사람 없이 하루하루 버티는 게 여간 쉽지 않았다고 하신다. 때론 마음이 어려워서 하나님께 울부짖으며 기도하다가 지쳐 잠이 들기도 하고, 본래도 허약한 체질이지만 몸이 아프고 혼자 신음할 때면 밥도 굶을 때도 많고 며칠씩 고통을 참으면서 인내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코로나와 15개 주에 영향을 주었던 7.0의 강력한 지진으로 인해 주변 분들과 영적 교제를 나누던 형제자매들이 우후죽순으로 죽어 나가는 날에는 안타까운 마음과 불안이 몰려오기도 하였다. 자신 역시도 지진 더미 속에 언제 죽을는지 한 치 앞을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어느 때는 귀신이 들린 딸을 마치 짐승인 양 오랫동안 비좁은 우리에 가두어 놓고 밥만 조금씩 가져다주는 어떤 부모를 볼 때면 가슴이 미어지기도 했다. 다 허물어져 가는 집과 가난에 허덕이는 이웃들에겐 더 많은 것을 나누지 못해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측은한 마음에 주님 앞에 눈물로 기도하며 동역자들에게 중보기도를 부탁하기도 하였다. 어느 날은 자신의 부족함과 무력함에 실망하기도 하고, 힘에 겨워 차라리 포기하고 한국으로 들어갈까를 반복하다가 너무 심할 때는 죽고 싶은 충동까지 들 정도였다고 했다. 설상가상 코로나가 겹쳐 오랜 기간 고국에도 한 번 방문하지 못하고 혼자 골방에서 참고 또 참고 견디셨던 것이었다. 

어떤 날은 죽음의 사선을 넘기도 하여 다시는 필리핀 땅을 밟고 싶지 않았지만, ‘이들을 너마저 버리면 누가 잃어버린 내 양 떼를 돌보겠느냐?’라는 주님의 애타는 심정이 느껴져 차마 그럴 수 없었다고 했다. 웬만한 일로 큰 소리나 화를 잘 내지 않는 선교사님의 인내의 열매를 통해 마침내 하나님을 마음껏 예배할 수 있고, 영성 훈련을 할 수 있는 작은 터전이 마련될 수 있었다. 그리 규모도 크지 않고 작은 수련원이지만, 순수하고 조촐하게 가난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드려지는 예배 가운데 하나님은 강하게 임재 하셨다. 

성경 속의 위대한 인물들의 공통점은 모두가 인내의 달인이었다. 빌라델비아교회의 목사님은 인내를 통해 놀라운 축복을 받으셨다.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계3:10). 빌라델비아 교회의 목사님은 적은 능력을 지녔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인내의 말씀을 지켰기 때문에 시험의 때, 즉 대환난을 면제시켜주시겠다고 주님이 약속해 주셨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부와 명성을 가진 라오디게아 교회 목사님은 주님께 책망 받았지만, 빌라델비아 교회의 목사님은 예수님께서 공중강림 하실 때 휴거 될 수 있는 자격을 갖출 정도로 인내의 본이 되셨다.

인내의 말씀을 지켰다는 것은 잠시 잠깐이 아니라 하나님이 허락하신 기간까지 온갖 고통과 어려움 속에서도 끝까지 인내하며 말씀을 지켰다는 것이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롬5:3-5). 

인내는 ‘한번 뛰는 장거리 경주가 아니라 숱한 단거리 경주의 연속’이다. 그러므로 인내는 숱한 어려움들을 참고 또 참고 견디어 나가는 것이다. 마음고생이 별로 없고 순탄한 환경에서는 주님을 따라가기가 쉽다. 하지만 무시와 냉대와 핍박을 받고 성과가 눈에 확연히 드러나지 않을 때 묵묵히 끝까지 견디며 인내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인내는 어떤 실력보다도 강하다. 토마스 왓슨은 말한다. “인내가 없는 그리스도인은 무기가 없는 군인과 같습니다.” 

인내만큼 값진 보석도 없다. 보석은 저절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땅속 깊이 묻힌 석탄은 높은 온도(900~1,300℃)와 압력(3만 기압)을 견뎌야만 빛나고 영롱한 보석이 된다. 이를 견디지 못하면 그냥 석탄으로 에너지를 잠시 발휘하다가 소비된 뒤 재가 돼 밖에 버려지고 만다. 

노아는 해발 고도 5,137m에 달하는 현재 아라랏 산으로 불리는 튀르키예에서 가장 높은 산에서 100년 동안 인내하며 방주를 만들어 온 가족이 구원받는 축복을 받으셨다. 아브라함은 75세에 하나님이 약속의 자녀를 주시겠다고 약속했지만, 무려 25년 인내함으로 기다리다가 마침내 이삭을 선물로 받으셨다. 야곱은 삼촌 라반의 집에서 20년 동안 머슴살이하며 인내의 긴 세월을 보내고 난 뒤에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받고,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 놀라운 은총을 입으셨다. 요셉은 꿈을 통해 부모와 형들이 자신에게 모두 엎드려 절하는 놀라운 축복을 약속받았지만, 형들에게 따돌림 당하고 노예로 팔려 갔으며 감옥에 갇혀 13년간 인내의 세월을 보내고 난 뒤에야 비로소 이집트의 국무총리가 되었다. 

다윗도 일찍이 사무엘에게 기름 부음을 받았지만, 사울로부터 15년의 고달픈 도망자 생활을 보낸 후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으로 재탄생 됐다. 이집트 왕자 모세도 40년 동안 장인 이드로의 양을 치우며 허드렛일을 하다가 80세에 떨기나무 속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이스라엘의 위대한 영도자가 되었다. 

나의 영적 스승님도 19세에 강직 척추염으로 쓰러져 40년간 병상 생활하시면서 온갖 어려움과 고통과 수욕을 참으셨다. 등가죽은 보리껍질을 뒤집어쓴 마냥 꺼칠꺼칠하고 따끔거리고, 목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없고, 다리도 굳어 오므렸다 펴기를 자유롭게 할 수 없었지만, 그 굳은 몸으로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시며 인내하며 사셨다. 

이처럼 시험과 시련은 고통스럽지만, 인내로 잘 참으면 결과는 너무나 찬란하고 아름답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인내의 위대함을 노래한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1:2-4). 광야 같은 이 세상에서 인내 없이는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으며, 성화도 될 수 없다. 

인내는 헬라어로 ‘휘포모네’이다. 문자적으로 ‘휘포’는 ‘아래’라는 뜻이고, ‘모네’는 ‘머물다’라는 의미의 ‘메노’에서 온 말로, 어떤 무거운 문제 아래 머물며 버티는 모습을 말한다. 특히 신약에서는 굳게 서서 기다리는 것으로 사용되어왔다. 문제가 많은 오늘의 현실에서 승리하려면 참고 견디며 인내해야 하는 것이다.

세상은 끝자락에 와 있다. 주님 오실 날이 매우 가까웠다. 조금만 더 꾹꾹 참고 믿음을 지키면 훗날 무엇보다도 값진 보석, 생명의 면류관을 얻게 될 것이다. 조금만 더 견디고 인내하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기까지 열심을 내자. 깊은 수렁에서 나를 건지시고 산 소망을 주신 주님을 바라보며, 다시 오실 주님 맞을 준비를 하며 인내하며 달려 나가자. 끝까지 인내하는 심령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이 가득 부어지리라. 

 

박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