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저출산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학교는 아이들이 줄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임용 후 학교 배정을 받지 못하는 교사들도 생겨나는 등, 교육계는 비상 아닌 비상의 상황이다. 거기에 초고속 과학 문명 시대의 흐름에 정면으로 마주하는 아이들의 도덕적 해이 및 가치관의 변화로 인해 교권이 무너지고 있는 현실도 마주하고 있는 실정이다. 스승과 제자의 아름다운 동행은 옛말이 되어가고 삭막한 현실만이 우리 마음을 차갑게 하고 안타깝게 한다.       


예수님의 제자로 부르심 

예수님은 열두명의 제자를 세우셨는데, 그들을 세운 목적은 우선적으로 “자기와 함께 있게 함(막13:14)”이었다. 예수님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보고, 듣고, 배우고, 반응하도록 제자들을 부르셨다. 그런 이후에 둘씩 보내시고 전도하고, 귀신을 내쫓는 등 주의 권능도 갖게 하기 위함이었다. 제자들의 명단을 보면 어부 출신의 시몬이라 하는 베드로와 우레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 빌립, 바돌로매, 도마와 세리 마태, 다대오, 가룟 유다 등이다. 유대인과 이방인을 아우르는 다양한 지역에서 예수님께 나아온 무리가 많았다. 그들은 한마디로 무리로 표현되는 이들이었다. 반면 열두 명은 예수님께서 선택하셔서 따로 부르셨고 제자라 불리게 되었다. 치유와 기적을 맛보기를 원하며 많은 사람이 예수님께 나아왔지만, 예수님과 함께 있을 목적으로 부름받은 사람은 소수의 선택받은 사람들이었다. 

예수님께서 제자로 부르신 이들의 처음과 나중은 성경 전반에 흥미롭게 기록되어 있고 많은 이유로 우리를 교훈하기도 한다. 그들은 스승이신 예수님과 동고동락하면서 삶을 보고 듣고 배우며 자라갔다. 좌충우돌 부족함 많은 제자였던 그들은 이후 위대한 스승으로 삶을 마무리 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위대한 스승 아래 위대한 제자가 나고, 그들은 다시 위대한 스승이 되어 또 다른 제자를 길러냈다. 간혹 스승의 위대함만을 떠들며 스승 팔이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스승의 위대한 가르침을 받아 나도 스승이 되어야 하는데, 제자도 못 되는 수준으로 살면서 스승의 이름만 팔아 사는 사람이라면 참으로 스승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스승은 제자를 둘 때, 가르침을 주어 그를 훌륭하게 성장시키려는 목적을 갖고 있다. 그 기대를 받아 사는 제자들은, 스승처럼 되어야 스승의 가르침을 바로 받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길을 그대로 살아냈다. 그들이 배반했고, 의심했고, 원망했던 스승 예수님의 길을 가면서, 그들은 스승 예수님처럼 배반당했고, 미움받았고, 저주받았고, 욕을 들었으며, 가난하고 배고팠으며, 외롭고 춥고 헐벗었다. 결국 스승 예수님을 위해 가장 비참한 순교의 길로 육신은 나아갔으나 영혼은 빛이 나고 영롱했다.   


스승과 제자

1927년 이현필은 스승 이세종을 만나면서 삶이 바뀌었다. 그는 아내에게 이제부터 남매로 살자면서 누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아내는 큰 충격을 받았으며 그것을 결코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아내와의 숨바꼭질과 갈등이 시작됐다. 아내가 앞문을 열고 침실에 들어오면 남편은 뒷문을 열고 달아났다. 이런 수모를 겪자 아내는 격분하여 칼을 들고 남편을 뒤쫓으며 "차라리 나를 죽이시오, 나도 죽고 당신도 같이 죽읍시다"라고 소리 질렀다. 남편은 집을 나갔고, 가끔 귀가해서도 아내를 피해 다녔다. 이러기를 6년, 아내는 통곡하며 집을 나갔다. 그리고 여순경이 되었고 다른 곳에 개가를 했다. 이후 이현필이 실천한 길은 세상의 빛이 되는 길이었다. 배운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으며 육체적인 매력이 남다른 것도 아니었던 그가 지나가면, 가정을 버리고 기꺼이 그를 따르는 이들이 생겨났다. 대체 무엇이었을까. 고 엄두섭 목사는 이현필 전기 '맨발의 성자'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이현필에게는 인격의 진동력이 있었다. 말이 적은 분이나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놀라운 감화력이 있었다. 그 감화력 때문에 그를 한두 번 대한 사람은 주저 없이 부모도, 남편도, 아내도, 재산도 팽개치고 그를 따랐다. 그는 선풍적인 존재였다. 말 한마디 한마디는 사람들의 마음을 끌고, 깊은 감동을 주는 신비스런 힘이 있었다. 누구나 그의 얘기를 한번 들은 이는 그를 잊지 못했다."

이현필을 따라왔으나 머물 곳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들의 무리는 집집마다 구걸하며 굶주림을 면했고 다리 밑에 가마니를 깔고 잠을 청했다. 그들은 국유지를 일궈 농사를 지었다. 극심한 가난과 고통 속에서도 그들은 성경의 가르침을 지키며 다른 사람을 돕고 품는 데 온 힘을 다했다. 이현필은 51세로 죽음에 이르는 날까지, 자신이 사랑한 예수를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했다. 서울 종로 거리에 나가 "깨끗하게 사십시오." "가난을 사랑하십시오."라는 말을 전했다. 그는 삶의 현장에서 예수님처럼 살기를 열망했다. 예수님을 닮으려는 이현필은 뭇사람들을 사로잡았다. 그의 제자들은 겸손함과 예의, 남녀 간의 순결, 무릎을 꿇은 모습, 독실한 신앙과 사랑, 감동적인 영혼의 노래로 많은 이들에게 큰 감명을 남겼다. 깨끗한 가난과 깨끗한 사랑을 전했던 이현필 삶은, 그를 한국의 성 프란치스코, 맨발의 성자로 불렸다. 

<한국적 영성의 뿌리, 성자 이현필의 삶을 찾아서>라는 책의 저자 차종순 목사는 이현필을 말하기 전에 그의 스승 이세종을 얘기한다. 그는 철저히 성경적인 삶을 실천하며 살았다는 것이다. 그것이 제자 이현필에게 그대로 전해진 것이다. 

"그는 자기 돈과 곡식을 퍼서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했다. 특히 늙은이와 어린아이의 집을 찾아다니며 나눠줬다. 거지와 나그네가 찾아오면 같은 상에서 함께 식사를 했으며 아예 옷을 바꿔 입기도 했다. 어떤 이는 위선자라고 비난도 했지만, 겸손히 자기 죄를 철저히 회개하며 살기 위해 노력했다. 또한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고 하신 말씀을 보고 전도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살던 등광리뿐만 아니라 이웃 마을을 찾아다니며 하루도 쉬지 않고 전도했다. 십자가를 만들어 들고 다니며 만나는 사람 모두에게 하나님을 공경해야 한다고 했다. 때로는 밥 먹는 것까지 잊고 전도했다.

산상수훈의 말씀을 하나하나 실천하며 살려고 노력했기에 자신을 철저히 낮추는 겸손한 삶을 살았다. 자기 마음에 행여 교만이 드러날까 봐 길을 다닐 때에도 고개를 숙이고 다닐 정도였다. 옷도 남보다 좋은 것을 입으면 그 옷이 마음에 교만을 일으켜 남을 낮게 보고 멸시하게 된다고 생각했다. 음식을 먹을 때에도 상을 차려 먹지 않고 맨땅에 그냥 놓고 먹었다. 혹시 누가 밥상을 차려와도 마음이 높아진다고 싫어하고 자기는 죄인이라면서 맨땅에 그냥 놓고 먹었을 정도로 자신을 낮췄다."고 한다.

사실 이세종에 대한 기록은 대부분 그의 제자들의 증언으로 이뤄져 있다. 이세종의 영향을 받아 제자로 살았던 이현필, 강순명, 최흥종 목사 등의 삶은 스승 이세종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오늘 스승의 삶 

스승 아래 제자가 있지만, 그 제자도 언젠가는 스승이 된다. 주님이 우리의 가장 모범적인 스승이셨고 수많은 스승이 우리를 지나간다. 그때 이현필이나 이세종처럼 우린 내 영성과 가치관에 맞는 스승을 만나면 거기 머물러 삶을 다시 전환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도 크고 작은 누군가의 스승으로 살아갈 때가 온다. 거기서부터 우리의 과제는 시작된다. 어떤 스승이 될 것인가. 

얼마 전부터 극동방송에서 흘러나오는 다음 세대를 위한 메시지에 내 마음이 쿵, 하고 울림이 되었다. 그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다음 세대를 보면서 불안해하며 일을 맡기지 못하고, 내가 하던 것을 넘겨주어야 할 때 얼른 넘겨주지 못하고 욕심내지 마십시오, 염려하지 마십시오. 그들에겐 하나님이 있습니다. 나보다 위대한 제자를 한 두 명이라도 키우고 있다면 당신의 삶은 이미 성공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나도 위대한 스승님이 있지만 자랑만 하지 스승의 삶을 일궈내지 못하고 있다. 거기에 자라나는 후배나 영적으로 도움을 줘야 하는 이들을 보면 쉽게 믿음이 가지 않고 다양한 재단을 하면서 망설이고 의심한다. 가능성보다 보여지는 것에 마음을 두고 그분 너머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한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교회도 우리가 속한 단체나 교회도 어쩌면 있어지는 현상인 듯하다. 나는, 우리는 누군가의 제자고 스승이 된다. 엄중하게 질문하여 다음 세대로 나아가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 

제자들의 삶으로 스승 이세종, 이현필의 삶이 조명되었다. 오늘 나의 삶으로 스승의 삶이 드러나야 한다. 내 뒤를 따라오는 누군가의 삶을 통해 나의 삶이 역시 조명될 것이다. 그것이 아름다운 빛의 세대 전수다. 천국적인 영적질서와 전환이다. 그 가치를 다시 생각하며 삶을 바라본다.

 

이순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