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저를 구하소서, 주님 어서 오사 저를 도우소서.” 저녁 8시가 되면 성전에 시편의 노래가 고요히 울려 퍼진다. 요즘 우리 공동체는 매일 저녁 시편으로 함께 기도를 드리고 있다. 시편의 가사에 단순한 선율을 붙여서 노래로 기도하는 방식이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이제는 제법 소리가 다듬어져서, 듣고 있으면 마음이 고요해지고 저절로 기도가 된다. 시편 기도를 따라 하기 어려워하던 지체들도 계속하다 보니 기도에 집중이 잘되고 은혜가 된다며 간증을 나눈다. 공동체가 함께 시편 말씀으로 기도를 드리며 새로운 은혜를 경험하고 있다.

초기 교회의 성도들은 예수님의 삶을 본받을 뿐만 아니라 그분의 기도를 배우기 위해서 시편을 기도하였다. 예수 그리스도는 시편을 적대자들과의 논쟁에서 인용하셨으며 최후의 만찬 때, 유월절 식사에서 제자들과 함께 시편을 기도하셨다(마26:30). 그리고 이러한 전통은 사도들에게도 계속 이어졌음을 볼 수 있다(행 3:1,10:9).

초대교회의 교부들은 성경 말씀을 매우 가까이했는데 그중에서도 특별히 시편을 성령님께서 구약과 신약시대에 걸쳐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주신 예배의 책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매일 시편으로 기도했으며 시편을 모든 예배 시작의 토대로 믿었다. ‘시편’을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주의 기도’와 함께 가장 완전한 기도로 여긴 것이다. 우리 역시 그들의 교훈을 따를 필요가 있다. 

칼빈은 말했다. “시편에는 성령님이 각각의 사람에게 깨닫게 하시고자 하는 인생의 수많은 감정이 표현되어 있다. 이 감정들은 모든 사람이 삶 속에서 당면해야 하는, 잠시도 쉴 틈을 주지 않고 우리 내면에 출몰하는 모든 종류의 고통, 슬픔, 두려움, 의심, 희망, 걱정거리, 혼란스러움 등이다.” 때로 우리는 하나님께 인생의 어두움을 가지고 가는 것을 망설인다. 하지만 시편은 고통스러운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인간의 참혹한 밑바닥이 보이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찾고 찾는다. 그런 이들에게 하나님은 자신의 위대하심을 보여주시는데, 그때 우리 안에서 터져 나오는 외침이 바로 가장 완전한 기도인 것이다. 

1949년 루마니아의 여성 니콜(Nicole Valery-Grossu)은 스탈린 시대에 야당에서 활동했다는 이유로 체포되었다. 감옥에 들어가니, 수많은 금기사항이 있었다. 죄수는 벽을 보고 잠을 잘 수도 없었고, 심지어 잠을 잘 때도 고정된 자세를 유지해야 했다. 매일 밤 심문에 불려갔고, 동료들을 고발하도록 강요받았으며, 거절하면 끔찍한 고문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감옥에서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던 외로움을 느꼈다. 하나님은 너무 멀리 계신 것만 같았다. 

그때 그녀는 어렸을 적 어머니가 가르쳐준 시편의 말씀들이 생각났다.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시118:6). “너는 밤에 찾아오는 공포와 낮에 날아드는 화살과 어두울 때 퍼지는 전염병과 밝을 때 닥쳐오는 재앙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시 91:6). 그녀는 그때부터 조용히 시편을 부르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배급받은 과일에서 나온 씨로 틈날 때마다 벽에 시편 구절들을 새기기 시작했다. 말씀은 그녀의 영혼에 감사와 기쁨, 용서를 가져다주었다. 

독방의 벽이 시편으로 가득히 찰 때쯤 그녀는 감옥을 옮기게 되었다. 새로 옮긴 곳에서는 매일 계속되는 고된 노동으로 몸과 마음이 사그라들고 있었다. 어느 날, 감옥에서 지친 몸으로 시편의 구절을 중얼거리고 있을 때 맞은편에 있는 죄수 에바가 이어서 낭송하기 시작했다. 분명 교회를 좋아하지 않는, 기독교인이 아닌 죄수였다. 그리고 그녀는 일어나 자신이 어떻게 이 시편을 외우고 있는지 말하기 시작했다. 

“저는 1년 동안 감방에 혼자 있으며 밤마다 심문받았어요. 심문관들이 내 눈에 비친 빛 때문에, 거의 시력을 잃을 뻔했죠. 몇 번이나 이빨로 손목을 그으며 자살 시도해보았지만, 죽지 않았어요. 의무실에서도 죽어보라며 나를 비웃었죠. 어느 날, 벽 쪽으로 몸을 돌렸는데 거기서 글씨처럼 생긴 긁힌 자국을 보았어요. 처음에는 헛것을 보는 줄 알았는데 계속 보다 보니 니콜이 방금 말한 구절이 보였어요.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그러고 나서 다른 글자들로 이어지는 화살을 발견했어요. 다음날 심문 때, 나는 왠지 모르게 똑바로 서서 울지 않을 수 있었어요. 심문관들은 바로 알아차리고 물었어요. ‘너 누구랑 연락했어? 누구랑 얘기한 거야?’ ‘네, 저는 예수님과 대화했습니다.’ 그들은 저를 미쳤다고 생각하고 감방으로 돌려보냈어요. 만약 제가 자유를 찾는다면 그 벽에 시편을 써놓은 사람을 꼭 찾을 것입니다.”

니콜이 절망의 심연 가운데 외우고 쓴 시편은 또 다른 누군가를, 아니 수많은 생명을 살렸음이 분명하다. 오래전 믿음의 선조들을 통해 쓰인 시편이 오늘 나의 이야기가 되기 위해서는 고통 속에서도 끊임없이 노래해야만 한다.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가 결코 혼자서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우리의 오른편에는 모세와 미리암이 함께 서서 찬양하고 기도하고 있으며, 다윗과 솔로몬이 무릎을 꿇고 함께 기도하고 노래하고 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뻐하는 것이 인생의 본분임을 기억하며 언제나 즐겁게 시편을 노래하고 싶다. 

 

박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