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학교 전도사 사역을 시작한 지 몇 년의 시간이 흘렀다. 사역을 시작할 때 갓 초등학교에 입학했던 아이는 이제 내 키를 훌쩍 넘고 한 학기만 지나면 졸업한 뒤 청소년부로 간다. 함께 예배드리는 마지막 학기를 앞두고 ‘성경의 핵심진리’ 말씀을 처음부터 끝까지 전해 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말씀을 전하기 위해 ‘상급에 대한 진리’를 연구하면서 누가복음 10장의 예화를 다시 묵상하게 되었다. 

예수님께서 70명의 제자들을 전도하라고 파송하셨다. 제자들은 전도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귀신들이 항복한 것, 자신들이 능력을 행한 것에 대하여 기뻐하고 자랑하면서 예수님께 보고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한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라고 말씀하셨다. 아무리 훌륭한 일을 했다 할지라도 자신이 행한 것처럼 생각하며 자긍한다면 하나님께 받을 상급이 없다는 말씀을 전하는데, 상급받지 못할 행실만 가득했던 지난날들이 떠올라 너무나 부끄럽고 창피했다. 

나는 믿음의 선진들의 생애를 정리하여 영상을 만들어 인터넷에 올리는 일을 주로 한다. 그 일을 하며 내가 누군가에게 은혜의 통로가 되고 있다는 사실에 참 힘이 났다. 나의 목소리를 통해 복음을 전할 수 있음이 기뻤고, 내가 만든 영상이 사람들의 영혼을 회복시킨다는 사실이 즐거웠다. 연약하고 부족한 자가 예수님의 도우심을 힘입어 분에 넘치는 일을 감당할 수 있음은 참 감사한 일이었고 감사하기에 기뻐하는 것도 당연했다.

그런데 문제는 나의 기쁨의 원천이 눈에 보이는 큰 역사에 있었다는 것이다. 영상의 조회수가 높고 많은 사람들이 칭찬하는 댓글을 남겨줄 때는 흐뭇했지만, 영상이 인기를 얻지 못할 때는 낙심했다. 일의 성과가 계속해서 좋을 때는 내가 세운 공을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바라고 그렇지 못하면 서운했다.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며 마음속으로 못마땅해 하고 무시했다. 나의 기쁨의 근원을 주님께 두지 않았을 때 온갖 죄악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따라왔다.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는 주님의 말씀은 하나님이 그의 독생자의 보혈로 모든 죄를 씻으시고 나를 구원하심을 기뻐하라는 것이다. 내가 귀신을 쫓고 병자를 고치고 엄청난 능력을 행했다 할지라도 그것이 주님이 하신 일임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주님의 이름으로 애쓰고 수고한 모든 일을 영원한 천국에서 상급으로 갚아주시는 은혜로우신 하나님이심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기쁨의 근원을 내가 행한 일이 아닌 주님이 하신 일에 두라는 것이다. 

성인 중의 성인, 아씨시의 성 프랜시스는 완전한 기쁨에 대하여 제자 레오에게 이렇게 기록하도록 했다. 

“형제여, 모든 고위 성직자들과 영국 프랑스 왕들이 우리 수도회에 들어온다고 해도 그런 것들이 완전한 기쁨이 되지 않습니다. 나의 형제들이 이교도들에게 가서 그들 모두를 신앙으로 개종시켰다고 하며, 내가 병든 이들을 고쳐 주고 수많은 기적을 행할 수 있는 큰 은총을 받았다고 전한다 해도 이러한 모든 것들 안에는 완전한 기쁨이 있지 않습니다. 그러면 완전한 기쁨이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비에 젖고, 추위에 떨고, 진창에 빠져 형편없이 되고, 배고파 기진맥진하여 성당에 도착해 수도원 문을 두드릴 때 문지기가 화를 내며 ‘너희들은 사방을 돌아다니며 세상을 속이고 가난한 사람이 구걸한 것을 빼앗아 먹는 두 명의 악당이지? 썩 물러가거라.’하면서 문도 열어 주지 않고, 추위와 굶주림에 떨어도 쏟아지는 빗속에 우리를 밤중까지 내버려 둘 때, 그런 욕설과 인정 없는 무자비한 대우도 우리가 인내로써 달게 받고 그 사람과 맞서서 싸우거나 불평하지 않고 겸손히 ‘문지기가 말한 것은 정말 사실이다. 우리에게 그렇게 말하도록 하나님께서 시킨 것이다’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이 바로 완전한 기쁨이라고 기록해 놓으시오.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친구들에게 베푸시는 성령의 온갖 은총과 선물 가운데서 가장 훌륭한 것은 바로 자기를 눌러 이기고, 고통, 모욕, 수치, 불쾌한 것을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 때문에 달게 참아 받는 그것입니다. 하나님의 다른 선물은 자랑거리로 삼을 것이 못 됩니다. 그것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고난과 고통의 십자가는 바로 우리의 것이기 때문에 자랑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께서는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밖에는 아무것도 자랑할 게 없습니다.’(갈 6:14)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사역의 성과로 인해 일희일비(一喜一悲)하는 사람의 가치관은 세상과 다를 것이 없다. 오직 주님으로 인해 기뻐하는 사람은 비록 하나님의 선물을 받았다 할지라도 세상에서 환영받고 인정받는 일에는 관심이 없다. 세상에서 천대받고 무시받는 것일수록 우리 영혼에는 오히려 안전하며 하늘의 상을 잃을 위험이 없기 때문이다. 오늘 나의 기쁨의 근원은 어디에 있는가. 오직 찬양받기 합당하신 그분이기를, 그분이 행하신 일에만 있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박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