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아니라면 이런 날은 무조건 도서관행인데…. 며칠째 선풍기가 열풍기가 되던 날, 드디어 탈출하여 옥상으로 왔다. 역시나 별 뾰족한 방법은 없으나 물을 옷 위에 끼얹고 있으면 잠시는 견딜 만했다. 하지만 이내 독서하는 손목으로 땀이 흘러 책을 적신다. 코에서 열기가 나오고 만물이 이글이글 타는 듯하다. 급기야 더위를 먹었는지 소화도 안 되고 두통이 있다. 동물들은 다 대처법이 있다는데 참 연약한 것이 사람이다. 개는 혀를 길게 빼 할딱거리고, 고양이는 기막히게 시원한 곳을 찾아 퍼져버리고, 벌레마저 축축한 곳을 찾아 숨는데 사람만 이 모양이다. 입까지 헌 것을 보니 그중에서도 내가 제일 약한 존재 같다.

개도 아니면서 헐떡거리는 내가 주님 보시기에 가엾었는지 갑자기 어린 시절이 떠올랐고 기발한 생각이 일었다. 그래서 당장 실시한 것이 멱 감기이다. 고무통에 물을 채우고 그 속에 쭈그리고 앉았다. 아무도 볼 일 없는 옥상의 물통 속 피서이다. 감사해서 눈을 감으니 기도가 나오며, 더 참지 못한 것에 송구함이 인다.

비닐 깐 요 위에서 40여 년 동안 멱 한번 못 감고 주님을 의지해 인내한 스승님께도, 64년간 침대에서 꼼짝 못 하고 봉인된 채로 주님만을 사랑하며 견딘 루이사 님께도…. 게다가 십자가의 예수님은 왜 하필 이때 떠오르는 것인가. 피와 땀이 범벅이 되어 조금도 꿈틀거릴 수 없으셨던 십자가 위의 주님…. 아, 주님 저는 너무도 연약합니다. 생애를 다해 주님을 사랑했던 “신부”들은 얼마나 용맹했으며 얼마나 주님 사랑에 간절했던가. 회개와 은혜를 간구하며 나오니 2시간은 너끈히 지나간다.

그리고 다시 들어가자, 이번엔 다른 은혜가 부어졌다. 온몸이 물에 푹 잠기며 에스겔 선지자가 보았던 성전에서부터 흘러나온 물이 사방 천지를 적시며 온몸이 잠기었던 그 환상처럼, 이 물이 흘러가는 곳마다 소성함을 얻으리라는 말씀이 떠올랐다. 그리고 새벽에 주셨던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옷깃까지 내림 같고” 말씀도 생각났다. 영에 합일된 생명으로 인한 생명수의 폭주이다. 

“오, 주님 이런 정욕적인 연약한 자에게 그 신비로운 은혜를 부으실 수는 없는 거지요. 하지만 주님은 전능하신 창조주시오니 강권하사 그렇게 이끌어 주소서. 그래야 제가 살겠나이다. 그래서 ‘진정한 피서는 주님의 은혜로 무더위를 참아 견디며 주님을 사랑하여 인내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하신 그 깊은 영성의 맛을 보게 하소서. 정말 주님의 은혜와 사랑 속에서, 더위도 잊고 괴로움도 견디며 말씀을 깨닫고 사랑의 기도를 드리며 주님의 십자가와 주님의 나라를 사모하며 갈 수 있다면, 그 길로 불쌍한 저를 인도하소서. 성령님, 제 마음을 강하게 감동하여 주소서.”

두 번째 멱 감기에서 주신 은혜는 3시간이나 더위를 잊게 했다. 이게 뭐지…. 더위를 피하려 한 정욕적인 일조차, 주님은 영혼을 새롭게 하시는 일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아, 주님의 긍휼은 세밀하시고 자상하시다. 내 작은 수준을 알고 품으시는 한없는 사랑이시다. 그저 그 무한한 사랑에 맡겨드리자. 주님 한없는 은혜에 잠겨버리자.

 

박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