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지나가신다
오월의 봄은 주님의 겉모습을 보는 듯하다. 숲의 연초록빛은 주님의 순결하심이다. 화사한 꽃들은 힘겨운 영혼들을 향한 주님의 위로이다. 라일락, 아카시아의 향은 천국에서 새어나온 주님의 향기이다. 벌들의 붕붕거림과 미물의 분주함은 주님의 생명 기운이다.
따사로운 햇살은 긍휼하신 치료의 광선이요, 부드러운 바람결은 고단한 삶을 쓰다듬는 주님의 다정한 손길이다. 맑고 파란 하늘은 잠시 열어놓은 천국의 빛깔이요, 봄비는 그로부터 흘러나온 주님의 생명수이다. 새들의 경쾌한 지저귐은 살짝 엿보는 천국의 찬양이요, 바람결에 춤추는 나뭇가지는 천국의 율동이다. 아, 오월의 봄은 조물주이신 주님을 비추는 천상의 선물이다.
‘오, 주님이시여, 만물이 드리는 찬양과 주께 바치는 워십을 받으소서. 팍팍한 삶에 상처 난 외모이나 다시 새롭게 하신 주님께 드리는 감사이니 받으시옵소서. 모든 게 신비가 아닐 수 없고 기적이 아닐 수 없나이다. 주님의 자비와 긍휼이 아니면 어찌 이 봄에 천국의 빛을 보며, 어찌 주님의 얼굴빛을 뵐 수 있겠습니까.’
봄은 우리 영혼이 은총으로 소생하는 계절이다. 만물이 고개 들어 하늘의 하나님께 찬미와 영광을 돌리는 시간이다. 하지만 어찌하랴. 이 봄이 이렇게 짧은 것을.
그러므로 지나가시는 주님을 붙들자. 혈루병 여인처럼 죽음을 각오하고 주님의 옷깃이라도 붙잡자. 그러면 사람들이 그으며 주고받았던 상처들이 아문다. 억울한 오해가 더 깊은 성숙의 거름으로 바뀐다. 추운 외로움이 따스한 햇살로 녹아내린다. 엠마오 길에서처럼 상실의 슬픔이 거룩한 환희로 바뀐다.
혹 외로운 이들이 굽어진 어깨로 기댈 곳을 찾고 있다면 이 또한 “작은 자들에게 한 것이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신 주님의 지나가심이다. 지나가시는 주님을 붙잡는 것은 생애 대반전의 기회요, 삶의 이유인 사랑의 일이다.
주님을 간절히 찾는 자가 주님을 만난다. 주님을 사랑하려는 자가 더 뜨거운 주님의 사랑을 얻는다. 소경된 자가 주님을 애타게 부르고, 피 흘리던 여인이 목숨 걸고 주께로 나아간다. 불구의 친구를 위해 지붕까지 뜯어내고 주님께로 내린다. 부끄럽지만 불의의 현장에서 잡혀 주님 앞에 던져진다. 망하고 무너져 초라한 모습으로 다시 주님 앞으로 간다. 이 모두는 다 주님이 지나가시는 길목이다.
손을 뻗는 자가 기적의 주님을 만난다. 소리쳐 간청하는 자가 주님을 뵙는다. 내 연민에서 탈출해 뛰어내리는 자가 주님 사랑을 얻는다. 자기 일에서 주님의 일로, 자기 사랑에서 주님 사랑으로, 자기 영광에서 주님 영광으로 나아가는 그 길들의 끝, 자아의 죽음에서 생명의 주님과 하나가 된다.
오, 사랑의 주님이시여, 내 안의 것을 모두 제거하실 날은 언제입니까. 내가 죽는 그 거룩한 때는 언제 오는 것입니까. 언제 제 목숨을 주님과 복음을 위하여 잃을 수 있겠습니까…. 하늘이 맑다. 화살처럼 날아가는 이 봄에 지나가시는 주님을 붙잡는 일이 봄에 할 일이다.

박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