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함을 향한 과정
하나님께서 큰 은혜를 부어주시는 시기가 있다. 새로운 믿음의 결단을 내리기 전에 혹은 큰 어려움이 닥치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일생일대의 은혜를 부어주신다. 10년 전, 그때의 나는 열정이 뜨거웠고 의지가 제법 굳세었다. 열흘의 금식을 거뜬히 해내기도 하고 40일 동안 한 끼만 먹고 지내기도 했다. 몇 년 동안 얼굴에 로션 한 방울도 바르지 않고 일부러 추운 방에서 잠을 자는가하면 기도시간에 눈만 감으면 시간이 훌쩍 가곤 했다.
거룩한 성도들의 삶이 너무나 흠모되었고, 조금만 더 열심을 낸다면 그 경지에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완전하지 않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 목표가 그다지 멀다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힘에 지나도록 열심히 사는 내게 오랫동안 신앙의 길을 걸어온 선배들은 이렇게 권면했다. “좀 쉬엄쉬엄하세요. 우리가 거룩하게 되는 데는 과정이 필요하고 시간이 걸린답니다. 여유를 가지세요.” 겉으로는 고맙다고 했지만 나는 그런 류의 권면들에 속으로 콧방귀를 뀌었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지금 내 손에 잡힐 것 같은 그 신령한 은사를 눈앞에서 놓치라는 것인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의 열정과 의지도 점점 약해져가고 식어갔다. 아니 애초에 그것은 나의 것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한 줄 알았던 선행과 열심은 은혜의 강권하심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금방 겸손과 온유, 사랑과 자비와 같은 그분의 성품을 취할 수 있을 것만 같았고 정말 기도만 하면 그런 은사들이 내게 임하는 것 같았지만 맛만 보았을 뿐 아직 내 것이 되기에는 꽤 멀리 있었다. 자신이 죄인이라고 고백하면서도 연약함의 실체를 알지 못하는 내게는 온전함을 향한 과정이 필요했다. 큰 은혜를 주신 것은 말씀을 주기 위한 통로였으며, 이제 그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는 그 법을 배워가는 고난의 길이 남아있던 것이다.
최근 히브리서 말씀을 공부하면서 예수님의 성육신에 관해 놀라운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완전하신 주 예수님께서 우리의 본이 되시기 위해서 굳이 불완전에서 출발하셔서 일생 완전을 향해 가셨다는 것이다. 순종 그 자체이시며 그 진리를 가르치신 분이 굳이 그것을 배워서 온전해지셨다는 사실이 내게 큰 은혜와 위로가 되었다.
성경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가 이 땅에서 아기의 모습으로 오심을 기록한다. 그분은 인간의 성장과정을 건너뛰지 않으시고 그대로 겪으셨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균형 잡힌 성장을 이루어가셨다.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시는 분, 만유의 상속자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이며 그 본체의 형상이신 분께서 모든 면에서 미성숙하고 불완전한 아이의 모습으로 오셨다는 인간의 지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놀라운 사실이다.
전인격적으로 아름답게 자라나신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계실 때 당신을 죽음에서 구할 수 있는 분께 큰 소리로 부르짖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와 탄원을 올리셨다.(히5:7) 말씀 한마디로 세상을 창조하신 그분께서 무엇 때문에 눈물을 흘리며 애타게 구하셔야 했단 말인가. 그러나 예수님은 3년 반 공생애 기간 동안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많은 기도의 싸움을 싸우셔야 했다. 죽음의 권세 앞에 슬퍼하고 고통 하는 제자들을 도우시기 위해 간절히 기도하셨으며 십자가의 도 앞에 반발하는 제자들의 가슴 속에 복음신앙을 심으시기 위해 기도하셨다.(눅9:28) 무엇보다도 예수님 자신이 인간의 모든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를 지셔야 하는 때, 겟세마네 동산에 나아가 간절히 기도하셨다. 그 무거운 십자가 고난을 넉넉히 감당할 수 있는 하늘의 은혜와 힘을 주시도록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리셨다.(마26:39)
예수님의 삶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 순종함을 배워 온전하게 되신 생애였다(히5:8-9). 고난을 통해 순종하는 법을 배우는 일, 이것이 바로 주님께서 나를 위해 먼저 가신 길이다. 영적인 세계의 보화는 지식으로 배워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실천하고 순종함으로써만 얻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순종에는 고난이 수반된다는 것을 친히 그 삶으로 가르쳐주셨다.
지금의 나는 10년 전 갖고 있던 열정과 의지를 갖고 있지 않다. 신앙의 완전이라는 목표가 눈앞에 보이고 손에 잡힐 것만 같았던 그때와 달리 지금은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다. 지금 우뚝 서 있더라도 잠시 잠깐 후에 어떻게 넘어질지 알 수 없기에 과연 내가 서약한 바를 끝까지 지킬 수 있을지 자신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제 분명히 아는 것은 천국으로 향하는 여정은 길고 약속의 땅에 있는 샘에 도달하기 위하여 가야할 길은 건조하고 메마르다는 것이다. 내가 온전해지기 위해서는 참된 순종을 배워가는 이 고난의 시간들이 꼭 필요하기에, 오늘의 내게는 인내가 필요하다는 것을 나는 지금 배워가고 있다.

박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