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중독자가 되라
설탕중독에 관한 글이 실시간 검색어로 올라왔다. 그와 관련해 ‘단맛에 열광하는 대한민국’이라는 부제목이 함께 덧붙여졌다.
단맛에 내성이 길러지면 단것을 먹지 않을 경우 불안하여 손이 떨리는 금단현상까지 나타난다고 한다. 또한 설탕에 중독되면 당뇨병, 비만, 심장질환 등 여러 합병증도 생긴다고 한다. 의학계에서는 정신적인 문제로까지 보고 있다. 설탕에 중독되지 않으려면 가공되지 않은 자연식품을 먹으라고 권한다.
신앙도 마찬가지이다. 세상의 단맛에 내성이 길러지면 단단한 음식을 먹기가 힘들다. 밥보다는 더 부드럽고, 더 달콤한 음식만을 자꾸 고집하며 찾게 된다. 또한 선한 명분이나 달콤한 악습에 내성이 길러지면 그것에서 벗어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한마디로 금단 현상이 일어나게 된다. 그 달콤함에 중독되어 더 깊이 빠져들게 되고, 자신이 중독되어 있는지조차도 모르는 심각한 상황까지 간다. 가라지 씨도 어느 한순간에 뿌려지는 게 아니다. 마귀적이고 정욕적이고 세상적인 달콤함에 점점 중독되어 물욕이나 성욕이나 명예욕 같은 정욕에 작은 구멍이 뚫렸을 때, 즉 잠잘 때 뿌려지는 것이다.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는 마귀는 서서히 세상의 단맛에 젖게 하여 우리를 깊은 정욕의 수렁으로 끌고 간다. 정욕에 중독되면 그 누구도 장사가 없다. 영적 생활에 점점 싫증이 나고, 태만에 길이 난다. 기도와 말씀, 회개 생활도 등한시되고, 절제도 무너지고, 사명도 시들시들해지는 등 여러 합병증이 생겨난다. 그러면 영혼도 피폐해지기 마련이다. 신앙의 연륜은 쌓였건만 시간이 지날수록 선한 명분을 내세우며 마음과 행실과 생활의 구석구석에 허례와 위선으로 점점 중독되어 가고 있지는 않은가. ‘천로역정’에 나오는 진충이 아담의 세 딸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끊어내는 데 몸 한쪽이 떨어져 나가는 듯한 엄청난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내 영혼은 지금 무엇에 점점 맛을 들이고 있는가. 더는 머뭇거리지 말아야 한다. 우리 역시도 단맛에 내성이 길러지기 전에 정욕의 달콤함을 싹둑 잘라내야 한다. 순간마다 자신의 영적 상태를 정확히 점검해보고 진단해보자. 또한 세상의 단맛에 중독되지 않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맑은 물을 공급받으며 누룩이 섞이지 않는 무교병의 말씀을 계속 섭취해야 한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그 어떤 작은 악습일지라도 철저히 회개하고 육적인 단맛들을 하나하나 끊어내지 못하면 우리는 결코 익은 열매가 될 수가 없다.
거친 광야에서 매일매일 단단한 고난의 떡을 드시며 영적 내성이 길러진 손양원 목사님의 절절한 고백이다.
“나는 예수의 중독자가 되어야 하겠다. 술 중독자는 술로만 살다가 술로 인해 죽게 되는 것이고. 아편 중독자는 아편으로 살다가 아편으로 인해 죽게 되나니. 우리도 예수로 살다가 예수로 인해 죽자. 우리의 전 생활과 생명을 주님을 위해 살면 주같이 부활 된다. 주의 종이니 주만 위해 일하는 자 되고, 내 일 되게 하지 말자.”
진실로 위대한 사람들은 세월이 지날수록 그 위대성이 점점 더 크게 드러난다. 사도 바울의 모습은 2천 년 동안 점점 더 높이 우뚝 세워지고 있다.
유명한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바울의 발길이 머무는 곳, 그곳이 어느 마을이든 어느 도시든 그 순간부터 그 도시와 그 마을은 바울의 영향권을 피할 수가 없었다. 바울이 로마에 끌려서 들어오던 그 날 로마의 하늘에는 복음의 새벽이 밝아오고 있었다.” 토인비는 이렇게 계속 말한다. “그리스도의 대사, 이 작은 거인, 바울만큼 세계 역사의 운명을 바꿔 놓은 사람은 없다.” 바울이 그토록 큰 인물이 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사도 바울은 잠을 자든지, 밥을 먹든지, 감옥에 있든지, 병이 들든지 그의 생은 오직 하나였다.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하다. 나의 사는 것 전부가 그리스도이다.” 사나 죽으나 예수를 높이고 예수를 영화롭게 하고 예수를 위하는 일이라면 좋다, 더 바랄 것이 없다 하면서 예수에게 미친 사람이요, 예수를 위해 살고 예수를 위해 죽은 사람이며, 예수님께 완전히 중독된 사람이었다.
무등산 자락의 화순군 도암면 등광리에서 출생한 이세종 선생님은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3형제 중 막내로 가난한 형님댁에 얹혀살았다. 그는 28세에 남의 집 양자로 들어가 머슴살이를 하다가 돌연 나이 40세에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산골 동네에 어떤 여자가 나타나 “예수 믿어야 산당께! 예수 믿어야 살아!”하며 외치고 지나갔다. 이를 계기로 성경을 구해 독학으로 글을 깨우쳐 성경을 읽고 기독교인이 되었다.
예수님을 믿고 이세종은 “억조창생 만민들아! 다 회개하고 예수를 믿어라.”라며 미쳤다. 그리고 자식을 낳게 해달라거나, 집안이 잘되게 해달라고 비는 모든 것은 부질없는 것임을 깨달았다. 그에게 있어서 참된 복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의 삶을 본받아 가는 청빈과 자기희생, 그리고 사랑의 길이었다. 부와 명예, 권력과 성공 등 세상이 주는 단맛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었다. 오직 주님만을 찾고 또 찾는 데에만 열심이었다.
“파라 파라 깊이 파라. 얕게 파면 너 죽는다. 뿌리도 깊이 팔수록 좁다. 좁은 길이다. 깊이 파고 깊이 깨닫고 깊이 믿으라. 어설프게 파면 의심밖에 나는 것이 없다.”라며 그는 공부 시간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음식을 먹지 않았다. “성경 공부는 공사요, 음식 먹는 것은 사사다”라고 하였다.
예수님을 잘 믿으려면 “빌어먹으라.”라는 말도 했다. “예수 잘 믿으려면 거지 오장치 짊어지듯 믿으라. 물에 빠지듯 풍덩 빠져 믿으라.” 그는 예수님을 믿고부터는 믿는 일에 아예 중독자처럼 되었다. 거지가 되려 하고, 남 보기에 미친 사람 같아 보이기도 하였다.
이용도 목사님은 “미치자. 크게 미치자. 예수를 위해 미치는 것만이 우리의 목적이다.”라고 외치며 자나 깨나 예수님뿐임을 설파 하였다. “예수다! 우리 신앙의 초점은 예수다! 소망에도 예수요 인내에도 예수요 기도에도 예수다. 떠들어도 예수요 잠잠해도 그저 예수뿐이다. 생시에도 예수! 꿈에도 예수!” 그리고 아주 예수님께 미치기를 원하셨다. “나의 혼을 빼내시고 예수님의 혼을 넣어 나로 아주 미치게 하소서.” 또한 그는 기도의 중독자이셨다. “기도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보다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배가 고파서 슬픈 것이 아니요, 가난해서 슬픈 것이 아닙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괴롭고 슬픕니다.” 예수님께 중독된 사람은 기도하지 않으면 도리어 슬프다. 기도하지 않으면 영혼의 떨림이 온다.
예수님께 미친 하워드 테일러는 다음과 같은 위대한 고백을 하셨다. “남김없이(No Reserves), 후퇴 없이(No Retreats), 후회 없이(No Regrets) 하나님만 따르길 원합니다.”
내 남은 생도 예수님께만 온전히 중독되어 살아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 그래서 좁은 길을 걸으며 남김없이, 후퇴 없이, 후회 없이 주님만을 따랐노라고 먼 훗날 고백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세상의 달콤한 맛을 끊어가면서 이 길을 걷겠노라고 다시 굳게 다짐해 본다.

이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