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과 단둘이 있는 것
얼마 전 친구들과 깊은 산 속에 숨겨진 수도원을 방문했다. 작년 크리스마스 특집으로 TV에 방영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한번 들어가면 나올 수 없으며, 심지어 죽어서도 나올 수 없다는 봉쇄 수도원이다. 인터넷, 휴대폰, 신문, 방송 등 외부세계와의 모든 접촉이 차단되어 있고, 수도원의 수사들은 독방에서 침묵과 고독에 투신한다. 그들에게 독방은 거룩한 땅이며, 주님과 이야기 하는 곳이다. 감옥과 다름없어 보이기만 한 그곳에, 화면 속의 수사님들은 어린아이 같은 천진난만한 모습이었다. 문을 노크하자 화면 속에서 봤던 낯익은 수사님께서 반겨주셨다.

수도원을 둘러보고 스페인 출신의 원장님과 함께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외부의 활동에 바쁜 우리가 어떻게 하면 이곳의 수사님들처럼 고요하게 평화롭게 살 수 있냐는 질문에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만약 카메라가 당신의 매 순간을 촬영하고 있다면 어떨까요? 우리의 생활을 하나님께서 그처럼 지켜보고 계시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베네딕도의 수도규칙에 보면 수도자들은 하나님께서 천상으로부터 매시간 항상 자신을 내려다보시고, 자신의 행동을 하나님께서 어디서나 살펴보시며, 또 천사들이 매시간 보고 드리고 있다는 사실을 항상 생각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렇게 살아간다면 세상에서 살아가든지, 수도원에서 살아가든지 똑같이 주님 앞에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원장님과 짧은 대화를 나누고 돌아가는 길, 내면의 보화를 발견한 모두의 얼굴은 밝게 빛나고 있었다.

나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은 동작이 빠르다는 것이다. 씻는 것, 먹는 것, 일하는 것 등 뭐든지 남들의 배나 빠르다. 그 대신 일의 정확도가 떨어지거나 실수할 때가 종종 있고, 무엇이든 빨리 하려고 하다 보니 마음이 급할 때가 참 많다.

하나님 앞에서 삶을 살려고 애써보니 내 삶에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동안 뭐가 그렇게 급했을까. 가장 중요한 것은 주님과 함께하는 삶인데 말이다. 주님 앞에서 설거지를 하니 빨리 해치우고 끝내는 것이 아닌 그릇을 닦는 과정에 집중하게 된다. 이것저것 늘어놓았던 책상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주님이 함께 거하시는 방인데 어찌 지저분할 수 있으랴. 무엇보다 순간순간의 무게가 달라진다. 주님이 보시는 지금 이 순간은 흘러가는 것이 아닌 영원 속에 쌓이는 보석이 되기 때문이다. 그분과 함께 있는 공간의 의미도 한층 더 깊어진다. 이제부터 내 삶의 목표는 어디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주님과 단둘이 있는 것’이 되어야 함을 마음에 새겨본다.

이렇게 주님 앞에 사는 삶이 단 며칠의 훈련으로 완성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나님의 임재연습』의 저자로 유명한 로렌스 형제는 하나님만을 위해 모든 일들을 행하는 내적 습관을 익히려면, 오랜 시간동안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수도원의 수사였던 로렌스 형제는 하나님의 임재를 지속적으로 의식하는 훈련을 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이 훈련을 통해 언제나 영혼 한가운데 가장 깊은 곳에서 하나님과 함께 쉬었고, 근심 걱정과 두려움이 사라짐을 경험하였다.
때로 하나님의 임재연습이 자신의 육신이 정당하게 누리는 위안들을 앗아가는 것도 사실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영혼이 당신 이외에 다른 것에서 위안을 얻는 것을 싫어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자신을 철저히 억누르고 절제해야만 이런 훈련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 마음이 한눈을 팔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마다 우리의 눈을 온화하고 평온하게 하나님께로 향하게 한다면 신령한 자유함 속에서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
하나님과 늘 함께 있는 로렌스 형제에게는 수도원에서 정한 기도 시간과 일상의 다른 시간이 구별되지 않았다. 동료 수사들은 영적 쇄신을 위해 잠시 수도원을 떠나있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지만, 그에게는 필요하지 않았다. 자신을 영적으로 이끌어줄 지도자를 별도로 요청하지 않았고, 영적으로 힘들어질 때 누구에게 조언을 구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신다는 유일한 지식과 믿음을 안내자로 삼아, 무슨 일을 당하든지 하나님을 위해 행동하고 또 하나님을 위해 사는 것으로 만족했다.
수많은 말씀을 듣고도 내 삶이 변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주변 사람들에게 쉽게 서운한 마음이 들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전화기부터 드는 건 왜일까,


작은 일에 충성하지 않기 때문이다.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심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일을 많이 하고도 여전히 마음이 허전한 이유도 역시 하나님의 임재 연습이 부족한 탓이다. 내 삶의 이유가 많은 사역을 하고 훌륭한 업적을 이루는 것보다 오직 주님과 단둘이 있는 그것만이 내 삶의 목표이어야 한다.

박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