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금식 기도할 때
“너희는 시온에서 나팔을 불어 거룩한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선고하고 백성을 모아 그 회를 거룩케 하고 장로를 모으며 소아와 젖먹는 자를 모으며 신랑을 그 방에서 나오게 하며, 신부도 그 골방에서 나오게 하고 여호와께 수종드는 제사장들은 낭실과 단 사이에서 울며 이르기를 여호와여 주의 백성을 긍휼히 여기소서, 주의 기업으로 욕되게하여 열국들로 그들을 관할하지 못하게 하옵소서, 어찌하여 이방인으로 그들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말하게 하겠나이까 할지어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자기 땅을 위하여 중심이 뜨거우시며 그 백성을 긍휼히 여기실 것이라”(요엘 2:15-18).
 
금식 일을 정하고 성회를 선포하면 여호와께서 그 중심이 뜨거우시며 그 백성을 긍휼히 여기시고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축복을 주시고 북편 군대를 멀리 쫓아내어 전멸시키겠다는 약속이 있습니다.
 
첫째, 금식이 성경적인가 생각해 봅시다.
금식이 정신 건강에 기적적인 효과가 있다는 사실은 고금동서에 널리 알려진 사실이며 요즘 단식 요법이 효과가 높이 평가되고 성행되고 있습니다. 금식을 하게 되면 평생 오염된 물질들과 몸에 축적되고 괴인 것들이 모두 깨끗이 불태워지고 씻어집니다. 동물들도 동면함으로 건강상 큰 도움을 얻고 병이 나면 단식 요법을 본능적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세계의 정신 지도자들은 자기 정신을 수양하고 절제와 의지를 배우기 위해 금식을 했습니다. 모든 종교를 연구해 보면 단식이 영혼의 묘약으로 써졌습니다. 회교도들은 의무적으로 최소한 한 달에 두 번 이상씩을 금식하도록 권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기독교가 금식을 경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기독교가 굶는 것을 못 참는 서구에서 들어왔기 때문인 듯합니다.
사실 금식이라는 것 가운데는 외식, 율법주의, 고행과 금욕 사상, 동양의 신비주의, 접신, 입신의 수단으로 삼는 이교적 오염의 위험성도 없지 않습니다. 그래서 금식 기도를 중세 기독교의 유물이나 산중파의 유물로 보는 경향이 없지 않습니다. 물론 금식 기도는 성경의 근본 교리도 아니고 신앙의 필수 조건도 아닙니다. 그러나 성경을 깊이 읽어 보면 금식 기도는 성경 위인들의 관문처럼 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 체험 가운데도 다른 방법으로는 열리지 않고 해결되지 않는 것들이 금식 기도를 통해서 눈이 녹듯 녹아 지고 저절로 풀리는 것을 많이 경험합니다. 보통 기도를 보통 폭탄에 비유한다면 금식 기도는 원자 폭탄에 비유한 책도 있습니다. 현대 기독교가 잃어버린 것 가운데 금식 기도라는 가장 보배스러운 것을 사장해 버렸고 상실해 버린 것 같습니다. 이 금식 기도는 숨겨진 보화요, 열쇠요, 무진장의 잠재적 에네르기며 성령의 최강한 기구이기도 합니다. 성령은 금식 기도한 사람을 쓰시기가 편리합니다.
구약의 대표적 인물인 모세는 십계명을 받으며 두 차례 40일 식음을 전폐하고 엘리야도 호렙산까지 40일을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걸어갔습니다. 이것은 초자연적 금식 기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또 이스라엘 사람들은 민족적 위기를 당했을 때 금식을 했습니다. 에스더와 유대인들이 수산성에서 3일간 금식했고, 니느웨 성이 멸망의 경고를 받고 왕부터 육축까지 금식했으며, 사무엘은 온 백성을 미스바에 모여서 거족적 금식 기도를 했습니다. 다니엘도 민족 해방을 위해서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레위기 23:27에 보면 7월 10일을 민족적 속죄일로 정하고 참회하는 금식일로 규례를 삼았고, 스가랴 8:19에 보면 4, 5, 7, 10월에 민족적인 금식일로 정해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전 국민적인 금식을 했고, 요엘서를 보면 금식 일을 정하고 성회를 선포하라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일도 있으며,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내게로 돌아오라고 금식을 권고하셨습니다. 느헤미야서에도 에스라서에도 성지 회복과 무사히 환국하기 위해 금식한 기록이 있고 그 기도는 모두 응답되었습니다. 다윗 왕도 개인적으로 자주 금식 기도를 했고, 못된 아합 왕도 엘리야의 경고를 받아 금식하며 회개함으로 당대에 화를 면하는 응답을 받았으며, 바리새인들도 늘 금식했고 예수님께서도 40주야를 금식하셨습니다. 여 선지 안나도 성전에서 금식 기도했고 사도 바울도 다메섹에서 3일 간 금식 기도를 포함해서 자주 금식 기도를 했습니다. 사도행전의 120 문도의 기도도 금식 기도라고 해석한 학자도 있으며, 안디옥 교회가 바울과 바나바를 선교사로 파송할 때 금식 기도했으며, 각 장로들을 택할 때 금식 기도했고, 중세 수도사들은 금식을 수도사 훈련의 필수 과정으로 삼았으며, 루터, 칼빈, 피니 등 영계의 거성들은 모두 금식 기도를 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약 400명의 장기 금식 기도를 한 분들은 모두 기적적 삶들을 살고 있는 것을 봅니다. 어떤 이들은 금식 기도함으로 신유 은사를 받아 행하고 있고 또 어떤 이는 성경에 눈뜨게 되고 남을 사랑할 수 있게 되고, 기도의 능력을 얻고, 나쁜 습관을 고칠 힘을 얻기도 하고, 교회 부흥을 얻기도 하고, 개인의 소원을 성취하고, 지혜와 믿음을 금식 기도함으로 얻게 되기도 합니다. CCC 부흥 운동도 1961년 간사들의 금식 기도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20일 간의 금식 기도는 20년 간 기도한 것에 해당된다고 말하기도 했습습니다.
둘째, 지금은 금식 기도할 때입니다.
성경에 보면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와서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않느냐고 묻자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때는 금식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금식 기도를 배격하신 것이 아니고 신랑을 빼앗긴 날 금식 기도할 것을 전제하신 것입니다. 본인도 40일 간 금식 기도하였고 금식 기도 후 성령이 활성화하셨던 것입니다. 신랑을 빼앗긴 때란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부터 재림 시까지의 사이입니다. 10처녀 비유를 보면 신랑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교인의 상태로 되어 있는데 예수님이 지금 영적으로는 와 계시지만 우리는 신랑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고 빼앗긴 상태인 것 입니다. 따라서 지금은 금식 할 때이며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교회는 초비상한 금식 기도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또 마태복음 6:2, 5, 6을 보면 ‘너희가 구제할 때…기도할 때…금식할 때…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고 하셨습니다. 여기도 금식 기도를 의례히 할 것을 전제로 하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사실 금식 기도 이상으로 절실한 기도는 없을 것입니다. 나는 형제자매들에게 금식 기도를 적극 권하고 싶습니다. 지금껏 금식 기도했던 사람들이 모두 신앙에 요동이 없고 영의 힘을 얻었고 뜨거운 헌신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능력 있는 신앙생활을 위해서 금식 기도에 꼭 참여 합시다.
셋째, 진심으로 회개하며 기도하는 금식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이사야 58:6에 보면 하나님의 기뻐하는 금식은 모든 흉악의 결박을 푼다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17:21에 보면 제자들이 왜 우리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느냐고 물을 때 “기도와 금식이 아니면 이런 유가 나가지 아니 하느니라”고 대답하셨다고 어떤 사본들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정신적으로 귀신 들리고 악령의 노예가 된 사람들이 캠퍼스에, 사회에 꽉 차 있는데 이 귀신들을 캠퍼스에서, 사회에서 우리 민족과 실업인들과 매스컴의 몸에서 쫓아내고 풀어 주는 것은 기도와 금식 밖에는 되지 않는 것입니다.

고(故) 김준곤 목사의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