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쩜 당신은 그 자리를 지켜냈나요         
 아침예배를 드리기 전, 히즈윌의 맑고 투명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산 위에서 세상 모르고 배만 만드는 노아. 당신 정말 바보 같군요. 왜 맑은 날 배를 만드나요. 왜 하필 높은 산위에. 당신 참 바보 같군요. 눈부신 해가 하늘 높이 뜨면 비의 약속 잊을만한데. 날마다 듣는 조롱에 그 외로운 길 포기할 만한데. 당신은 어쩜 그리 묵묵히 그 길 가나요. 당신은 어쩜 그리 그 자리를 지켜냈나요. 당신 참 바보 같군요. 나도 바보처럼 살래요.”
처음 듣는 멜로디와 가사였지만 “당신은 어쩜 그 자리를 지켜냈나요?”라는 가사가 계속 귓전을 맴돌았다. 그러면서 16년째 병원에 장기 입원하고 있는 한 소녀의 믿음의 고백들이 하나 둘 스쳐갔다.   
김온유(33살)는 88올림픽이 한창일 때 독실한 크리스천 가정에서 건강하게 태어나고 자랐다. 가벼운 감기로 병원을 찾았는데 의사가 증상을 오진했고, 오진에 기초한 무리한 수술은 부작용을 불렀다. 당시의 나이는 14살이었다. 몇 차례의 수술 끝에 급기야는 인공뼈를 몸에 넣는 수술까지 하게 되었고, 그것이 심한 염증 반응을 일으켜 피부가 녹고 장기가 망가지고 갈비뼈가 부러져 나갔다. 잇따른 의료사고로 자가 호흡까지 잃었다. 처음엔 현실이라 믿기지 않았고, 이후엔 이 시간이 오래가지 않을 것으로 믿었다.
"곧 회복되리라는 희망을 품고 있었어요. 중환자실에서 시한부 선고를 받았을 때도 하나님께서 곧 내가 있어야 할 자리로 돌려주실 거라고 믿었죠. 심지어 누군가 병문안을 와서 제게 많이 좋아졌다고 말할 때면 불쾌했어요. 잃어버린 건강을 다 회복하지 못했는데 좋아졌다고 하니깐요. 잃어버린 것들이 당연한 내 것이고, 되찾아야 마땅하다고만 생각했던 거죠."
이후 앰부라는 인공호흡기에 의지해서 병원에서 누워 16년을 살아왔다. 그런데 그녀가 쓴 ‘숨 쉬지 못해도 괜찮아’에 보면 매일 매일이 기적이고 기쁨이다. 그녀의 자가 호흡을 도와주기 위해서 앰부를 눌러주는 기적의 릴레이가 계속 이어졌고, 지난 16년간 자원봉사자들이 하루에 4번씩 교대를 하며 그녀를 돕고 있다. 수만 명의 앰부 봉사자 ‘릴레이 온유’가 그녀의 곁에서 함께 숨쉬기 시작한 것이다. 그동안 함께 숨을 나눈 봉사자만도 1만 5,000여 명에 달한다.
"아침에 눈뜰 때 친한 친구의 얼굴을 보면 예쁘고 사랑스러워서 쓰다듬을 때가 있어요. 또 어떨 때는 현실을 자각해 심장이 덜컥 내려앉아요. 난 해줄 수 있는 게 없는데, 많은 사람에게 호흡을 선물 받아 살아가도 될까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그러나 앰부 봉사자들은 오히려 그녀와 함께 숨을 나누며 기적 같은 하루를 선물 받았다. 봉사자 중에는 마음이 아프거나 정신적으로 헤매는 친구들이 많았는데, 그녀를 만나 상처를 치유 받고 회복했다. 특히 비기독교 봉사자들은 주님을 만나게 된 것이 가장 큰 선물이었다고 고백했다.
그런데 릴레이는 바통을 넘기는 순간이 늘 문제였다. ‘릴레이 온유’에서는 불특정 다수가 자발적으로 각자의 릴레이를 이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어떤 날에는 너무 많은 봉사가 몰려드는가 하면 어떤 날은 다음 바통을 받아줄 사람이 없어 한 사람이 계속 달려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어떤 때는 하루 종일 휴대전화를 붙잡고 사방에 도움을 요청해도 “사람이 없어서 어떡해…. 근데 나도 오늘은 안 될 것 같아.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해.”라는 답만 돌아올 뿐 자원자가 나타나지 않는 날이 있었다. 거절은 모두에게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는 이에게도, 받는 이에게도, 옆에서 기다리는 이에게도, 그런 복합적인 어려움이 그녀를 지치게 만들었다. 하지만 당장 릴레이가 끊어지는 것보다 더욱 심각했던 문제는 이런 일이 반복될 때마다 힘이 빠져버린 그녀의 마음속에 시험이 찾아드는 것이었다. “이렇게 계속 살아가야 하는 걸까? 친구들에게 더는 부담을 주고 싶지 않은데, 언제까지 모두에게 부담이 되어야 할까? 하나님, 이렇게는 못 살겠어요. 그만 저를 데려가주세요.”
그녀의 고백들을 하나하나 따라가는데, 내 눈에서 눈물이 좀처럼 멈추어지질 않았다. 길을 걷는데도 계속 눈물이 났다. 신문 발송 자원봉사를 사람들에게 부탁할 때 “이번 달은 안 될 것 같아요.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해요.”라는 말이 돌아올 때면, 은근히 마음이 불편했다. 사람들이 적게 오는 날이면 괜히 내 탓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자원봉사들 중 조금이라도 힘든 기색을 하면 마음에 부담이 되었다. 사역을 하면서 겪는 부담감들로 인해 때로는 도망치고 싶고, 놓아버리고 싶어서 원망과 투정을 부렸던 지난날들의 내 모습들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생사가 오고가는 삶속에서 매일매일 부탁을 하며 남의 도움을 받아야만 살아갈 수 있는 그녀의 삶에 비해 나의 어려움은 정말 작은 모래알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그 고통의 자리를 그녀는 묵묵히 지켜내고 있다. 그 어렵고 험난한 길을 때론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을 텐데, 그녀는 고백한다.
“저는 날마다 새로운 호흡을 선물 받습니다. 날마다 새로운 하루를 선물 받습니다. 때때로 누군가 나에게 행복하냐고 물으면 언제나 진심으로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인생에서 가장 힘겨웠던 순간들은 언제나 가장 감격스러운 추억이 되었고, 앞으로도 인생의 모든 순간이 더욱 특별하게 느껴질 것인데 어떻게 행복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어쩌면 많은 이들이 이 이야기를 듣고 고난이 해결된 해피엔딩을 기대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아프고 힘겹다. 무엇보다 ‘릴레이 온유’와 가족들이 언제까지 자신을 감당할 수 있을지 두렵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오늘 하루 숨 쉴 수 있음에 행복하다고 말한다.
"여전히 가장 쉬운 길은 주님 곁에 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덤으로 숨을 쉬고 있잖아요. 나를 향하신 계획이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까지 그러셨듯이 힘겨운 상황 속에서 또 어떤 기쁨을 주실까 하는 기대로 살아가요."
16년 병상생활 가운데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그녀의 믿음이다. 이전의 '건강한 삶'도 지금의 '아픈 삶'도 모두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제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아무것도 없었죠. 절박한 순간 기도밖에 붙들 것이 없었어요. 어느 날 여느 때처럼 기도하고 있는데, 그 어떤 것도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제야 주님께서 매일 주시는 생명에 대한 감사의 고백이 나왔어요."
하나님은 슬픔 속에 있는 자기 백성이 노래하게 하시는 분이다. “주님, 내가 주님을 찬양합니다. 내가 포위당했을 때에, 주께서 나에게 놀라운 은총을 베푸셨기에 내가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들아, 힘을 내어라. 용기를 내어라”(시31:21, 24).
슬픔과 고통의 자리일지라도 그곳을 묵묵히 인내하며 지켜내는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은 지금도 일하고 계신다.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들아, 힘을 내어라.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다. 외롭고 좁은 길이라도 괜찮다. 가난해도 병이 들어도 괜찮다. 부담감과 고통이 계속 이어질지라도 괜찮다. 세상을 멀리하며 사람들의 눈에 바보처럼 보여도 괜찮다. 주님이 원하시는 곳에서, 그 자리를 묵묵히 지키며 노래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