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무너지고 소망이 채워지는 나라를 위해
큰 성 바벨론의 멸망은 지구 최후 심판처럼 이루어진다. 세상의 관점에서 보면 바벨론은 크고 강한 성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은 바벨론의 죄에 비례해 준엄하고 철저하게, 남김없이 심판하신다. 바벨론에 거하며 안전한 성이라고 자부하던 이들은 사람의 보기에 바른 것 같았으나 그곳은 필경 사망으로 가는(잠14:12) 죽음의 길이었다. 하나님은 바벨론에 심판을 선포하시며 성도들에게는 장망성(將亡城)과 같은 그곳을 떠나라고 명하신다. 하나님의 백성이 거기 머물면 함께 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무너진다
브라질의 열대우림 파괴, 수개월째 타들어가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산불, 필리핀의 화산 폭발, 녹아서 내리는 극지의 빙하 등 작년에 이어 올해 들어 지구 곳곳이 타들어 가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은 지구온난화라는 과학적 정의로, 인류에 내리는 마지막 재앙이라는 도덕적 심판으로 불리며 불안한 가운데, 세계의 원시림은 하루에 축구장 7만2000개 면적만큼 없어진다는 주장도 나온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작년 상반기 기상 이변에 따른 재해로 전 세계에서 약 700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비정부 기구인 국내난민감시센터는 지난 1월부터 6월까지 각국 정부와 유엔 기구, 언론 보도 등을 종합한 결과 이같이 집계됐다고 밝혔다. 인도와 방글라데시에서는 초대형 사이클론 '파니'로 수백만 명이 대피했고, 모잠비크와 말라위 등에서는 사이클론 '이다이'가 강타하면서 수십만 명이 피해를 봤다.
또한 기후변화를 비롯한 환경 문제들이 2020년대에 인류가 맞닥뜨릴 가능성이 높은 세계 위험 요인 '톱5'를 휩쓸었다고 한다. 이는 결정적으로 심각한 또 하나와 직결된다. 바로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절반 이상이 기상 이변 등 자연재해 등의 위험에 노출됐다는 분석이 나왔기 때문이다.
외신에 따르면 세계경제포럼(WEF)은 영국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가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GDP의 절반이 넘는 금액의 가치 창출 과정이 자연에 의존하는데, 갈수록 심각해지는 기후 위기가 일어나고 있어 산업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분석이다. 숲이나 바다에서 자원을 직접 추출하거나 건강한 토양, 수분, 안정된 기후와 같은 생태계에 의존하는 분야는 심각한 타격을 입을 밖에 없다. 도미니크 워레이 WEF 국장은 "우리는 인간과 자연 사이의 관계를 재설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호주 국립기후보건센터 연구팀이 내놓은 보고서도 충격적이다. 2050년 육지의 1/3이 생존 한계 상황에 다다르고, 생활 터전을 잃은 기후 난민이 10억 명 이상 발생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 정도면 재앙 수준이다. 지구 곳곳이 무참히 무너지고 있는 날들이다. 마치 그날의 바벨론을 미리 보는 듯이 비참하게 무너지고 있다. 속수무책이다. 

 
 
희망한다
프랑스 신학자 자크 엘륄(Jacques Ellul, 1912~1994)은 1930년대부터 전 지구에 닥쳐올 기후변화를 예측하며 행동 강령을 주창했다. 그의 말을 빌자면, 가만히 있으면 우리가 맞이할 미래는 '보편화한 카오스'다. 외쳐 봐야 변하지 않는다. 가만히 있는다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엘륄은 소망을 말했다. 그리스도인들이 변해야 한다고. 무언가 해야 한다고.
지금 우리는 무너지는 희망 앞에 서 있다. 이때 바로 소망이 피어난다. 소망은 하나님에게서만 온다. 세상이 끝나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어야 할까. 그건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것이다. 끝까지, 오래도록, 절망 가운데 소망할 수 있는 신앙들이 되어야만 한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편지들이다. 그럼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
인간이 최고의 과학이라 자부하며 우쭐대도 자연에 의존해 살 수 밖에 없고 그 자연이 무너지는 현장에서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그저 하늘만 바라보고 있어야 한다. 세계 누구도 호주의 산불을 잡지 못하고 있는 지금, 호주에 사는 집사님이 기도부탁을 해오며 이렇게 말을 한다.
“산불을 끌 방법이 없어요. 하늘에서 비가 내리는 것만이 유일한 희망이에요. 호주는 지금 하늘만 보고 있어요. 그러니 기도해 주세요.”
하나님은 인간에 의해서 조정되지 않지만 결국은 우리를 이러한 위기에서 구할 수 있다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각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인간에 의해 동화되지 않으시며 철저히 하나님 중심으로 인류를 이끌어 가신다. 예수님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보내신 이를 믿는 믿음 안에서 인간의 삶은 이루어지고 완성된다. 성경이 증명하듯 인간의 역사는 불순종의 역사다. 끊임없이 불순종과 욕심을 따라 살아가느라 눈앞에 멸망이 닥쳐도 그것을 부인하며 거부하는 어리석은 존재들이다. 인간의 방법으로 할 것 다해 보고,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손을 놓아야 할 그때, 비로소 하늘을 올려다본다. 지구가 무너져 가고 타들어가는 현상들을 보면서 작은 희망을 하나를 품어본다.
태초에 이 모든 것을 지으신 이를 생각하고, 거부 할 수 없는 그분의 흔적들을 인정하는 겸손, 이어 도우심을 구하는 데까지 희망을 품어보고 싶다. 자연 앞에서만은 속수무책인 인간을 보노라면 절대 약함의 인간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두 손 놓고 하늘만 바라볼 뿐이니 얼마나 한심하고 가련한가. 그래서 희망한다. 희망을 품고 기도한다.
‘주여 소망하게 하소서. 아파서, 절망이어서, 무너져 내리는 상황이어서 소망을 품습니다. 낮은 자리에 가야만, 비로소 하나님을 간신히 바라보는 교만하고 가련한 인생들을 주여 구원하소서.’ 왜 인생들은 이토록 교만할까.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건만.       

 
 

소망한다
성경의 약속과 예언은 모두 성취되었다. 단 한 가지만 빼고 말이다. 바로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재림 예언만 남았다. 오늘날 우리가 지나보냈거나 맞이하는 일들, 또 맞아할 일들은 모두가 성경에 계시된 종말의 징조들이다. 세계적인 테러, 전쟁, 재난, 기상이변, 기근, 지진, 화산폭발, 인구증가, 자원고갈 등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흡사 이 모든 일들은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전 삼년 반 환난의 일들을 미리, 아주 조금 느껴보는 것만 같다. 첫째 나팔 불면, 땅 위의 삼분의 일이 흉년 든다. 피 섞인 우박과 불이 나서 땅에 쏟아진다. 둘째 나팔이 불면 바다 삼분의 일이 피가 된다. 셋째 나팔이 불면 강들과 샘물삼분의 일이 악화된다. 넷째 나팔을 불면 해 삼분의 일과 달 삼분의 일이 타격을 받는다. 온 세상에 임하여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재앙이다. 두렵고 떨리는 일이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면 세상 모두는 두렵고 떨림으로 혼란스럽고 당황하여 난리와 난리가 처처에 있을 것이다. 누군가 나타나 이 모든 어려움을 해결해 준다면 그가 누구든 손을 잡을지 모른다. 적그리스도가 나타나 손을 내밀면 누구도 유혹 당할 것이고 신실한 신앙인들도 믿음을 시험받을 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일들이 소망이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시간표 속에서 진행되는 거룩한 과정들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일이 있어야 그제야 끝이 오는 법이다. 성도의 본분은 주님이 이루어 가시는 과정에 사랑을 담아 순종하고 충성하며 오래 참아야 한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소망을 품고 주님나라를 꿈꿔야 한다. 거룩한 협력자가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언제 오실까? 아무도 모른다. 다만 징조로써 성경이 말씀하신 마지막 때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하고, 약속을 기다리며 소망가운데 신실하게 살아야 한다. 그 누구에게라도 주님의 일하심을 전하고, 무너짐이 두려운 누군가에겐 평강을 선물하며 기도해주어야 한다. 착한 일을 시작하고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일에 선한 동역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의 오심을 소망해야 한다. 이 모든 일을 이루어 가시는 주님이 어서 오셔서 이 땅을 회복하시고, 거룩한 완전함을 주시며, 주의나라를 세워주시길 간절히 열망해야 한다. 그래서 오늘 더 열심히, 빛의 자녀들처럼 살아야 한다. 나에게서 주님이 드러나도록, 나를 통해 주의 영광이 나타나며 간증하는 삶이어야 한다. 바벨론은 무너지지만 그 위에 세워질 주님의 나라는 영원하다. 그 소망이 우리를 살게 한다. 어둠이 무너지고 거룩함이 세워진다.

    
이순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