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이런 날은 참 좋다. 모든 것이 비에 씻긴 이런 날엔 들길을 걸어도 좋고, 숲속의 산책도 좋다. 폐부 깊숙이 맑고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고 걸으며, 청명한 하늘을 보는 일은 또 하나의 정화이다.

채 가시지 않은 잎새 끝 빗방울들이 영롱한 빛을 내며 숲을 채우면, 숲은 온통 신비로 가득 찬다. 비를 그었던 풀벌레들과 산새들의 합창이 시작되고, 부드러운 미풍이 일어난다. 찬 기운이 얼굴에 닿는다. 한적한 바위에 걸터앉아 다시 하늘을 본다. 싱그러운 잎새들과 빛의 무도회를 보는 착각에 빠진다. 그 너머로 천천히 구름이 흘러간다.

‘오, 주님! 이제 다시 일어나야 할 시간입니다. 그간 제 일생 중에 가장 자유로웠던 시간들이 끝나갑니다. 감사합니다. 아무것도 아닌 저에게 이런 은총을 주셔서 많은 것을 접하게 하시고 지난 생애를 돌아보게 하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이제 다시 일어나 내려가려 합니다. 그토록 오래 참으신 사랑과 긍휼로 가엾은 저를 또다시 품어 주시옵소서. 그리하시면 제가 주님을 죽기까지 따르겠나이다. 저를 마지막 수난의 구레네 시몬처럼, 요한처럼 주님 곁에 두시옵소서.

감사와 함께 여러 가지 상념이 인다. 내가 어떻게 하다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가. 낙도의 섬마을 선생님이 되려던 꿈이 바뀌어, 어떻게 말도 안 되는 자가 목사가 되되었는지, 그저 모든 게 신기하기만 하다. 정말 전적으로 주님의 은혜요, 긍휼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 은총 아래 일생일대의 결정적 만남이 있었음을 다시 감격하고 감사한다. 일생을 증거인으로 사신 한 분의 장애인과의 만남. 그분과의 만남은 진정 주님의 특별하신 은총이었다. 그 만남 이후 나의 모든 것이 달라졌다. 평범했던 모든 것이 특별해졌고, 안 보이던 생의 목표가 선명하게 드러났고, 행복의 기준이 달라졌고, 신앙의 형식과 내용이 전부 바뀌었다.

그후로 그분은 나의 가장 소중한 스승이 되셨다. 어떤 억울한 일로 마음에 괘씸한 생각이 가시지 않을 때에도 “대상이 성도님이건 누구건, 먼저 자신의 부족과 잘못만을 고백하며 용서를 구하셔야지요. 상대의 잘못은 주님께 맡기면서요. 자신의 것 만요.”라며 안타까워하셨다. 그러면서 어떤 때는 실제로 나이도 더 어리고, 제자인 나에게 용서를 구하는 겸손의 빛도 비추어주셨다. 그분은 정말 나의 참 스승이셨다.

나는 그분을 통해 예수님을 보곤 했다. 예수님의 용서, 예수님의 사랑, 예수님의 겸손을. 결국 예수님을 사랑하며 일생을 그렇게 살다 주님 주신 십자가를 지시고 고해를 건너 그토록 사모하던 예수님 곁으로 가셨다. 이제 나도 그 길을 가야한다. 잠시 쉬었다면 이제는 벌떡 일어나야 하는 것이다. 예수님처럼, 그 뒤를 좇던 선생님처럼 그렇게 가야만 한다. 상쾌한 바람이 인다.

박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