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뽑히고 부러진 자리에서
거대한 태풍으로 나무들이 요동친다. 가지들이 부러지고 뿌리가 들썩거린다. 봄부터 기다린 과실들이 우수수 떨어진다. 한 번의 시련에 모든 게 끝나려는가. 그럴 순 없는데 가지는 또 새로 뻗으면 되고 뿌리는 다시 더 깊게 내리면 된다. 하지만 떨어진 과실들은 다시 붙일 수도 새로 맺을 수도 없다. 그래서 절망이 영혼을 정복하는가? 아니다. 숲은 결코 절망하지 않는다. 100년을 견딘 나무가 뿌리 채 뽑혔어도, 작은 뿌리에서 다시 가지를 내고 또 100년을 참아간다. 이것이 숲의 인내요 순응이다.
이번 태풍에 두려움이 엄습했다. 옥상 누수로 인해 덮었던 지붕 판넬 남쪽 끝이 뜯어지기 시작했을 때다. 귀퉁이 마감 차양이 뒤집혀 덜덜거리며 요란한 소리를 내었다. 잠시 뒤면 판넬 자체가 날아갈 것 같은 기세다. 여기로 이사 온 이후 처음 겪는 일이었다. 아들이 119에 도움을 요청하자 했지만 일단 확인해 보자며 도구를 챙겨 올라갔다 곧바로 내려오고 말았다. 앉아있기도 힘든 세찬 바람이 모든 것을 날릴 기세이다. 이미 화단은 폭탄을 맞은 듯 모든 게 소란했다. 과일들은 다 떨어졌고, 커다란 화분들도 쓰러졌다. 쥐 침입 지킴이 고양이 두 마리는 제 집 속에 틀어박혀 동그란 눈을 굴리며 태풍의 위력 앞에 호흡이 가쁘다.
바람이 좀 잦아들길 기다리며 기도하다 더 요란해지는 소리에 다시 지붕으로 올라갔다. 군대의 유격훈련이 생각났다. 아들과 손을 잡고 서로 의지하며 조심스레 포복으로 지붕 끝에까지 갔다. 갑자기 일어난 돌풍에 이마까지 동원해 차양을 누르며 주님을 불렀다. ‘주님, 게으름을 용서하시고 잠시만 바람을 잡아 주소서. 사고가 나면 문제가 커집니다 주님…' 애벌레처럼 기어 다니며 겨우겨우 나사를 촘촘히 박아갔다. 아들은 계속 “아빠, 조심하세요.”를 외쳤다.

우리는 간신히 위기를 넘겼지만, 과수원의 농부들은 얼마나 망연자실 할까, 큰 피해를 입은 농어민들, 여러 상인들은 또 얼마나 낙망할까. 인생에 삶의 의욕조차 무너지는 위기는 이따금씩 일어난다. 이렇게 모든 게 끝났는데 더 이상 살 이유가 있는가.
그러나 주목해야 할 것은 사람도 그 어떤 것도 아니다. 이런 세상의 불행과 우리의 죄악으로 미리 죽어가며 그 모든 것을 끝내신 예수님이시다. 죽음보다 더 큰 위기와 불행이 있는가. 그것들을 안고 그분이 죽으셨다면 어떤 불행 속에서도 살 이유는 분명히 있지 않은가. 아직도 죽지 않았다면 더 이상 죽을 이유는 없다. 예수님이 죽어주셨기 때문이다.
이러한 때에 숲을 보고 나무를 보라. 통째로 뽑혀버린 바닥에서 다시 솟아나는 새순들을 보라. 이제는 탐스런 열매를 맺을 수 없어도 다음 해를 기약하며 그래도 끝까지 맺어보려는 작은 미숙과들을 보라. 경이롭지 아니한가. 어떻게 우리 주님과 이런 자연을 보며 절망할 수 있는가.
내년을 바라보자. 다 뽑히고 부러진 자리에서 솟아날 새순을 기대하자. 더 싱그러울 그날을.


박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