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그리스도인의 영성
사도시대와 사도교부(예수님의 직계제자들과 교분이 있었던 이들로서 저술들을 남겼다. 로마의 클레멘트,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 서머나의 폴리갑, 로마의 허마, 파피아스, 「바나바의 서신」의 저자, 「디오그네투스 서간」의 저자, 「디다케」의 저자 등이다)시대인 초기 그리스도교 시대에는 교회가 아직 제도화되어 있지 않았고, 그리스도인 생활에 관한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신학이 제시되어 있지 못했다. 그러나 이 시기는 그리스도교의 근간을 이루는 아주 중요한 시기였다. 초기 그리스도교 영성의 특징을 몇 가지로 이야기할 수 있는데, 이는 그리스도교 영성을 이해하는 중요한 핵심이다.
 
첫째, 초기 그리스인의 영성은 그리스도 중심적이었다.
그리스도가 하나님이라는 사도들의 신앙고백이 그대로 전수되었고, 그리스도의 말씀과 행적이 그들의 마음속에 여전히 살아있어, 모범이며 사랑의 최고의 대상이셨던 것이다. 또한 이 모든 것을 삼위일체이신 한 분의 성령께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각자의 마음에 함께 하셔서 진리를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로마의 클레멘트는 「고린도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우리 구원의 길이요 우리의 보호자이며 우리의 연약함을 받쳐 주는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라는 표현을 반복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바나바의 서신」을 쓴 무명의 저자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와 함께 가장 먼저 변호한 이들 중 한 사람이다.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는 「마그네시아인들에게 보낸 서신」에서 “하나님은 한 분이시고 당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당신을 드러내십니다. … 그러므로 성자와 성부와 성령 안에서…주님과 사도들의 법안에서 확인되도록 힘쓰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침묵에서 나오는 당신의 말씀이신 성자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자신을 나타내셨습니다.”라고 기록했다. 성부 하나님의 모든 것을 그리스도께 맡기심으로 성자 하나님으로서의 신성을 강조하였다.
이그나티우스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일치를 깨닫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각자가 개별적으로 그리스도와 일치하기 위해 그리스도를 본받을 것을 촉구하였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십자가와 부활, 그 분을 통한 나의 믿음, 이러한 것이 나의 헌장입니다. 그 안에서 나는 의로워지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대로 하십시오. 그리스도께서도 성부께서 행하신 대로 하셨기 때문입니다.”
(빌라델피아인들에게 보낸 서신 중에서).

 
둘째,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영성은 종말론적이었다.
초기 그리스도교는 그리스도의 재림과 심판에 대한 종말사상을 강하게 가지고 있었다. 비록 그때가 언제일지는 알지 못했지만 방심하지 않았다. 이들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라 이 세상에 속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에 영원히 머물 집이 있음을 믿었고, 세상을 사랑하는 자는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않는 것임으로 세상에 마음을 두지 않았다.
그들은 방심하지 않고 깨어 있는 교회였으며, 재림이 임박했으므로 교회는 최후의 날에 와 있는 것처럼 살았다. 「디다케」, 「이그나티우스의 서신」, 「파피아스의 서신」에 종말론적인 요소가 명백히 나타나 있다.
「디다케」에는 이렇게 씌어 있다.
“조심해서 생활하십시오. 등잔불이 꺼지지 않도록 하고 허리를 졸라매고 항상 준비하십시오. 우리는 주님께서 오실 시간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자주 전력을 다하여 영혼을 구하는데 합당한 일을 찾으십시오. 왜냐하면 마지막 시간에 가서 완전한 자가 되지 못하면 전 생애를 통한 여러분의 믿음은 여러분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최후의 날이 오면 거짓 예언자와 부정한 자들은 늘어날 것이며, 양떼는 늑대의 무리로 사랑은 증오로 변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정한 행위가 늘어남으로써 인간은 서로 증오하고 박해하며 배반할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을 속이는 사기꾼이 하나님의 아들로 보일 것이며 징표를 보이고 기적을 행할 것입니다.
세상은 그의 손에 넘어갈 것이고 그는 유사 이래 가장 부당한 짓을 행할 것입니다. 그런 다음 인간의 심판은 열화 같은 시련이 될 것이고, 죄를 범하고 멸망하는 이가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확고부동한 이들은 저주의 힘으로부터 구원받을 것입니다.”
 


셋째,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영성은 금욕적이었다.
금욕적이란 말은 개신교에서는 복음주의와 대치되는 입장으로 배척당해 온 말이다. 그래서 500여년의 개신교 역사 속에 수도원이 자리 잡지 못한 것이 그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초기 그리스도교의 영성은 금욕적이었고, 이는 초대교회뿐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요구되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금욕생활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사랑실천과 영적성장의 목적을 위해서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으며(갈5:24), 자기를 쳐 그리스도께 복종시키는(고전9:25-27) 엄격과 극기의 행동이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금욕적 영성은 그리스도 중심적 및 종말론적 국면의 논리적 결과였다. 그리스도를 따르고 사랑하기 위해서는 세상과 그리스도를 겸하여 사랑할 수 없기 때문에 세상을 멀리해야 했다(요일2:15-17). 또한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서 자기를 부인해야(마16:24)만 했던 것이다. 그래야 그리스도께 순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