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세요
“미디어 시대”라는 주제로 청년수련회에서 강의한 K목사님을 통해 복음의 열정을 점검하고 도전받게 되었다. 성전이 비좁게 느껴질 정도로 이곳저곳을 누비며 열강을 하시는 모습이 압도적이었다. 2시간가량 마이크도 사용하지 않은 채 진행되었는데, 모두가 강의에 빠져 들어갔다.
“주의 백성들이 이 시대와 문화를 따르지 않고, 주기철 목사님과 같이 순교자의 정신으로 살아야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현대 크리스천들이 너무 움직이지 않습니다.”
주의 복음을 위해 ‘움직이세요!’라며 강력한 불꽃을 내뿜으셨다. 자신의 예명이 “예미자”(예수님께 미치자)인데, 미치면 못할 게 없다고 하셨다. 찬양 버스킹(busking, 거리 공연)을 하는 오하이오 주립대 출신 죠지 붓소의 영상도 보여주면서 편의점만큼이나 많은 한국 교회가 얼마나 움직이지 않으면 흑인 청년을 하나님께서 직접 보내겠냐는 말씀도 덧붙이셨다.
‘움직이세요!’라는 말에 눈물이 핑하고 고였다. ‘주님, 저의 게으름을 용서하소서.’ 송구스러움과 부끄러움이 동시에 밀려왔다. 누군가 나에게 복음 때문에 예수님께 제대로 미쳐 보았냐고 묻는다면 정말이지 고개를 들 수가 없다.
지난 3년간 내 모습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3년 전, 오랜 기간 해오던 어린이 사역을 뒤로하고 청소년 파트를 담당하게 되었다. 길거리, 아파트단지, 놀이터, 학교 운동장 등 어린 아이들을 찾아 열심히 움직였다. 길을 가다가도 어린이들을 만나면 붙들고 전도를 하였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다른 주어진 일도 많거니와 내 안에 청소년 전도는 미지의 영역으로 열외 시켜놓고 점점 움직이지 않았다. 간사하게도 한국의 교회학교가 점점 줄어드는 현상을 은근히 위안 삼으면서 말이다.
“나 주님의 길을 가리라 하늘의 부르심 따라서. 주 위해 살리라. 내 생명 다하여 주 복음 전하리. 나 승리하리라.” 찬양을 부르는데, 쏟아지는 눈물과 함께 다시 내 안에 잃어버린 영혼들을 찾아 나서야겠다는 불꽃이 일어났다. 먼저 출퇴근하면서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만나는 청소년들에게 전도하는 일부터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왠지 모르게 덩치 큰 남자학생들이 우르르 몰려오면 말을 붙이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다시 용기를 발하리라, 다짐해본다.
어설픈 기타 실력이지만 죠셉 붓쇼처럼 버스킹을 하며 주일 오후 전도지를 나누어주는데, 중1 박순수라는 소년을 만났다.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처음 주님을 만났을 때,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주님의 복음을 담대히 외치고 다녔던 그 열정과 순수함이 내 안에 다시 불붙기를 소망해 본다.
쌈지 돈을 아껴서 바보 청년 의사, 안수현처럼 책과 음료수 등으로 전도를 해야겠다는 마음도 생긴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주님의 잃어버린 아들, 딸들을 찾아 나서는 발걸음을 주님께서 도우시리라 믿는다. 청소년들이 좋아하는 음료수를 사는데, 기분 좋게도 두개를 사면 한 개를 더 주는 행사를 한다. 내 마음에도 용기와 기쁨이 더해지는 듯했다. 
가난하고 버림받았던 수많은 청소년들의 벗이자 아버지로 살았던 돈 보스코는 ‘나에게 영혼을 주고 다른 모든 것은 다 가져가라’는 스승 살레시오의 말을 평생 생활좌표로 간직하며 살았다. 그의 영혼에 대한 뜨거운 사랑은 길거리에서 배회하거나 노동을 하거나 교도소에 갇혀있는 소년들을 찾아 끊임없이 움직였다. 가난했고, 무한히 방치되는 시대에 거리 위의 젊은이들을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럴 수는 없습니다! 이렇게 지속될 수는 없습니다! 그냥 놔둘 수는 없습니다!”
토리노의 한 교도소를 방문하고 나서는 더 적극적으로 영혼의 구원을 위해 움직였다. “모두 건강하고 힘이 넘치는 열두 살에서 열여덟 살까지의 수많은 젊은이들이 그곳에서 하는 일 없이 벼룩에게 물어뜯기면서 영적, 물적으로 굶주려 있는 것을 보고 나는 소름이 끼쳤다. 그들이 출소 한 후에도 돌보아 주고, 교육을 시켜 주고, 주일에는 성전에 데려다 주는 친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게 한다면 또다시 감옥에 들어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먼저 어떻게 해서든지 교도소에 들어가는 일이 없도록 막아야 한다. 나는 이 젊은이들의 구원자가 되리라.”
한 번은 이발소의 견습생으로 들어온 카를로에게 보스코가 자신의 수염을 깎아 달라고 하자 주인이 다급히 제지를 하였다. 이에 자기 성(姓)의 ‘보스코’라는 말의 이중적인 의미를 가지고 농담을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괜찮습니다. 견습생이 연습을 하지 않으면 결코 배울 수 없지요. 이 아이는 ‘보스코(숲)의 수풀을 아주 잘 깎을 수 있을 겁니다.”
조반니 프란체시아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그때 돈 보스코는 바돌로메가 박해자들의 손에 고통을 당하듯이 면도날 아래에서 고통을 받았다.” 그에게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라면 자신의 희생과 고통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보스코는 그 소년이 어머니마저 잃고 집주인에게 쫓겨나자 “나하고 같이 가자, 나는 가난한 목회자지만 빵이 한 조각만 남아 있더라도 너와 함께 나누어 먹으련다.”라고 하면서 오라토리오(기도하고 노는 집)로 인도했다. 그리고는 조급해 하지 않고 오랜 기다림 끝에 어느 날 카를로에게 물었다. “카를로야, 만일 네가 오늘 저녁에 죽는다면 너의 영혼은 어디로 갈까?” 이는 요지부동하던 카르로의 고집을 꺾는 유일한 전략이었다.
1863년 2월, 밤 인사 중에 돈 보스코가 소년들에게 한 말이다. “너희가 물건을 망가뜨리고, 부수고, 장난치는 그 모든 것을 너그럽게 참아 줄 수 있다. 그러나 영혼을 망가뜨리지는 말아라.”
그는 젊은이들에게 운동을 시키고, 형제들처럼 그룹을 만들게 했으며, 그들과 함께 걸어갔고, 느꼈으며, 보았고, 울었고, 항상 그들 가까이 있었다. 사제에게 요구됐던 엄숙하고 경건함이 강조되었던 시대에, 왁자지껄 떠드는 소년들 한복판에서 같이 놀이를 하며, 친근하게 다가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스승이요 목회자로 살았다.
“젊은이들과 친하게 지내십시오. 특히 놀이 시간에 그렇게 하십시오. 친근함 없이는 사랑을 보여 주지 못합니다. 사랑을 보여 주지 못한다면 신뢰를 얻을 수 없습니다. 사랑받기를 원하는 사람은 사랑한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비천한 사람들과 함께 하시려고 비천하게 되셨으며 우리의 병고를 맡아 지고 가셨습니다. 친근함의 스승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부모의 학대를 받던 펠리체 레빌리오에게는 다음과 같은 말로 어려운 상황을 견디어 내고 희망을 가지도록 도와주었다. “어떠한 일이  있든 내가 너의 아버지가 되어 주겠다. 그러니 위험한 상황에 처하거든 도망쳐서 우리 집으로 오너라.”
그가 제자 도미니코 사비오에게 한 말이다. “거룩한 사람이 되려면 하나님께 영혼들을 구해 드리는 일을 해야 한다. 또한 영혼들에게 유익한 일에 협력하는 것이 가장 거룩한 일이다.”
돈 보스코는 시기와 반목과 거듭되는 실패가 주어져도 좌절하지 않고 끊임없이 영혼을 찾아 움직였다. 움직이지 않고서는 주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을 보지 못한다. 영혼에 대한 사랑으로 다시 내 발걸음이, 우리의 발걸음이 빨라졌으면 좋겠다. 우는 사자와 같이 덤벼드는 마귀로부터 우리의 젊은이들을 구원해 내야 한다. 더 이상 지체해서는 안 된다. 주님의 나라가 곧 임하리라. 더 늦기 전에 주님을 따라 복음의 깃발을 높이 들자. 내 생명 다하여 주의 복음 전하며, 주님이 오실 길을 예비하자.


이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