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어떤 율법사가 일어나 예수를 실험하여 가로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이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대답하여 가로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눅10:25-28).
주님은 말씀하신다.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도 정작 내 자아를 죽이고 순종하는 데는 머뭇거린다. 믿음과 사랑과 행함은 별개인양 살아간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다. ‘나’라는 자아가 여전히 살아 있음에도 스스로 꽤 괜찮은 사람인 줄 착각하며 살고 있다. 눈에 보기 좋은 것이 좋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싶고, 만나고 싶은 사람만 만나고 싶다. 유익도 없는 힘든 일은 더더욱 싫다.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십자가를 묵묵히 따르는 좁은 길보다는 내 맘대로 시원하게 달리기 좋은 자유로가 더 좋다.
올 여름, 섬기는 교회가 이전을 하게 되었다. 직장으로 인해 교회에 아무런 도움도 못되니 안타까운 마음에 이전을 며칠 앞두고, 아이스크림을 들고 현장에 들렀다. 미안한 마음으로 들어서는데, 마침 목양실 작업 때문에 페인트 통을 나르시던 전도사님 한 분이 보였다. 곧이어 한 형제와 돋보기를 쓰고 섬세히 작업 중이신 또 한 분의 전도사님이 들어오셨다. 순간 아이스크림을 든 손이 부끄러워졌다. 이리도 햇살이 따가운 날,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이렇게 땀을 흘리며 애쓰고 계셨구나.’라는 생각을 하자, 예수님의 눈길이 느껴졌다.
대가도 바라지 않고 사랑으로 순종하시는 분들의 모습은 세상에서 여전히 인정받고 싶어서 할 말 또박또박 다 하고 행동하는 얄팍하고 비루한 내 모습과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과연 나는 언제쯤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고통이 내 기쁨이 되고, 말없이 온전히 순종하는 삶을 살게 될지 돌아보게 되었다.
얼마 전, 직장에서 사장님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혜승씨는 어디 가서 절대 고스톱은 해서는 안 되겠어요.” 농담조였지만, 그 속에 뼈가 담겨 있었다. 싫고 좋음이 분명한 나 자신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순간을 모면하려 애써 웃으며 답변을 했다.
“아, 네. 맞아요.” 인정은 했지만 부끄럽고 창피한 맘이 들었다. 신학원생이고 전도사이건만, 여러 상황 속에서 사람들로 인해 힘들고 싫은 말을 들으면 내 주장과 고집이 불쑥불쑥 고개를 치켜든다. 그렇게 울며불며 “골고다 십자가 예수님의 뜨거운 심장을 갖게 해주세요.”라고 한 간절함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깡그리 잊어버리고 만다.
영국의 시인, G. 맥도날드(Mcdonald)의 “순종은 모든 문의 열쇠이다”에 나오는 글이다. “순종은 주님께 나아가는 것이고, 주님의 말씀을 청종하는 것이며,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것입니다. 순종은 하나님과 동행하며, 주님을 사랑하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순종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행위를 하는 것을 말하며, 순종의 기준은 예수 그리스도요, 성경입니다. 나는 나의 길을 온전히 주께 맡기는가? 자기 고집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줄 아는 넓은 마음을 갖는 자가 참으로 훌륭한 인격자입니다.”
순간순간 삶속에서 내가 없어지고 순종할 때만이 거룩하신 예수님의 빛이 드러난다. 나의 고집을 내려놓고 주님의 말씀을 겸손히 청종할 때 주님이 내 안에 살아 역사하신다. 또한 그로 말미암아 무심코 지나칠 이웃을 살리기도 한다. 여전히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거룩하신 예수님의 보혈에 의지하여 이 순간에도 다시 기도를 드려본다.
“하나님 아버지, 간절히 원하오니 이 죄인을 도와주소서. 주 십자가에 달리셔서 저를 자유하게 했으니 제 몸과 맘을 주 위해 다 쓰게 하소서. 또한 주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넓은 마음과 인격을 지닐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