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돌 마을과 파란 하늘
부안에서 변산반도 남쪽 항구 곰소로 가다보면 한적한 시골길을 만난다. 가로수 그늘이 터널을 만드는 이 시원한 길에선 차들도 한결 여유로워진다. 하지만 들어선지 얼마 안 되어 나타나는 의아한 풍경에 사람들의 시선은 고정된다. 왼편에 정겹게 보이는 자그마한 마을이 있고, 그 뒤로 병풍같이 두른 암벽산이 서 있다. 그곳이 바로 산돌 마을이다.
지표층 밑 전체가 다 암석이기에 오래 전부터 채석을 하며 살아온 삶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작은 마을이다. 울창하던 산이 깎여 허물어져가고 있는 모습은 마치 어느 날 교만과 아집이 심하게 발동하여 그동안 지켜왔던 인격이 무참하게 깎여버린 상처투성이의 자신을 보는 것 같지만, 묘한 것은 흉물스런 산을 덮고 있는 숲과 그 위로 맑게 드리운 파란 하늘의 조화이다. 그간의 모든 것을 다 알고도 묵묵히 품고 있는 것이다. 또 깎이고 또 패였지만 여전히 그 산과 숲과 마을을 다 안고 있는 하늘은 파란 사랑이다.
그리고 더욱 은혜로운 것은 아름다운 전원마을의 터전은 다른 것이 아닌 산돌이라는 사실이다. 마을 사람들은 이 채석장에서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왔고, 앞으로도 이는 계속되리라. 산이 다 깎이기까지.
성경에는 구주 예수님에 대해 돌로 표현한 부분들이 여럿 나온다. 흰 돌, 모퉁이 돌, 반석, 버린 돌 등이다. 그런데 베드로 사도는 특별한 기록을 하였다. 그것이 바로 산 돌이다.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찌니라”(벧전2:4-5).
산돌 마을의 이름은 산이 다 돌이라는 의미겠지만, 그 산돌이 기반이 되고 그 위에 살아간다는 사실은 참으로 은혜롭다. 사람들의 욕심이 산돌을 깨고 깎아 상처가 가득한 것도 은혜이고 그것을 다 알면서도 포근히 덮고 있는 파란 하늘은 더욱 은혜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탐욕과 죄악으로 인해 가시에 찔리고 못에 박혀 죽으셨으니, 우리 죄인들을 위한 고통이요 희생이셨다. 그 산 돌 위에 집을 짓고 사는 이들이 우리요, 종종 욕심과 죄에 빠져 주님을 또다시 깎아내는 비참함이 있어도 여전히 주님은 산 돌이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계획하고 완성의 날까지 품어가는 하나님의 한없는 사랑은 푸르다.
울컥 목이 메인다. 길 잃은 나그네가 갑자기 나타난 이정표를 발견한 기쁨처럼 살아온 이유를 갑자기 깨닫는 감동이 인다. 사람들에게 기꺼이 버린바 되어 산 돌이 되신 예수님 위에 사는 이들…. 자신으로 인해, 타인으로 인해 수많은 상처를 주고받았으나 여전히 ‘예수님, 주님이 아니시면 저는 살 이유도 힘도 없나이다. 저를 긍휼히 여기사 그래도 산 돌이신 주님 안에 살게 하소서.’ 기도하며 그곳을 떠나지 않는 이들에겐 어느덧 청명한 파란 하늘이 드리워진다. 아무 것도 묻지 않으신다. 다만 ‘네가 저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이미 답을 아는 질문을 하신다.
파란 하늘이 드리운 산돌 마을은 최소한의 붓질로 그린 맑은 한 폭의 수채화 같다.

박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