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보는 이 없을 때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고 기도원은 문을 닫고 있는 이때에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력한 부흥을 경험하고 있는 곳이 있다. 인천광역시 서구에 위치한 마가의다락방 기도원이다. 이곳에 사람들이 모여드는 이유는 담임을 맡고 계신 박보영 목사의 삶 때문이다.

어떤 기회로 마가의다락방 기도원을 찾았고, 박 목사님을 만나게 되었다. 함께 동행한 분이, 나를 가리키며 명문대학원을 포기하고 수도사의 길을 가고 있다고 민망한 소개를 해주셨다. 목사님은 진지하고 간절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시며 입을 여셨다.

자매님이 무엇을 버렸는지는 이제 중요하지 않습니다. 자매님의 마음에 계신 예수님, 그분 앞에 자매님이 어떤 중심을 가지고 살아가는지가 중요합니다. 겉모습은 거룩한 수도복을 입고 있지만 마음이 주님을 향해 있지 않다면 그것처럼 불쌍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리고는 다음의 이야기를 해주셨다. 아는 지인이 한 수도원에 방문했는데, 영성이 뛰어나기로 유명한 수도원이었다. 미용봉사를 하기 위해 간 지인은 수도사들의 머리를 깎아주었다. 그런데 수도사들이 머리가 마음에 안 들었던 모양인지 갑자기 온갖 불평과 불만을 표현하며 성질을 내기 시작했다. 거룩한 수도사들의 향기를 맡고자 갔지만 괴팍한 늙은이들의 모습만 보고 돌아왔다. 많은 사람들이 보는 곳에서는 거룩한 삶을 살지만 아무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는 함부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씁쓸한 마음을 가눌 길 없었다는 지인의 경험담을 들려주시며 내 눈을 다시 쳐다보셨다.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곳에서도 자매님은 수도사이신가요? 언제 어떤 곳에서나 중심을 하나님 앞에 드리고 계신가요? 가장 낮은 곳에서 말없이 섬기는 수도사가 되세요. 그렇게 훈련받는 자들을 하나님이 크게 쓰십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마치 예수님을 뵌 것 같았다. 사택을 나왔는데도 충격과 감동이 떠나지 않았다. 현재 나에게 가장 필요한 영적 조언을 들려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차에 타려고 보니 이곳저곳에 주차위원으로 서 계신 분들이 보였다. 기록적인 더위를 기록했던 올 여름, 땀을 뻘뻘 흘리며 봉사하시는 분들은 다름 아닌 마가의다락방 강단에서 서셨던 목사님들이었다. 셔틀차량 문을 열어놓고 한 분 한 분 성도들을 탑승시키며 인사하는 목사님의 모습은 강단 위의 설교보다 훨씬 강력한 외침이 되어 울려 퍼지고 있었다. 마지막까지 겸손히 허리를 굽히며 인사하는 주차봉사자의 인사를 받으며 기도원을 나오는데 한 푯말이 눈에 들어왔다.

사랑할 수 없는 것을 사랑하라.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라. 변명하지 말라. 가장 낮은 곳에서 섬겨라.”

돌아오는 길에 이전에 들었던 박 목사님의 간증이 떠올랐다. 의사로서 세상의 부귀와 영화를 누릴 수 있었지만 하나님과 만남을 경험한 뒤 전 재산 수십 억 원을 모두 가난한 이에게 나눠주고 하나님의 종의 길을 선택했다. 작은 개척교회에서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비행청소년, 노숙자들과 함께 살며 사랑할 수 없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도록 철저히 훈련했던 시간이었다.

이제 수많은 성도들과 목회자들의 존경을 받으며 편안한 목회생활을 할 수 있지만, 하나님 앞에 늘 용서받은 죄인의 자리에서 가장 낮은 자로 섬기기 위해 오지 선교사의 길을 가고자 하시는 빛된 삶 앞에 구석구석 숨겨졌던 내 어두움이 드러났다.

수도자의 삶을 선망하는 사람들 앞에 우쭐한 마음으로 수도복을 가다듬기도 했다. 혼자 있을 땐 인터넷으로 세상을 방황한 적도 많았다. 담당 청소구역은 늘 우선순위에서 꼴찌로 여겨 사람들의 비난을 겨우 면하는 정도로 만족했다. 아무도 보는 이 없을 때 나는 수도사가 아니라 가장 부끄러운 죄인의 모습이었다.

청년수련회에 앞서 성전을 청소할 기회를 갖게 되었는데, 형제자매들과 함께 열심히 바닥을 쓸고 닦으며 마음에 기쁨이 차올랐다. 평소 가장 소홀히 여겨왔던 청소의 자리, 섬김의 자리야말로 내가 꼭 지켜야 할 자리이며 나를 살려주는 자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열심히 걸레질을 하며 어느 때보다도 더욱 간절한 기도를 드렸다.

아무도 보는 이 없을 때에 수도사이기를 원합니다. 아니, 저는 주님의 긍휼이 필요한 죄인일 뿐입니다. 언제나 가장 낮은 자리에서 섬기며 무익한 종이라 고백하는 제가 되기를 원합니다.”

박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