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몇 년 만에 다시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IN HIS STEPS, 찰스 쉘던)라는 책을 읽었다. 말 그대로 예수님이 모든 문제의 답이라는 주제의 이야기다.

배경은 미국의 작은 철도도시 교회다. 담임 목사님은 존경과 신뢰를 받으며 안락한 생활을 하다가, 인쇄 노동자의 죽음에 충격을 받아 그것을 계기로 성도들과 1년 동안 예수님의 뜻을 따르는, 즉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을 제안한다. 그 후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르게 되자 강력하고도 놀라운 성령에 힘입은 역사가 시작되고 대도시 시카고까지 확산된다. 그리하여 교회를 빙자하여 안일무사하게 살아가던 성직자들과 교인들의 생활에 일대 경종과 개혁의 선풍이 일어난다.

책이 출판된 1800년대 막바지는, 세계사적으로는 경제적 풍요와 기독교사적으로는 놀라운 부흥의 역사가 일어났던 때이다. 저자인 찰스 쉘던 목사님은 그러한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기독교 문명권의 많은 사람들이 명목상의 그리스도인으로서 아무런 변화 없이 사는 데에 안타까움을 느껴 그리스도인으로서 도덕적, 윤리적 결정을 해야 할 때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말하고 있다. 즉 타락한 기독교 정신에 과감하게 도전하는 참다운 기독교 정신 구현을 전하고자 하였다.

몇 년 만에 다시 읽은 지금, 신앙이 성장했다고 믿고 싶고 책의 감동은 그대로인데, 여전히 나는 예수님 앞에서 고민하고 있다. ‘나의 가장 소중한 것을 과감하게 드릴 수 있을까.’ ‘고통 없는 고난자.’라는 목차가 눈에 들어온다. 고통 없는 고난자라니. 순간 큰 충격과 동시에 머릿속에 경종이 울렸다. 지금 현재 나의 마음과 생각의 중심이 어디에 놓여있는가.

나는 지금 무엇을 왜, 누구를 위하여 하고 있는가?” “예수님의 고통에 순수와 정직, 진실로 동참하고 있나?”

최근 나는 일과 학업, 아르바이트 등 여러 상황으로 인해 지쳐가고 있었다. 고난과 연단이라 생각하며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면서도 진정으로 예수님으로 인해 즐거워하지도 않았다. 또한 주변의 감사한 배려에 기대어 당연시하고 응석부리고 싶은 안일함으로 인해 안주하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나를 휘감고 있었다. 예수님을 핑계 삼아 누리려는, 껍데기만 충실해 보이는 교만하고 아집적인 무서운 내가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보상받으려는 욕구에 충만한 나 자신도 보였다. 고난의 십자가는 어느새 뒤로한 채 사랑의 십자가만 바라보는 허망한 착각에 눈이 가려진 나였다. 하나님 앞에서 처음 드렸던 마음은 시절을 핑계 삼아 자기합리화, 자기사랑, 자기만족으로 퇴색된 채 위선적인 내가 서 있었다. 삶의 주인이신 주님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은 어디로 간 것일까.

나는 자기로 충만한 채, ‘예수님처럼놀이에 빠져 있었다. 그 착각에서 벗어나려면 진정한 진리이신 주님께 눈을 열어야 한다. 나의 착각에서 벗어나 진실로 예수님을 본받고 뜻을 좇고자 한다면 날마다 십자가 앞으로 정직하게 나아가, 동기와 행실을 빛 앞에 드러내야 한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본분이자 사명인 예수님의 십자가를 살아있는 신앙인으로 짊어져야 한다. 그리고 처음의 올바른 동기와 정직과 진실을 다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롭게 해야 한다.

책의 마지막 장에 이런 구절이 있다. “이윽고 예수님은 길고 긴 여로(旅路)의 끝에 서 계셨다.” 위로와 기쁨의 의미가 있지만 달리 보면 두려움도 있다. 과연 나는 어떤 모습으로 이 광야의 끝에서 예수님을 만날 것인가.

나의 주님이시여!” 나지막이 예수님을 불러본다. 이런 뒤뚱거림에도 불구하고 인내와 사랑으로 응원해주시는 예수님만을 끝까지 믿고 의지하여 나그네로서의 나를 다시 찾아야 한다. 그 여정에 오직 예수님 한 분 만으로 만족하길 소망한다. 오늘 한걸음 더 십자가의 예수님과 함께 나아감을 믿으며 기쁨으로 노래한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삶의 지표가 예수님이고, 모든 중심이 예수님이라서 참 좋다.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셨느니라”(벧전2:21).

김혜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