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자리에서

대학시절 5년간 한 선교단체에서 성경공부를 했었다. 매주 마다 한 번씩 성경공부를 배운지 1년 뒤, 나도 후배들을 전도해서 성경공부를 가르치게 되었다. 아버지는 개척교회의 담임목사님이셨기에 집에 가면 교회를 섬겨야 했고, 학교에 가면 공부에, 악기연습에, 아르바이트에, 성경공부를 배우고 가르치는 일까지 쉴 틈이 없는 학창시절을 보내야 했다. 또한 교회와 함께 섬기기 때문에 선교단체에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때때로 나를 힘들게 했다. ‘교회만 섬겨도 되는 것이 아닌가? 왜 선교단체까지 해서 고된 훈련을 받아야 하는가?’란 질문이 올라올 때마다 내게 성경공부를 가르쳐 준 선배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하영자매님을 크게 쓰실 거예요.” 힘들고 지칠 때마다 그 선배님이 해주셨던 말씀은 내 귀에 맴돌았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께서 나를 크게 쓰시려고 고되게 훈련하시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어려운 시간들을 견뎌내었다. 그리고 내 나름대로 크게 쓰실 구체적인 그림을 그려보았다. 장차 교수가 되어 학생들을 영육 간에 섬기는 하나님의 사람은 생각 만해도 근사했다. 그러나 내 생각과 다르신,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높으신 하나님의 생각과 길은 거기에 있지 않았다(55:8,9).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빛을 밝게 조명하는 진리로 인도하시어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게 하셨다.

“끝자리는 사람들이 가장 원하지 않는 자리이면서, 동시에 예수님이 가장 확실하게 찾을 수 있는 곳입니다. 작은 자가 됩시다. 아주 작은 자, 너무나 작아서 온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밟을 수 있도록, 또한 밟히는 아픔을 드러내지 않을 만큼 그렇게 작아집시다. 꼭꼭 숨어 있어서 누구도 그 사람을 생각해낼 수 없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입니까! 그와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조차도 그 사람이 있는 줄 모르게…. 모래알은 굴욕당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굴욕 당한다는 것은 이미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래알은 너무나 하찮아서 사람들은 그것에 상관하지 않습니다. 모래알은 한 가지만을 바랍니다. 잊혀지는 것, 아무 쓸모없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 그리고 예수님만이 보시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크게 쓰실 것이라는 소망가운데 견뎌왔던 그 시간들. 마치 요셉이 노예에서 총리가 되듯, 다니엘이 사자굴속에서 나와서 총리가 되듯 나의 인생도 그렇게 될 것이라는 믿음가운데 지나온 시간들이 소화 데레사의 고백 앞에 너무나 초라하게 느껴졌다. 분명 믿음은 믿음인데, 소망은 소망인데 굴욕당하는 것도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기에 밟혀지는 아픔조차 드러내지 않는 모래알이 되고 싶다는 소망에 비하면 너무나 천박한 소망이었다. 가장 작은 자의 자리가 종의 형체를 가지셨던 예수님과 가장 가까이 있는 자리라고 믿는 그 믿음에 비하면 너무나 세속적인 믿음이었다. 끝자리에서 오직 예수님만을 바라보겠다는 이 진리 앞에서 비로소 크게 쓰임 받고자 하는 소망이 허영심에 뒤덮인 야망이었다는 것이 밝혀지게 되었다.

한 분의 말씀을 들어보자.

“제가 바라던 대로 성공하여 부귀와 영화를 누리고 건강을 누리면서 사람들이 부러워할만한 큰 성공을 거두었다고 생각하면 아찔하지요. 오늘날 느끼는 이 행복, 이 가치관을 생각하면 수천 배 이상 큰 복을 받았다고 저는 조금도 거리낌 없이,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얘기할 수 있어요. 이렇게 병중에 있지만 하나님께 감사해요.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한날 한날이 얼마나 귀중한데요. 사람들이 크게 알아주는 넓은 길, 수천수만 명 모아놓고 있는 힘을 다해 외쳐서 모든 사람을 울고 웃게 만들면서 행복하게 해주는 길은 아니라 할지라도 언제든지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이거든요. 지금 기독교인들 중에도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그런 것을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도 뭔가 소망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들을 분석해보면 ‘앞으로 큰 일을 할 것이다.’ 이 욕망으로 열심히 살고 있는 것이지 현실 속에서 순수하게 성령의 열매맺는 생활은 그렇게 많지 않더라는 거예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긍정적인 마음으로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며 살 때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거든요. 고통 중에 있다 할지라도 늘 인내와 절제와 충성과 사랑의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거기에 행복이 있는 거예요. 참된 보람과 행복은 날마다 성령의 열매를 맺는데 있다는 것입니다.

참된 보람과 행복은 날마다 성령의 열매를 맺는 데 있다는 그 분의 말씀 속에 다시 한 번 인생의 방향을 잡아본다.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다고 세속적인 야망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욕망을 감춘 종교적 열심은 회칠한 무덤과 같다. 오늘 하루, 지금 이 순간 성령께서 원하시는 열매를 맺으며 하늘나라에서 누릴 영원한 행복을 준비하는 것만이 하나님보시기에 가장 순수하고 값진 인생을 사는 길이리라!  끝자리에서 겸손과 인내와 충성의 열매를 맺으며 가장 값진 인생을 살아보리라 다짐해본다.

박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