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잣대는 나에게만

아프리카에서 17년 동안 사역하신 선교사님께서 뜻밖의 고백을 하셨는데 눈시울이 젖었다. “저는 이 자리에 설 수 없는 죄인입니다. 제가 17년 동안 선교하면서 느낀 것이 있다면 저는 그들을 온전히 사랑하지 못한 죄인이며, 문둥병자처럼 손이 오그라들어 제 것을 나누지 못하는 속 좁은 죄인이었음을 깨달은 것뿐입니다.”

척박하고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 사랑과 섬김의 삶을 사셨으면서도 죄인임을 고백하시는 겸손의 빛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사순절 특별 철야기도회에 참석하여 회개기도를 하는 가운데 갑자기 기억 속에서 잊히고 있던 두 얼굴이 스쳐지나간다. 한때 함께 동고동락하며 가깝게 지내던 사이였지만 지금은 다시 만날 기약이 없는 두 자매의 얼굴이었다. 하나님께서 왜 그분들을 떠올리게 하셨을까. 묵상 중에 그분들과의 관계에 아직 해결되지 않은 죄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의 기준과 잣대로 동료를 함부로 판단하고 정죄했던 것이 온전한 사랑을 실천하지 못하게 했고, 그로 인해 그분들과 하나님께 큰 죄를 범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그때와 비슷한 상황을 만들어 가심으로써 아직 해결되지 못한 죄가 있음을 알려주고자 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신앙의 길을 달려갈 때 부지런함과 열심 내지 못하는 것도 큰 걸림돌이 되지만, 더 무서운 것은 자신만이 옳다는 사고방식이다. 바로 예수님께서 그토록 경계하셨던 바리새인적인 기질이다. 자신한테는 쉬운 기준을 적용하여 점수를 후하게 주면서도, 동료한테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어 자신도 행하지 못하는 것을 요구하며 그 요구에 도달하지 못할 때 정죄하는 무서운 마음이다. 비록 겉으로는 겸손한 척했을지라도 하나님은 깊은 내면을 감찰하시는 분이시므로, 바리새인과 같은 눈으로 사람들을 바라보았던 교만의 죄를 찾아내셨다.

내면 깊이 숨겨진 죄는 쉽사리 찾기가 어려운데, 독일 마리아자매회의 설립자인 바실레아 쉬링크는 이에 대해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삶의 척도의 기준으로 삼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주님은 분명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다. 또한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으며 속옷을 벗어달라면 겉옷까지 벗어주라.”고 말씀하셨다. 또한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말씀을 삶의 기준으로 삼지 않았다. 어느 부분에서는 다른 사람보다 좀 낫다는 식의 사고방식에 젖어 몇 가지 일에만 매달린 채 안이한 신앙생활에 집착하고 있었다. 우습게도 자신에게는 형편에 맞추어 하나님의 말씀을 적당히 해석하고 적용하면서도, 남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읊으며 그렇게 살기를 요구했다.

바실레아 쉬링크는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며 자신을 낫게 여기는 것이 하나님의 징계를 불러일으키는 죄이며, 회개하지 않고는 그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음을 수없이 경험적으로 고백한다.

한번은 성전을 지을 때 자매들은 모래가 가득 찬 궤도차를 밀고 다녔다.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자매들 모두가 힘이 약했기 때문에 이 궤도차가 궤도를 벗어나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 가운데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궤도차가 그만 여섯 번이나 탈선하고 말았다. 참새 한 마리가 땅에 떨어지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있을 수 없다는데 이게 우연한 일일 것인가? 모든 사건이 무언가 우리에게 교훈하는 것을 내포하고 있지 않을까? 온갖 고통이 만사를 지배하고 또 만사를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고자 하시는 사랑하는 아버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어떠한 말이 아닐까? 이 일에 책임을 맡고 있는 자매가 모두를 기도 천막으로 불러 모아 놓고 왜 우리들의 작업이 헛수고로 돌아가고 마는가 하는 이유를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그러자 자매들은 바로 그날 아침 서로를 판단하는 마음이 있었다는 것을 고백하였다. 이것 때문에 그들은 작업을 엉망으로 진행하다가 그만 궤도차를 탈선시키곤 하였던 것이다. 이에 자매들은 자백하고 서로 화해하였다. 그러고 나서부터는 궤도차가 다시는 탈선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삶의 척도로 삼고 철저히 회개하지 않을 때 마귀는 이웃의 연약함을 참소하며 사랑의 관계성을 끊어버린다. 그러기에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에 비추어 내가 용서해주지 않은 내 형제, 내 자신보다도 더 낫게 여기지 않은 내 형제, 한결 같은 사랑으로 아껴주지 않은 내 형제를 얼마나 아프게 하고 있는가를 반성해보아야 하겠다.

유독 나에게는 높은 점수를 주었던 값싼 잣대를 이제 미련 없이 버려야겠다. 이제는 하나님 말씀의 잣대 앞에 생활 구석구석을 재보아야겠다. 그리고 애통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과 사람 앞에 죄를 자백하며 용서를 구해야 하겠다. 진정한 회개만이 하늘나라를 이 지상에 가져올 수 있음이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박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