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의 좋고 나쁨

선교사에게 익숙함이란 좋기는 하지만 경계해야 할 단어이다. 오래전 이곳의 열악한 환경에 적응이 안 돼서 힘들 때 이야기다. 더운 날씨에 시장에서 돼지고기와 소고기를 파는데 냉장고도 없었다. 흙먼지 자욱한 길 앞에 고기를 걸어놓았는데 파리 떼가 달라붙은 혐오스러운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또 시골 교회 주변에 보면 연못을 파고 그 안에 간이 화장실을 설치하여 인분을 먹여 물고기를 양식한다. 그래서 아내가 장을 봐서 음식을 해 주어도 그런 모습이 생각나면서 비위가 상해 먹지 못하였다. 그러나 요즘은 어디서 샀는지 묻지 않고 음식을 먹는다. 익숙해져 있는 나 자신을 보게 된다.

한번은 프놈펜 우리 교회에 출석했던 청년커플이 시골의 신부 집에서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다. 집 앞에 쳐놓은 천막 식장에서 현지인과 둘러앉아 음식을 먹는데 같은 자리에 앉은 이들이 프놈펜에서 병원을 하는 원장과 간호사들이었다. 결혼하는 신랑이 근무하는 병원에서 하객으로 온 것이었다. 음료수를 컵에 따라서 먹으려는 순간 그중 한 간호사가 컵을 사용하지 말고 빨대를 음료수 캔에 직접 넣고 먹으라고 충고해주었다. 컵에 균이 많이 묻어 있다고 일러 주었다. 물론 나도 모르는 바는 아니다.

도로 위에서 치러지는 이곳 결혼식 음식에 사용되는 용기에는 대장균과 각종 세균들이 묻어 있다. 외국인인 우리를 배려하여 그렇게 말 해주는 그들을 향하여 여유 있는 미소를 지어 보이며 우리는 이미 익숙해졌다고 했더니 의외라는 듯 웃었다.

그러나 가끔 외국인으로서 이해가 되지 않는 문화적 풍습에 부닥칠 때는 황당하기도 하지만 피곤하고 우울하기도 하다. 새로 이사 온 이웃집이 한 주일이 멀게 시도 때도 없이 친구들을 불러서 술파티를 한다. 중고 가라오케 노래 앰프를 크게 틀어놓고 동네가 울리도록 초저녁부터 한 밤중까지 노래를 불러 댄다. 정말 이해하기 힘든 것은 이웃에게 그렇게 큰 피해를 주는 몰상식한 행위를 전혀 개의치 않고 반복적으로 한다는 것이다. 또 이웃들도 가서 제재하며 조용하게 해줄 것을 절대로 말하지 않는다.

한번은 너무 답답해서 다른 옆집 사람에게 당신들은 지금 저렇게 동네를 시끄럽게 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힘들지 않느냐, 왜 조용히 해 달라고 말하지 않느냐?”고 물어 보았다. 대답은 자신들도 힘들지만 만약 말을 하면 이웃 간에 다툼이 생기고 폭력으로 이어 질수도 있기 때문에 말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나라 사람들에게는 참견하지 않는 문화가 있다. 철저히 개인주의와 이기주의인데, 이것은 캄보디아 사회가 발전할 수 없는 치명적 요인이기도 하다.

한번은 시골 사역지에서 주일 예배시간에 갑자기 옆집 사람이 교회 마당으로 탈곡을 하는 차량을 끌고 들어오더니 요란하게 텅텅 거리며 탈곡작업을 하였다. 교회예배시간 인줄 알면서도 사전에 어떤 양해를 구하는 말도 없었다. 그 소리가 얼마나 크고 시끄러운지 찬송을 불러도 소리가 들리지 않을 만큼 방해를 했다. 안 되겠다 싶어 밖으로 나가 지금 예배중이니 약 30분만 작업을 멈추어 달라고 하였다. 두 번이나 거듭 요청을 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작업을 했다. 시간당 그 탈곡기 대여료를 내야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교회 안에 앉아 있는 그 누구도 나와서 그 행동을 제지하지 않았다. 앉아있는 교인들은 그에게 장모요, 이모, 삼촌이고 동네 어른들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차안에서 아내와 그날의 일로 대화를 나누었다. 옳지 못한 일에 대해서 당당히 의견을 표출하지 못하고 담대하지 못한 것, 매사에 소극적이며 수동적이고 이웃을 배려하지 않는 이들의 습성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날은 갑자기 부정적인 생각이 엄습해 오면서 혹시라도 우리의 모든 수고와 이들을 향한 물심양면의 투자가 마치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격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런 일들도 선교사가 익숙해 져야 될 하나의 문화적 충격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선교사에게 있어 익숙해진다 함은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은 중요하나 환경에 익숙해진 이후에 여유가 생기면 긴장이 무너진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무뎌지고 타성에 젖는다. 처음에는 너무나 색다르고 이해가 안 되는 이들의 관습과 환경에 익숙하지 못하여 그것들에 적응하고 그 충격을 극복하기 위하여 긴장을 하며 기도했다. 이제 어느 정도 익숙해져서 이곳도 살만한 곳이라고 여겨지니 처음 가졌던 비장한 각오가 점점 무뎌져 감을 느낀다.

더 큰 문제는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마음, 하나님을 사랑하고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약해지는 것이다. 그러기에 무엇보다 기도하지 않을 수 없다.

주님, 캄보디아 환경이 익숙해짐으로써 영적으로 무뎌지지 않게 하시고, 더 간절히 이 나라 이 민족을 사랑하면서 진리를 전하게 하옵소서.”

박이삭 선교사(캄보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