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이는 꿈

봄에 이는 아지랑이는 꿈과 같다. 그 너머로 보는 풍경들이 아스라하기 때문이다. 꿈은 아직 현실이 아니기에 아스라하다. 그래서 꿈은 더 봄과 같다.

봄이 꿈과 같은 것은 아지랑이뿐이 아니다. 아직은 삭막한 뒷산을 배경으로 피어난 창가의 수선화도 꿈과 같다. 현실은 삭막하나 하늘빛을 받아 피어나기 때문이다. 모든 선한 꿈은 하늘로부터 온다. 노란 수선화의 작은 꽃은 그러기에 꿈의 전령사이다.

이 봄에 나는 더 맑고 싶은 꿈이 있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꿈, 아무도 거절하지 않는 꿈을 꾼다. 주님이 가자하시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가고, 머물자 하시면 싫으나 좋으나 머무는 것, 유다의 역겨운 입술에 뺨을 맡기시듯 고개를 돌리고픈 사람을 묵묵히 맞이하는 아스라한 꿈을 꾼다.

다른 또 하나의 꿈은 구레네 시몬이다. 악인들의 선택이었지만, 덕분에 고난당하시는 예수님의 바로 옆에 세워진 그의 꿈이 바로 나의 꿈이다. 나도 피땀 흘리시는 예수님의 옆에 서고 싶다. 그분의 십자가를 함께 짊어지고 싶다. 그분의 거친 숨소리를 듣고 싶고, 온갖 모욕과 멸시 중에 흘리신 긍휼의 눈물을 묻히고 싶다. 주님의 땀에 옷을 적시고, 주님의 피에 온 몸을 적시고 싶다. 다만 잠시 조금이나마 힘겨우신 주님의 힘이 되고 싶다. 아직 현실은 뒷산처럼 삭막하지만….

봄은 꿈이 이는 계절이다. 봄이 계절의 여왕이라 함은 실은 꽃보다 꿈에 있다. 꽃은 시드나 하늘로부터 온 꿈은 시들지 않기 때문이다.

수선화도 팬지도 다 앙증맞다. 봄은 이들로 인해 화사하다.

봄에 이는 꿈을 입에 넣는 이는 행복하다. 고소한 맛이 일고 상큼한 기운이 일어난다. 봄꿈을 얼굴에 부비는 이는 가슴이 두근거린다. 하늘로부터 내린 주님의 사랑이 휘감는다. 그럴 때면 두둥실 날아올라 봄바람에 어디라도 갈 수 있을 것 같다. 고통의 현장이어도, 힘겨운 시간이어도. 누구라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서운함과 야속함이 느껴지는 사람이라도, 만나기 두려운 사람이어도.

이 봄엔 무엇보다 더 주님 가까이 있고 싶다. 가장 가까웠던 구레네 시몬처럼…. 그는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그는 얼마나 큰 복을 받은 걸까… 사랑의 복은 억지로 진 십자가 속에 있나보다. 원수 사랑의 크나큰 은총은 원수 앞에 있다. 주님도 그 힘겨웠던 날 밤에 자기를 부인하셨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봄에는 아지랑이처럼, 수선화처럼 꿈이 피어오른다. 더 맑고 더 정결하고 싶은 사랑의 꿈이다. 아직은 아스라하고 배경은 삭막하지만 봄이기에, 하늘로부터 빛을 받아 가장 화사하고 아름답게 마음껏 주님 안에서 피어난다.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 꿈이, 오래 참아 피는 꿈이, 자랑하지 않고 온유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는 그 거룩한 꿈이 빛을 받아 피어난다.

박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