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을 향한 습작

초등학교 시절, 거북이 등껍질 같은 큰 가방을 메고 집으로 돌아가다가 가끔 숨을 돌리려 하늘을 올려다보곤 하였다. 작은 눈동자에 비친 솜사탕처럼 떠있던 흰 구름은 요술구름이었다. 얼굴 모양, 신발, , 나무, 토끼 등 각양각색의 구름이 참 신기했다. 어느 날은 제트기가 그리고 간 하얀 구름 선들이 참 재미있어 따라 그리곤 하였다.

어른이 된 지금은 그때처럼 구름이 마냥 재밌고 신기하지만은 않다. 각양각색의 구름처럼 변화무쌍하고 굴곡이 많은 인생의 구름을 하나하나 그리며 결국 하나의 완성된 걸작품을 완성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 책임감이 간혹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고픈 나를 짓누를 때가 있다. 무거운 책가방을 메고 집에 돌아가던 길이 멀게만 느껴졌던 어린 시절처럼, 저 본향이 멀게만 느껴진다.

그래도 내 인생에서 가장 감사한 것은 세상 속에서 멋대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나를 구원해주신 주님의 사랑이다. 그 사랑은 값없이 주어졌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값비싸고 고귀한 선물이다. 그 선물을 잘 관리하는 것은 받은 자들 각자의 몫이다.

예수님은 한 번 살다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들에게 말씀하신다.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6:33). 그러므로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고, 한 날에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다고 말씀하셨다. 썩어 없어질 것을 위해 염려하거나 매이지 말고 영원을 사모하고 준비하라는 것이다.

모든 육체 풀같이 썩어 버리고 그의 영광 꽃같이 쇠잔하리라. 모든 학문 지식도 그러하리니 인간 인생 경영이 바람잡이뿐. 우리 희망 무엔가 뜬세상 영화 분토같이 버리고 주님 따라가. 천국 낙원 영광중 평화의 생애 영원무궁 하도록 누리리로다.”

잠시 잠깐인 이 땅의 연수는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다(90:10). 설령 천만년을 천만번 보낸다 해도 영원에 비하면 한 점에 불과하다. 안개 같은 이 세상의 썩어질 것이 아닌 영원한 저 나라에 말뚝을 박고 싶다. 비록 육체는 이 땅에 살지만 진정한 가치를 어디에 두고 살아가는가. 잠시 머물 이 곳, 단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새 하늘 새 땅에 이르도록 습작을 하는 캠퍼스일 뿐이다.

빼어난 예술가들은 무수한 습작을 반복한다. 습작을 많이 하면 할수록 대작이 나올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되기 때문이다. 걸작품이 나오기까지는 남모를 눈물과 노력, 수고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아름드리나무 한 그루가 탄생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바람과 비, 가뭄과 더위를 만나야 할 것이며, 한 인생이 영원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의 곡예를 타야할 것인가? 그것은 결코 만만하지도 우습지도 않은 것이 우리의 영원에 직결되는 현실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영원한 고통으로, 어떤 이는 영원한 평강과 행복으로 대면해야 할 그때가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그 결과는 곧 내가 선택한 것이며, 이 땅에서 살아온 발자취이다. 그렇기에 감사할 수 없는 조건 속에서 감사하는 연습, 사랑할 수 없는 상대를 사랑하는 연습, 화가 날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온유한 연습, 모든 이와 화평한 연습, 내 생각을 꺾고 타인의 것을 인정하는 겸손한 연습, 슬플 때에도 웃는 연습, 내 이웃의 아픔을 함께 져주는 자비의 연습들을 열심히, 또한 수없이 해나가야 한다.

영원에 비례하면 육체를 입고 살아가는 인생의 모든 순간들은 단 1초에 불과한 것을 절실히 깨닫는다면 아직도 늦지 않았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고 오직 하늘에 쌓으라.”하신 말씀처럼 오늘 이 순간 저 영원불멸한 나라에 타버리지 않을 금은보석으로 보물을 쌓자.

영원을 사모하라. 지금 흘리는 눈물과 고통과 환난이 환희의 면류관으로 바뀔 때가 올 것이다. 인생의 습작을 수없이 반복하다가 쓰러지고 또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서 전진하자. 성령의 열매를 풍성히 맺으며 구석구석 빛의 용사로 서자. 저 영원한 나라에 생명의 빛줄기를 그려 넣을 때까지 영혼의 습작을 결코 멈추지 않으리라.

허윤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