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손

bfb5bcbac8c6b7c38.jpg지난 연말 성탄절 오후, 조카딸이 외국에서 결혼을 했다고 친척들을 초청하여 함께 예배를 드리고 식사를 하게 되었다. 어머니가 자꾸 나를 애처로운 눈길로 쳐다보시더니 내 곁으로 가까이 다가오셨다. “엄마, 왜 그러세요. 무슨 말씀하시게요?” 어머니는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말씀하셨다. “나는 이 성탄절만 되면 땅이 꺼지는 것 같어. 지금도 그때만 생각하면 땅이 꺼지는 것 같어.” “왜 너 결혼하려고 한 날, 그날도 성탄절이었잖여. 결혼한다고 그렇게 다 준비해 놓고, 일주일 앞두고 그 날벼락을 쳐! 아이고, 무심한 녀석아. 남들은 다 저렇게 결혼을 해서 잘 사는데, 부모 형제도 다 버리고 예수님을 믿어도 정도껏 믿어야지. 그렇게 미쳐가지고.” “엄마, 이렇게 좋은 날 벌써 30년 전 일이고 지나간 일인데 왜 그러세요.” “나도 말을 안 하려고 했는데 오늘이 성탄절이잖여.”

측은하게 나를 바라보시는 어머니의 손과 구부러진 등을 어루만지며 얼마나 힘들었으면 30년이 흘렀는데도 저런 말씀을 하실까 생각했다. “엄마, 이제 이거 좀 잡수세요.” 어머니는 고개를 저으신다. “내가 지금 목구멍에 밥이 들어가게 생겼어. 이제 너도 머리가 다 희고 환갑이 다 되어 가는데, 이 추위에 아직도 맨발로 다니는겨, 이 엄동설한에. 신앙생활도 다 좋은데 양말 좀 신고 다녀. 내가 우리 목사님 때문에 맘 놓고 죽고 싶어도 못 죽어. 아이고, 세상에 이게 뭐여. 이 발이 이렇게 얼어가지고.” 어머니는 내 발을 자꾸 주무르시며 음식도 드시지 않았다.

비록 앙상한 소나무 껍질처럼 거칠고 주름이 가득한 깡마른 손이었지만 오랜만에 느껴보는 어머니의 따스한 손길이었다. 추운 겨울 밤 다 터진 손등과 발에 크림을 발라주시던 손, 화롯가에 오순도순 일곱 남매를 앉혀 놓고 예수님 이야기를 해주시고 이를 잡아주시며 등을 쓱쓱 밀어주시던 손, 배가 아플 때도 기도를 하시면서 배를 쓸어주시면 언제 아팠는지 깨끗이 낫게 해주신 손, 누런 코를 훌쩍거리면 앞치마로 코를 닦아주시던 어머니의 손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인도네시아에서 30년 넘게 선교를 하시던 한 선교사의 아들이 문화적 충격과 잦은 학교 전학으로 정서적 불안을 겪으면서 어머니의 속을 썩이며 심하게 반항했다. 숱한 방황 끝에 청년이 되어서야 그 아들은 인격적으로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다. 그런데 수많은 영혼을 자신의 몸처럼 돌보며 섬기시던 어머니가 그만 위암에 걸리고 말았다. 아들은 병실 침대 곁에 꿇어 앉아 어머니의 손을 꼭 붙잡았다. “엄마, 나를 때려줘!”하며 어머니 손을 붙잡고 자기 뺨을 때리며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 몸이 쇠하고 늙은 엄마를 보면서 자신의 매끈한 손과 불효막심한 지난날의 삶이 너무 죄송하고 부끄러웠다. 자신을 묵묵히 참아주며 길러주신 어머니의 야윈 손은 그를 참회로 이끈 은혜의 손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자애롭고 부드러운 손을 가지신 분은 어머니다. 어머니의 손은 세상에서 가장 맛난 것을 만들고 행복을 주는 손이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치료의 손, 가장 큰 힘을 주는 손, 가장 바르게 교육하는 손이다. 그래서 어머니의 손은 예수님의 손을 가장 많이 닮은 손이다.

이기풍 목사님의 부인 윤함애 사모는 엄마의 손을 한 시도 놓지 않았던 막내 딸 사례에게 다음과 같은 유언의 말씀을 남기었다.

세상과 짝하지 말라. 5분 이상 예수님을 잊지 마라. 열심히 교회봉사를 하라. 주의 종은 하나님 다음 가는 분이시다. 주의 종의 가슴을 아프게 하지 마라. 목사님의 가슴을 아프게 하면 미리암과 같이 벌을 받게 될 것이다. 상대방이 네 인격을 어떠한 방법으로 무자비하게 짓밟고 천대와 멸시를 하더라도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만 바라보며 끝까지 참아라. 네가 세상을 떠난 후에 심판대에서 예수님께서 판가름해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날마다 참으며 네가 네 자신을 죽여라. 남을 용서하지 못할 때 예수님도 너를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 나를 제일 미워하는 사람을 용서할 수 있는 사람이 참 그리스도인이다. 신자의 무기는 감사와 인내와 사랑과 겸손이다. 감사는 축복을 열고 닫는 자물쇠이기 때문이다. 성령 충만하지 못하면 겸손할 수가 없다. 겸손하지 못할 때 성령님은 너를 외면하실 것이다. 제일 무서운 것은 신앙의 교만이다.”

어머니의 사랑이 신앙고백처럼 묻어나 있다. 육신적인 애정에 매여 자식을 어쩌지 못하는 어머니의 사랑도 이해하지만, 더 깊고 높은 사랑은 영적인 사랑임을 믿음의 선진들을 통해 거듭 깨닫게 된다.

주의 종의 가슴을 아프게 한 것, 마음에 안 든다고 하여 상대방의 인격을 교묘한 방법으로 짓밟고 천대와 멸시를 준 것,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만 바라보며 끝까지 참지 못한 것, 자신을 죽이지 못하고 남을 용서하지 못할 때 주님도 나를 용서하지 않으실 것을 알면서도 용서하지 못한 것, 신자의 무기는 감사와 인내와 사랑과 겸손인데 불평과 포학과 교만으로 영성의 향기를 내지 못한 것들까지, 거기에 제일 무서운 교만한 모습으로 하나님과 사람 앞에 범죄하는 것에, 저 좀 때려 달라고 울어야 하리라. 날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모든 피와 물을 다 흘리시고 죽기까지 사랑하신 예수님의 손을 꼭 붙잡고 예수님, 저 좀 때려주세요.” 못 자국난 예수님 손을 꼭 붙잡고 그 손에 입 맞추고 내 뺨을 비비며 주님, 저 좀 세게 때려주세요.” 깊은 참회의 눈물을 흘려야 하리라.

십자가를 지고 걸어가시던 예수님을 멀리서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두 손을 모으고 울며 기도하며 안타까움에 눈물 흘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어머니의 모아진 간절한 손을 보며, 마지막 남은 십자가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다.

평소 사역 중에 어머니를 대하셨던 예수님의 태도는 단호하고 냉정해 보이기까지 했다. 마가복음 331절에 따르면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예수님이 들어가 계신 집 밖에서 예수님을 불러달라고 사람을 들여보냈다. 그 말을 전해들은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했다. “누가 내 어머니이고 내 형제들이냐?” 둘러앉은 사람들을 보시면서 바로 이 사람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곧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다.”라고 하셨다(3:35).

아들이 염려되어 찾아온 어머니를 뛰어나가 맞아들이지는 못할망정 누가 내 어머니냐 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에서 영성의 향기가 보인다. 어머니에 대한 애틋함에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면서 제자 요한에게 어머니를 부탁하신 분이 예수님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계명을 우선시하며 그 안에서 어머니를 섬기고 사랑하셨던 것이다. 어머니의 진정한 사랑을 영적인 의미로 가장 잘 아시고 실천하신 분이 우리 예수님이시다. 그 사랑을 받았기에 받은 사랑대로 실천하며 사명을 감당하신 것이다.

어머니의 손은 자녀들을 위한 기도로 언제나 간절히 모아져 있다. 그 손에서 모든 자녀들이 예수님의 자녀로 태어난다. 우리도 어머니처럼 진리를 사랑해야 하고 전해야 하는 이들을 위하여, 거룩한 뜻을 품고 달려가야 하는 모든 이들을 위하여 두 손을 모으자. 그리고 주님의 손을 꼭 붙잡고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자. 피를 흘려도 매를 맞아도 방울방울 핏자국을 새기며 고난의 흔적을 남기며 걸어야 하리라.

예수님 이 손을 꼭 잡아주소서. 광야의 좁은 길 가는 몸, 마귀의 유혹을 받을 때 밝은 빛 따라서 승리하게 하소서.”

박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