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 있는 사람

어떤 사람이 지방에 살고 있는 지인에게 화초를 보내려고 우체국에 갔다. 접수를 하는데, 깨지는 물품이라 받을 수 없다고 한다. 결국 여기저기 전화해보니 역시나 받을 수 없다고 한다.

마지막 희망을 가지고 무작정 가까운 화물택배회사로 찾아갔다. 끈질기게 사정사정하여 깨져도 손해배상을 물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물건을 맡길 수 있었다. 그런데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각서와 함께 사인을 하라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얼굴을 붉히며 “전 예수님 믿는 사람이에요. 절대로 보상해 달라고 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이거 쓰지 않아도 되죠?” 당황한 직원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며 그냥 가라고 했다.

불가능한 일을 끝내 수행한 것에 대한 안도감이 드는 것도 잠시, 자신이 얼마나 무례하고 이기적으로 행동했는지 낯이 뜨거울 정도로 부끄러워졌다. 집에 가서도 종일 다른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불편한 마음을 정리하려고 하나님께 기도하는데, 다시 찾아가서 정중하게 사과하고 감사를 표하라는 마음이 강하게 일어났다.

다음날 곧바로 택배 회사로 찾아갔다. 빵을 건네면서 “어제는 경황이 없어서 미처 인사를 못 드렸는데 정말 감사했어요. 다른 곳은 받아주지 않아 난처했는데, 이곳에서 받아주셔서 천만다행으로 보낼 수 있었네요. 제가 갈 수 없는 먼 곳까지 배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리둥절해 하던 직원들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이 일을 오래 해왔지만 이런 손님은 처음이라면서 오히려 고마워했다고 한다. 사소한 이야기 같지만 잔잔한 감동이 밀려왔다.

세상에서도 그 사람이 어떤 일을 하느냐에 따라 특유의 냄새가 난다. 어시장에서 장사하는 이에게는 생선 비린 냄새가 나고, 빵 굽는 이에게는 고소한 빵 냄새가 나고, 은행에서 일하는 사람에게는 돈 냄새가 난다고 한다. 하물며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서, 예수님의 체취와 빛의 향기가 나는 것은 당연하다. 꽃도 본연의 독특한 향기를 풍기기에 꽃이요, 별도 어둠을 비추기에 별인 것이다.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말씀을 알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지키는 자라고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다.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라는 것은 지식적으로만 깨달으라고 하신 말씀이 아니요, 지극히 작은 계명이라도 실천하라고 주신 말씀이다.

큰 금액의 돈을 헌금했다거나, 단체나 사회에 지대한 공을 세웠기 때문에 천국에서 큰 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말 한마디, 행동, 생각, 마음 씀씀이 하나에서 얼마나 빛의 열매를 맺고 예수님을 닮기를 원하며 행했느냐에 따라 천국에서 영원토록 누릴 영광으로 갚아주시는 것이다.

분도 라브르 성자는 평생 수도자로 살기를 결단하고 여러 수도회에 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지나친 고행 극기와 허약한 체질 등 이런저런 이유로 받아주지 않았다. 이에 안정적인 삶을 포기하고 스스로 거지 순례자가 되기를 자청하였다. 가진 것은 고작 성경책과 몇 개의 빵, 실, 바늘 등이 전부였다. 일생을 예수님의 겸손과 가난을 닮고자 가장 천한 거지의 모습으로 살았다. 비록 몸에서는 악취가 났지만, 섬김과 사랑으로 늘 가장 낮은 자리에 처했다.

하루는 지나가던 아이들이 거지라고 놀리면서 돌을 던졌다. 복숭아뼈에서 피가 났지만 주님의 보혈을 생각하며 그 돌에 입 맞추고 아이들을 진심으로 축복했다. 또 거지들이 모닥불 주변에 서서 언 몸을 녹일 때 한 거지가 다가왔다. 추워서 떨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조용히 그 자리를 양보했다.

사망의 냄새가 들끓는 이 시대에 예수님을 닮은 향기 나는 이가 그리워진다. 비천한 자든 약한 자이든 강한 자이든 구원자이든 망하는 자이든 그들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로 살아가고 싶다(고후2:15). 비록 남들이 보기에는 초라해 보일지라도, 분노 라브르처럼 자신의 삶을 희생하며 온 생애를 불태우고 싶다. 겉모습이 아닌 내면을 가꾸어 향기로운 제물로 주님께 오롯이 바쳐지고 싶다. 곱게 간 향기로운 향처럼, 참회의 눈물로 주님의 보좌를 가득 채우며, 거룩한 빛을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에 이르기까지 천국의 순례자로 살아가고 싶다(고후2:16).

허윤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