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긴 건 화사한 꿈을 위함이다

영영 봄이 오지 않을 것 같은 혹한의 연속이다. 심지어 어느 때는 모스크바보다 추웠다. 부산은 96년만의 최저 기온으로 동사자가 나왔다. 바닷물이 얼어 양식장의 고기들도 죽었다. 사람들은 두꺼운 파카에 몸을 숨기고, 빙판길 골몰마다 동면의 차들이 즐비하다. 봄은 다시 오지 않을 것만 같다.

우리 인생에도 겨울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것도 혹독할수록 유익하다. 자신을 그럴듯하게 치장했던 풍성한 잎들이 다 떨어지는 일이 필요한 것이다. 그 일이 있기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풍성한 잎들이 자신일 줄 착각하며 살아간다. 일의 성과, 직위, 업적, 건강과 외모, 명예와 재산, 교세와 학위 등의 모든 것은 가지를 덮어 그럴듯해 보이는 잎일 뿐이다.

그런 것들이 어느 날 혹독한 겨울을 만나 마지막 남은 이파리까지 다 떨어졌을 때, 자신의 실체는 가감 없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다. 실제로 볼품은 없다. 따뜻하게 느껴질 리도 없다. 기대했던 모든 것을 다 잃고, 모두가 다 떠난 그 자리에 그냥 있어야 한다. 삭풍이 불어 그나마 추억하며 위안 삼던 작은 가지조차 부러져 날아가 버리면, 그제야 진솔하고 겸허한 자세로 하나님의 엄위하심 앞에 서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제껏 이것을 기다리셨던 탕자의 아버지처럼 꾸밀 수 없게 된 가엾은 인생을 팔 벌려 맞아주신다. 하나님이 진실로 원하시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가로 막는 모든 것이 다 제거된 후에 만나기를 기뻐하시는 분이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 5:8).

나무는 누구보다 긴 겨울의 의미를 잘 알고 있다. 추위에 조직은 치밀해져 강해지고, 뿌리는 세찬 바람을 견디느라 견고해진다. 그러나 이보다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것은, 이제는 주위를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요, 하나님 앞에 더 가릴 것 없는 모습으로 서는 것이다. 그때 거룩한 하나님과의 진실한 독대가 이루어진다.

겨울이 길고 추울수록, 하나님 앞에서의 철저한 적나(赤裸)일수록, 봄을 맞는 나무는 화사한 꿈을 꿈꾼다. 그러나 이제는 신록의 잎에 눈을 두지 않는다. 잎을 피우시는 하나님께 둔다. 그리고 여름이 와 잎이 무성해지면 또 다시 추운 겨울을 사모한다. 모든 것이 떠난 자리에서 나눌 하나님과의 진솔한 사랑이 그리운 까닭이다.

박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