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구름이 걷히고

언제부터인가 마음에 저기압의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주일학교 사역과 나 자신이 왜 그렇게 작고 초라하게 보이는지 고양이에게 쫓기는 생쥐마냥 자꾸만 어디론가 숨고 싶어졌다. 제비가 물고 온 흥부네 집의 커다란 박을 그리워하며 주저앉아서 불평불만만 점점 늘어갔다. 비에 흠뻑 젖어 있는 옷과 축 져진 어깨를 사람들에게 보이기 싫고 숨기고 싶은 마음에 그냥 주일을 건너뛰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정말이지 모든 것이 나의 부족함과 게으른 탓이건만, 텅 빈 주일학교 자리를 볼 때면 천근만근 마음이 무거워졌다. 오랫동안 지속되는 장마와 먹구름으로 인해 마음에 빛이 들어올 틈이 없었다. 마음의 옷장에 습기도 가득 차고 곰팡이도 점점 번져갔다. 이로 인해 먹구름 낀 얼굴과 퉁명스러운 말과 행실로 상대방의 얼굴도 곧잘 찌푸리게 하였다.

정말이지 나는 겉으로는 작은 것, 소박한 것, 눈에 띄지 않는 것을 좋아한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큰 것, 화려한 것을 탐내는 혹부리영감이었다. 양 볼에 혹을 주렁주렁 달고서도 여전히 자신은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줄 착각하고 있었다. 빛된 행실과 삶은 온데간데없이 오만과 교만으로 인해 설교 준비도 없이 아이들 앞에 서서 그럴싸한 미사여구만 쓰고 있었다. 체력도 약하고 이런저런 일이 많다는 핑계만 늘어놓으면서 넝쿨째 굴러들어올 박만 기다릴 뿐 더 이상 두발로 뛰며 땀을 흘리려고 하지 않았다.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것을 까마득히 잊어버린 채 살아왔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주일마다 한 아이를 목을 길게 빼고 기다리면서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하셨다. 번민과 갈등과 마음의 가난함을 통해 하나님을 더욱더 의지하게 하셨다. “너는 아무것도 아니니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아무런 열매도 맺을 수 없다.”고 하시면서 겸손을 가르치셨다. 그동안의 경험만 믿고 자기 잘난 맛에 살아온 이 악하고 게으른 종에게 주님은 처음의 순수한 사랑과 열정을 회복하길 원하고 계셨다. 또한 그동안 오만과 편견으로 높이 쌓아올린 아성의 탑을 하나씩 허물어뜨리길 원하셨다.

비록 초라해도

남들보다 위에 서고 싶고, 여전히 섬기는 것보다는 다스리고 싶은 지배욕에 허울 좋은 완장만 차고 있었다. 헛된 명예욕에 사로 잡혀 종이왕관을 쓴 채 상석에서 좀처럼 내려오려고 하지 않았다. 사람의 인기와 명예만 좇다가 정욕으로 두 눈이 멀어버린 이 죄인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기쁨과 행복을 발견하지 못한 참으로 미련한 곰이었다. 주님께서 무척이나 귀한 어린 영혼들을 붙여주셨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아이들을 찾으면서 채워지지 않는 것에 불평불만만 하고 있었다. 아무리 어리고 작아도 그 아이 안에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 놓으신 영혼이 있음을 잊어버린 채 살고 있었다.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 어린 소년의 한 끼 도시락을 통해 기적을 일으켰던 주님의 능력을 부인하며 살아오고 있었다. 빌립처럼 아이들을 땅의 계산법으로만 셈하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언제나 빛의 열매에 따른 하늘의 계산법을 따르시며 저 천국에 가서 셈하여 주신다. 규모와 수치가 아니다. 지극히 작은 일에 충성된 자를 찾으시는 것이다. 작고 초라할지라도, 더없이 행복해하며 작은 자로 머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비록 작지만 주님께 최고의 것으로 드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도리어 주님께서는 작고 여린 아이들을 통해 가난한 자의 슬기를 배우게 하셨다. 보잘 것 없더라도 주님의 손에 들려진 오병이어이고 싶다. 가지지 못한 것에 불평하기보다 가지고 있는 것으로 감사하고 싶다. 나중에 더 큰 것을 주님께 드려야지 생각만 하는 몽상가가 아닌 작더라도 내가 소중히 여기고 아끼는 것을 지금 이 순간 주님께 드리고 싶다. 그것이 사과 한 쪽이라 할지라도.

“지금 나는 가난하고 못 박히신 예수님을 알고 있습니다. 나에게는 이것으로 충분합니다.” 성 프랜시스의 고백이 이 못난 가슴에 사무치는 것은 왜일까? 많은 제자들이 떠나가고 작은 형제회가 무너져가는 위기 속에서 프랜시스가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갈등과 번민 속에서 숱한 영적인 투쟁과 싸움 끝에 찾아온 평화, 그것은 다름 아닌 예수님이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빼앗겨도 예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며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헛된 명예욕에 사로잡혀 방황하던 루피노에게 권면하셨던 프랜시스의 말씀이 마음에 한 줄기 커다란 빛으로 다가온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사람은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려도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만으로 즐거워합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 그것만으로 충분한 것입니다. 예배할 줄 안다면 진실로 아무것도 불안하게 할 것이 없습니다. 큰 강물과 같이 평온하게 이 세상을 지나갈 것입니다.”

주님이 오시는 그날, 그때에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온다고 하였는데 언제쯤 내 안의 모든 불평불만의 먹구름이 걷히고, 평화의 구름이 떠오를까! 주님은 알고 계시겠지, 내안에 가득한 평화를, 그리움을.

이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