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따라 물 따라


비가 억수 같이 퍼붓더니 지금 하늘은 더할 나위 없이 맑고 구름은 한가롭게 흘러갑니다. 이런 날은 그냥 집에 있을 수 없어 물 한 병 자전거에 싣고 훌쩍 호숫가로 나갔습니다. 은행나무 그늘에 앉아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구름처럼 물처럼 생각을 맡겨봅니다. 어느새 시인이 된 듯합니다. 한껏 행복감이 밀려옵니다. 날도 날이지만 1년 남짓을 기도하며 품었던 『루포에게 생긴 이상한 일』이 어제로 모두 끝났기 때문입니다.

저로서는 생애 처음으로 쓴 장편이기에 좌충우돌하며 아무에게도 말 못하고 속병을 자주 앓았습니다. 하지만 그 시간은 제게 글이라고 하는 것에 눈을 뜨게 하는 값진 시간이었고, 예수님께 순전히 몰입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갈릴리 바닷가를 구레네 시몬과 함께 거닐었고, 부활하신 예수님도 만났습니다. 루포와 함께 헬몬산에도 카타콤에도 들어갔습니다. 혼자 감격하여 눈물을 글썽거리기도, 형편없는 글재주에 답답해하기도 했지만, 예배나 기도는 더 뜨거워졌습니다. 주님이 옆에 계셨습니다.

황순원의 『소나기』를 읽을 때부터 제 마음 속에 심겨졌던 순수문학에 대한 동경이 어쭙잖은 배냇짓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깃이 채 돋지도 않은 아기 새의 날갯짓처럼 말입니다. 초고를 완성하고 자체 교정이 끝난 원고를 지인들에게 돌릴 때는 흉한 속을 다 보이는 것처럼 몹시 부끄러웠습니다. 하지만 사족은 잘라내야 했고, 잘 보이려는 마음은 던져버려야 했습니다. 모두들 성심껏 교정과 충고를 해 주셨습니다. 어떤 분은 “목사님에겐 소설은 맞지 않아요!” 라고 진지한 조언을 하셨습니다. 하지만 제 속에 자라고 있는 청순한 빛과 사랑에 대한 갈망은 막을 수 없었습니다.

아, 참 행복한 시간들이었습니다. 눈만 감으면 유대의 빈들이 보이고,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과 출렁거리는 갈릴리 바다도 보였습니다. 병적인 현실 도피일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예수님을 더 떠올리게 하는 것이니 그럴 리는 없습니다.

저는 주님 안에서의 순수한 사랑을 동경합니다. 구름 따라 물 따라 흘러가는 은총 속의 자유를 사모합니다. 서로 부딪친다 해도 품으며 지나가는 저 구름의 여유를 그리워합니다. 어디건 불순 없이 나아가고 막히면 기다리다 넘어가는 시냇물의 유유자족을 꿈꿉니다.

구레네 시몬과 루포는 어머니 요안나와 함께 수년 전부터 품어왔던 저의 분신들이기도 합니다. 주께서 새벽 기도 중에 넣어 주셨던 설레는 이야기… 그 날 가슴이 얼마나 뛰었었던지….

이제 아쉽지만 마감해야 합니다. 하지만 저는 낙담하지 아니합니다. 이는 선생님의 전기를 향한 첫발걸음이기 때문이요, 예수님의 순결한 사랑을 위한 서시인 까닭입니다. 주께서 마음껏 저를 이끌고 가시면 좋겠습니다. 제가 어디건 주님의 이끄심을 좇았으면 좋겠습니다. 굳이 소설 속이 아닌 현실의 고통속이어도. 평안이던 고난이던 주님 위한 순결한 사랑이라면 어느 곳 어떤 일이어도. 저 구름처럼 물처럼 말입니다.

박상태